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밥 못 먹어서 화가 나”
동기의 괜찮냐는 질문에 대충 대답을 하고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밥을 못 먹고 일한 날 신청하는 휴게불가 수당의 사유를 적었다.
‘3호실 000 환자 인공호흡기 및 저체온요법, 지속적 신대체요법 유지함. 혈역학적 불균형으로 잦은 혈액검사 및 투약 시행함. 4호실 000 환자 퇴원 준비 시행함. 5호실 000 환자 섬망 있어 집중 관찰함. 가래 많아 잦은 기도흡인 시행함. 이에 휴게시간 가지지 못함.‘
10시간 공복상태의 나는 어지러울 지경이었으며 손가락은 미세하게 달달 떨렸다. 손가락 마디에 간신히 힘을 주고 퇴근 전 마지막 타자를 쳤다. 출근 전 새벽 5시에 토스트 하나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퇴근하는 3시 30분까지 캔디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우리 부서의 티룸에는 당이 떨어졌을 때의 유일한 비상책인 스카치 캔디만이 남아있었다. 난 그 캔디를 볼 때마다 배고파서 저혈당으로 쓰러지기 직전의 간호사들에게 붓는 최후의 연료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부서는 코로나 환자들이 오는 병동이다. 한창 코로나가 심각하던 19년부터 22년까지는 부서에 간식이 넘쳐났다. 종류별로 구비된 과자, 음료, 컵라면과 컵밥들이 있었다. ‘덕분에’ 챌린지의 여파로 각종 제과 회사에서 간식들을 보내주기도 했다. 23년도부터 코로나 법정감염병 등급이 내려가고, 사회적인 분위기상 코로나는 이제 감기다라는 인식이 생기며 간식과 의료진에게 지급되는 코로나 위험수당이 뚝 끊겼다. 부서장은 상부에서 지급하는 간식비가 끊겼다며 힘든 상황이지만 서로 이겨내 보자며 상투적인 위로 멘트를 전했다. 바깥세상에서의 코로나에 대한 인식은 계속 바뀌지만 격리실 안에서의 상황은 눈에 띌만한 변화가 없다. 여전히 환자들은 사망하고 있으며 간호사들은 답답한 보호구를 몇 겹씩 착용하고 일한다. 보호구를 한 번 착용하고 들어가면 두 시간 동안 격리실 안에서 간호를 하고, 그 시간 동안은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화장실 한 번을 못 간다. 24년이 되면 코로나 격리병동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우리 병원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시 밥 못 먹어서 화가 난 날로 돌아가보자면, 사실 밥 못 먹은 것 만으로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때는 그날 오전 10시였다. 4호실 퇴원 예정인 8살 환자의 보호자가, 사식을 외부에서 가져와서 먹고 싶다고 말했고, 만약 가져다 줄 사람이 없으면 병원식을 신청한다고 했다. 나는 일단 병원식 신청을 안 하고 추후에 보호자가 요청하면 그때 신청하려 했으나 선배간호사의 미리 신청해 놓으라는 말에 넵, 하고 그냥 신청을 해두었다.
그리고 11시가 되어 그 병실에 들어가니, 선배 간호사가 있었고 사식을 가져올 보호자가 있어 병원식을 취소하신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한창 일을 하는 도중, 선배가 식이 접수시간이 11시였고 이미 접수시간이 지나 취소를 못한다고, 미안하다고 메신저가 왔다. 컴플레인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러 갔다. 병원밥이 이미 올라왔으며, 보호자님께서 식이 접수시간이 지난 후에 사식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씀하셔서 취소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죄송하다고 설명하니, 보호자는 그럼 그 식이 비용을 본인이 내야 하냐고 정색했다.
바빠서 힘들어 죽겠는데 고작 3500원짜리 밥 가지고 보호자와 씨름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정작 배고파 죽겠는데 다른 사람 밥 때문에 왈가왈부하는 게 짜증 났다. 더 이상 실랑이 하기가 싫고 힘들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죄송하지만 이미 밥이 나와서 반납해 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면 계좌를 알려주시면 제가 돈을 보내드릴게요 “라고 말했다. 보호자는 ”네, 그럼 이따가 알려드릴게요 “라고 대답했고 해결되는가 싶었으나, 내 근무시간 안으로 퇴원 예정이었던 그 환자는 검사 일정 지연으로 저녁에 퇴원하게 되었다.
스테이션에 나와서 저녁번 간호사에게 환자 인계를 주며 어쩔 수 없이 밥 얘기를 하게 되었다. 너무 바쁘고 조용히 빨리 넘기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고 설명하자, 저녁번은 계좌로 돈을 보내지 말고, 본인이 다시 보호자에게 설명해 보겠다고 했다. 인계를 다 주고 뒤도는 순간, 부서장의 얼굴이 있었다. 앙다문 입술, 쨍한 눈빛의 그녀는 무슨 일이든 FM대로만 처리하는 인물이다. 제발, 제발 그녀가 안 들었기를 기도하며 자리로 돌아가는데, 부서장이 저녁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한 일을 부서장에게 다 말하고 있었다. 차라리 내 입으로 말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가서 상황설명을 했다. 부서장은 내 말을 가만히 듣다가, 그렇게 처리하지 말고 부서장 보고 후 식이반납 결제를 올렸어야 한다, 식이 신청을 미리 해두지 말고 보호자가 해달라고 하면 접수 시간 넘어서도 추가식이를 신청할 수 있었다 말하며 일처리가 미흡했다고 꾸짖었다. 난 이미 나온 밥이 반납이 되는지 모르고 있었다. 매우 드문 경우이기도 하고 이미 병동으로 올라왔고 필요 없어서 버린 밥이 반납이 될 거란 생각을 못했다.
식이반납이 가능한 걸 몰랐던 나 자신이 바보 같았고, 왜 계좌로 보내준다고 했을까 후회스러웠다. 식이신청을 일단 하라고 했던 선배 간호사가 원망스러웠으며, 내가 조용히 넘어가고 싶다고 말했건만 부서장에게 모든 걸 다 말하는 저녁번도 밉고, 스테이션 한가운데에서 내게 면박을 준 부서장도 미웠다. 밥을 못 먹고 일해서 슬픔이 배가 되었다.
버거킹 치즈와퍼를 사서 집에 왔다. 두 볼 가득 씹고 콜라를 들이켜 마시니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렇게 밥만 먹기만 해도 덜 힘든데 간호사는 항상 밥을 챙겨 먹을 수 있는 직업이 아니어서 끊임없이 힘들다. 바쁜 와중에 내가 밥을 먹으러 가면 내 담당 환자들은 다른 환자들을 보느라 바쁜 간호사들이 꾸역꾸역 짬을 내서 봐줘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밥을 안 먹게, 못 먹게 된다.
간호사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었던 내 신념과 맞는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가졌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좌절감, 수치심, 슬픔, 분노, 배고픔을 느끼는 순간들이 나를 갏아먹는다. 사람이 직업을 가지는 이유는 자아실현과 돈벌이를 위해서다. 지금의 나는 자아실현을 못하고 있다. 돈벌이는 간호사 말고 다른 직업, 밥을 꼬박꼬박 먹을 수 있는 직업으로도 할 수 있다. 굳이 내가 계속 간호사를 해야 할까, 간호사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 말고도 나만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넘칠 텐데. 나에게 더 좋은 직업이 있을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