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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싸움의 서막

결코 갑작스럽지 않았던 세나와 초코, 두나의 갈등

by 미소





세나는 질투가 많은 강아지다.


세나는 유독 누워서 나를 바라보는 상태로 찍힌 사진이 많다. 늘 내 곁에 누워서 나를 바라보거나, 나에게 몸의 일부를 붙인 채 자기 때문이다.
꼭 암각화 같은 두나와 세나.
늘 붙어 지내던 자매, 세나와 두나.



사실 우리는 세나에게 크게 속았다. 새끼 시절 두나는 순둥순둥하고 펑퍼짐한 얼굴로 엄마와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면 클수록 세나는 점점 더 새침데기 공주님이 되어갔다. 얼굴도, 성격도.


반면 세나의 자매인 두나는 달랐다. 새끼 시절에는 사람만 보면 우다닥 뛰어다녀서 왈가닥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크면 클수록 겁은 많지만 차분하고 사려 깊은 강아지가 되어갔다. 롱다리에 밝은 갈색 털을 가진 세나와는 달리 다리도 좀 짧고 한 톤 더 어두운 털색을 가졌지만 사람의 감정을 잘 읽고 배려한다는 것이 느껴지는 강아지였다. 그래서 나는 두나를 참 좋아했다.


그리고 세나는 그런 나와 두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두나와 세나.
꼭 내 옆에서, 내 손을 끌어당겨 자기를 만지라고 요구하던 세나. 지금도 그런다.




그렇다고 세나가 사람처럼 질투심을 숨기고 구밀복검의 자세로 두나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나는 사람 같은 강아지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세나는 질투심을 그대로 표출하는 편이었다. 내가 두나를 쓰다듬고 있으면 코로 내 손을 쳐서 자기를 쓰다듬게 한다거나, 두나가 내 옆에 몸을 붙이고 앉아있으면 자기는 내 품에 안기려고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더 많이 사랑받기를 원했다. 두나는 세나에게 항상 자리를 양보하곤 했는데, 나는 그것이 안쓰러워 세나가 보지 않을 때 조금 더 이뻐해 주었다.


아마 세나는 그것도 다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눈이 많이 내려 무릎까지 빠질 정도였던 어느 겨울. 두나, 세나, 알파는 함께 눈 쌓인 동네를 뛰어다녔다.



이렇게, 우리 집 강아지들 사이에는 유리잔에 난 실금 같은 갈등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원인이 두나에 대한 세나의 질투심만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이보다 더 뿌리 깊은 갈등이 있었다.


당시에는 두나, 세나, 알파가 나와 같이 방에서 지내고 초코는 엄마 방에서 지내다가 아침이 되면 모두 거실에 나와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 사람들이 모두 출근하고 나면, 강아지 네 마리가 거실에서 함께 사람들을 기다리는 형국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면 공놀이를 했다. 이는 유랑시절, 아니 우리 건물이 팔리기 전부터 있던 오래된 전통이었다. 공놀이는 우리 집 견공사회의 전통문화였다.




오래된 전통이 진통을 낳듯, 우리 강아지들의 전통문화인 공놀이는 갈등에 불을 지르는 씨앗이 되었다.


초코는 공놀이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공을 자기한테만 던지기를 원했다. 다른 강아지들도 공을 갖고 싶어 했고, 그러면 나는 저글링이라도 하듯이 공을 두 개, 세 개씩 던져야 했다. 심지어 공을 빨리 던지지 않으면 다른 강아지들의 공을 빼앗아 가지고 오기도 했다. 두나는 순순히 뺏겨주었고, 알파는 15살인 지금도 8킬로 가까이 나가는 덩치라 초코도 알파 공을 뺏겠다고 덤비지는 않았다.




내 손에 들린 공이 너무 갖고 싶었던 세나와 두나.
양 발로 공을 꼭 붙잡은 세나.




세나는 공을 뺏기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에는 자기 공을 빼앗아가는 초코를 분노의 눈초리로 바라봐야만 했다. 이 일은 세나가 채 1살이 되기 전부터 4살이 되던 해까지 이어졌다. 세나는 청소년 강아지 시절부터 초코에게서 지속적으로 공을 빼앗겨왔다.


이는 세나의 질투심을 무수히 자극했을 것이다. 세나는 두나뿐만이 아니라 초코에게도 그 이상의 앙금이 있었다.



세나, 초코, 알파, 두나 순으로 식탁을 노리고 주르륵 서 있다.



시간은 세나의 편이었다.


10살이 넘은 초코와 8살 알파, 한창때인 네 살 전후의 세나와 두나. 초코는 눈에 백내장이 생기기 시작해서 아침저녁으로 약을 넣었다. 알파, 두나, 세나와 함께 산책을 하면 초코가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했다. 간식을 주려고 강아지들을 부르면, 다른 강아지들에 초코가 치이기 시작했다.


세나가 본격적으로 자기주장을 시작했다. 세나는 초코와 두나에 공과 사랑을 빼앗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앙칼지게 짖었고, 둘은 그럴 때 움찔하고 물러섰다.




두나, 알파, 세나. 막 바리캉을 잡아 본 아빠가 세 강아지의 엉킨 털을 싹 밀어버렸다. 추울까 봐 옷을 두 벌씩 입혀놨다.



그러던 어느 겨울, 산책을 나갔다 돌아온 아침.

알파, 두나, 세나가 갑자기 초코에게 덤벼들었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열여덟 마리의 고양이와 일곱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그중 일부와 이별했습니다. 그들과의 삶과 이별을 담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고 싶으시다면, 아래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의 기록> 링크를 눌러보세요. 떠나간 존재들, 그리고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기 시작하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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