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민 Jun 22. 2024

면회 시작하겠습니다

소아 중환자실의 면회시간

———환자 상태 등의 개인 정보는 각색했습니다——



오전 10시, 뚜-뚜-뚜- 어김없이 들리는 인터폰 소리. 스테이션에서 제일 가까운 병실에 있는 간호사가 후다닥 달려 나가 인터폰을 집어든다.


“보안팀입니다. 면회 시작해도 될까요?”

“네”


인터폰을 받은 간호사가 잰걸음으로 병실을 돌며 전한다.

“선생님, 면회 시작할게요.”


소아중환자실의 면회시간이 시작되었다.

나는 황급히 얼룩이 있는 이불을 뒤집고 카트 위를 닦는다. 하필이면 이때 환자 볼 위로 흐르는 침을 빠르게 쓱 닦는다. 유리문 밖에서 기웃거리며 기다리던 보호자들이 일제히 다급한 발걸음으로 병실로 들어온다.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00아~ 엄마야~”라고 말하는 보호자. 그녀와  짧은 인사를 나누곤 간단한 환자 상태 설명을 시작한다. 신뢰감을 주기 위해 목소리를 반음정도 내린다.


나: “00 이는, 어제자랑 크게 상태 변화한 건 없고요, 폐가 이전에 비해 좋아지고 있고 산소 요구량도 줄어들어서, 인공호흡기 모드를 변경했는데요, 지금 변경된 모드는 환자가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 숨을 쉬게 하되, 숨 쉬는 것에 맞춰서 조금의 압력을 줘서 숨을 더 잘 쉬게 도와주는 모드예요. “

보호자: “아 정말요? 00아 너 폐가 좋아졌데~.”

나:“만약에 환자가 숨을 쉬지 않을 경우에는 다시 기계가 강제로 숨을 쉬게 해주는 모드로 전환이 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기계 화면을 보시면, 초록색 선이 호흡을 보여주는 그래프예요. 그 중간중간에 하얀 점들은 아이가 숨을 스스로 쉴 때 나타나는 건데, 보시면 규칙적으로 숨을 잘 쉬고 있습니다. “

보호자: “아~그렇군요 네네. 감사합니다. “


너무 숨도 안 쉬고 말했나 나 지금 얼굴이 빨간가. 이 정도 설명했으면 신규 간호사 같지는 않겠지? 여러 잔걱정들을 뒤로하고 전산을 정리하며 모니터 너머로 환자와 보호자를 바라본다.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계속 말을 건네는 그녀.


보호자:“00아, 엄마야. 엄마 봐봐. 아유 예뻐라. 잘 있었어? 우리 00이~ 얼른 나아서 엄마랑 집에 가자 알았지? “

나:(아이에게 다가가 흐르는 침을 닦는다.)

보호자:“그래도 00 이가, 많이 나아져서 다행이에요. 이번에는 진짜 위독해서 놀랐는데, 선생님들이 애써주셔서 이만큼 좋아졌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


너무 형식적인 대답인가 싶어 잠시 고민했지만 떠오르는 말이 없어 이렇게 말한다.

나:“아닙니다. 00 이가 잘 버텨줬죠.”

보호자: “맞아요. 00 이가 이번에 고생도 많이 했어요. 이번 파업 때문에, 원래 진료 보던 병원에서 진료를 못 봐준다고 해서 여기까지 힘들게 왔어요. 그래도 여기 와서 정말 좋아져서 다행이에요. 저는 정말 이번 사태, 대통령도 너무 싫고요, 의사들도 너무 싫어요. “

나: “고생 많으셨네요. 너무 힘드셨겠어요..”


고작 이런 위로 밖에 할 줄 모르는 내가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 따윈 중요하지 않은 듯해 보였다.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건지, 그녀의 한 맺힌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보호자:“00이 말고도 애가 둘이 더 있어요. 병원비가 2주에 200만 원이 나와요. 이것도 뇌전증 질병코드 받아서 감면받은 금액이에요. “

나:“2주에... 200만 원이요? 애기들이 둘이나 더 있으시다고요? “

등골이 오싹한 이야기다.

보호자:“네... 애아빠랑 맞벌이해서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사는 수준이에요. 그래도 애를 포기할 수가 없어요. 00 이를 보면, 살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애예요. 어떻게 얘를 포기하겠어요.”


나:(할 말을 한참 생각하다가 아이 얼굴을 쓰다듬으며) “00아, 잘 버텼어. 00 이는 강한 아이야.”

보호자:(눈물을 흘리며) “맞아요. 00 이는 강한 애예요. 앞으로도 잘 버틸 거예요. 그렇지?”


대화 내내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다가 보호자가 흘리는 눈물을 보니 울컥했다. 뇌리 속의 온갖 웃긴 생각들을 꺼내 눈물샘을 틀어막았다. 현실이 아니라 신파 드라마 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감히 울리려고? 이깟것에 울 수는 없지,라며 20초쯤을빨리 감기 하고 싶었다. 천장을 한참 보며 눈물을 말리고 있는데, 옆 침대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보호자 2:“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00이~ 생일 축하 합니다”


옆 침대 환자는 오늘 생일이라고 한다. 눈을 뜨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고깔모자를 씌운 어머니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케이크를 들고 있다.


보호자 2: ”00아~ 생일 축하해, 얼른 일어나서 엄마랑 집에 가자 알겠지? 00이 얼른 일어나게 해달라고 소원 빌자“ (촛불을 불어 끈다.)


뇌사 판정을 받아 일어날 가망이 없는 아이에게 희망을 버리지 않는 보호자의 모습, 무표정으로 눈을 뜨지 못하고 누워있는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고깔모자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어쩌면 마지막 일수도 있는 생일이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스테이션으로 자리를 피했다.

10시 25분. 자리로 다시 돌아가 앉았더니 보호자가 이만 가보겠다고 인사한다.


보호자: “선생님, 우리 00이 잘 부탁드려요. 너무 감사합니다.”

나: “저희가 잘 보살피고 있을게요.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드리니깐 걱정하지 마시고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코로나 시국동안에 금지되었던 면회가 재시행된 이곳에서 근무한 지 세 달이 되었다.눈물 많은 성격과 자주 빨개지는 얼굴, 변변찮은 말솜씨가 하나같이 보호자 응대에 맞지 않다는 생각에 면회 시간만 되면 긴장에 목이 탄다.


면회시간은 매일 돌아온다. 뚜-뚜-뚜 소리가 들리면, 드라마 속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나는 똑똑하고 눈물 없는 간호사 역할을 맡았다. 스토리가 신파로 흘러가도 울지 않고 보호자에게 적절한 위로 멘트를 날리고, 냉철하게 환자 상태에 대해 설명하는 캐릭터다. 그녀는 병원에서의 일들은 그저 일인 채로만 둔다. 집에 가면 병원에서의 일은 잊어버린다. 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이렇게 아파야 하는 건지 생각하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