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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민 Apr 26. 2024

올리브 포카치아 몇 개 남았나요

제주 혼자여행-성산


 셰어하우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마늘치킨 집을 지난다. 해물라면 집을 지나며 입주민 단톡에 묻는다. “올리브 포카치아 몇 개 남았나요.” 먼저 카페에 도착해 있는 입주민들이 사진으로 올리브 포카치아 현황을 알려준다. 세 개 남았다. 차도를 한번 가로질러 건넌다. 마음이 급해져 발걸음이 빨라지다 이내 뛰게 된다. 앞머리가 갈라지던 가방끈이 흘러내리던 아랑곳 하지 않고 달리다 장어집이 보이면 곧 도착. 스무 걸음만 더 걸으면 하얀 벽 반, 빨간 벽돌 벽 반인 카페가 보인다. 주차장에 차들이 많은 걸 보고선 서둘러 자동문을 열고 빵 진열대를 본다. 첫째줄 왼쪽에서 세 번째, 거기엔 둥근 모양, 잘 구워져 노르스름한 테두리 안에 그린올리브와 블랙 올리브가 잔뜩 올려진 올리브 포카치아가 있다. 옆사람이 먼저 집지 않을까 걱정하며 쟁반과 집게를 들고 올리브가 제일 많이 올려져 있는 빵을 고른다. 같이 먹을 산딸기 크로와상도 쟁반에 담고 산미가 없는 원두로 만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주문한다. 성산일출봉과 검은 모래 해변이 보이는 창가자리에 입주민 언니들이 앉아있다. 그녀들과 올리브 포카치아를 찬미하며 8등분으로 먹기 좋게 자른 그것을 꼭꼭 씹는다.


올리브 포카치아는 이 카페에서 인기 있는 메뉴가 아니다. 먹음직스러운 갈색에 반질한 광채를 자랑하는 빵 오 쇼콜라, 설탕을 잔뜩 뿌려 반짝이는 브레산느. 완벽한 초승달 모양의 크로와상 사이에서 그것은 굳이 고르기엔 매력이 없는 선택지다.  투박하고 멋없게 생긴 포카치아는 입에 넣는 순간부터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바삭하고 노릇하게 익은 겉표면을 씹으면 느껴지는 쫄깃한 속살, 푸짐하게 올린 올리브 위에 뿌린 파마산 치즈. 올리브를 그렇게나 많이 넣었지만 짜지 않은 그 적당함. 너무 달거나 짜서 ’ 적당‘의 정도를 찾기 힘든 빵들 사이에서 담백과 짭짤 그 어딘가 적당한 선상에 있는 이 빵은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난 우연히 입주자 언니가 올리브 포카치아가 맛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서 한 번 먹었다가 매일 아침 커피 한잔과 올리브 포카치아 하나를 먹는 것이 공식이 되어버렸다. 그 매력에 하나 둘 푹 빠진 셰어하우스 입주민들은 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고 아침마다 카페에는 입주민들 머릿수가 늘어났다.


 나는 항상 포카치아 대란에 출석하는 인원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다른 입주민들을 피해 혼자 있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한 달 휴직을 받고 혼자 제주로 떠나온 이번 여행을 시작하며 책 많이 읽고 에세이 한 편 이상 써오자,라고 다짐했었던 나는 그러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흠, 그건 좀 변명이고 혼자 있는 게 편했다. 하지만 올리브 포카치아는 오전 10시쯤에 나오고 그 시간대에는 입주민들이 어김없이 카페에 모여있었다. 그렇다고 카페에 안 가기에는 올리브 포카치아가 너무 맛있었다. 어느 날은 입주민 언니들과 아침에 모여서 포카치아를 먹고 있었다. 어색하게 서로 존댓말을 하며 각자의 쟁반에 담긴 빵만 먹던 우리는 각자가 오늘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낼 건지 이야기하다가 네 명 모두 날이 너무 좋아 우도에 갈지 고민 중이란 걸 깨달았다. 적당한 바람에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이 우도에 안 가면 아쉬운 날이었다. 혼자 가고 싶은 마음 반, 같이 가고 싶은 마음 반이었던 나는 어느새 빨리 누가 다 같이 가자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언니가 “그럼 우리 다 같이 우도 갈까요?”라고 말을 꺼내는 순간 조금 신이 났다. 우도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우도 보트를 타러 갔다. 커다란 튜브재질의 보트는 우도 근처 바다를 빠른 속도로 가르다 높은 파도에 올라탔다가 가파른 경사를 그리며 떨어졌다.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스릴감에 바다 위의 돌고래가 되어 연신 고옥타브의 소리를 질렀다. 보트 선장님은 리액션에 탄력을 받았는지 보란 듯이 빠른 속력을 내고 더 높은 파도에 올라타곤 했다. 기진맥진하며 보트에서 내린 우리는 어느새 어색함이 사라지고 부쩍 친해져 버렸다. 그날은 제주에 있던 2주 동안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빵 하나로 시작해서 점점 친해진 우리는 단톡을 만들고 육지에 와서도 연락을 이어오고 있다. 언니들이 먼저 육지로 떠난 날에 그들을 배웅해 주고 방에 들어와 조금 눈물을 흘렸다. 왜 눈물이 나지? 그 정도로 정을 준 줄은 몰랐는데 당황스러웠다. 그녀들이 떠나니 할 일이 없어져 집에 빨리 가고 싶어져 가까운 시간의 비행기 티켓을 검색했다. 그러다 이제 비로소 혼자가 되었으니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며 나를 다독이고, 며칠 전에 작가 승인이 된 브런치에 미뤄왔던 첫 글을 올렸다. 카톡으로 내 브런치 주소를 공유하며 시간 날 때 읽어달라고 했는데,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한 문장 한 문장 정독을 해줬다. 그녀들은 내 첫 구독자가 되었다. 엉성한 글들을 시간 들여 읽어주다니 고마움에 또 눈물을 그렁이다 천장을 보며 삼켜내었다. 소중한 내 구독자 3명과 포카치아를 다시 먹으러 갈 날이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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