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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Jan 10. 2022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칼로리에는 속지 말지어다

신체는 덧셈과 뺄셈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칼로리를 몰라도 살은 빠진다!


  한때 일본과 미국에서 '안티 다이어트' 붐을 일으켰던 작가, 나쓰메 마쓰리코는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칼로리를 믿지 말라는 그녀의 제언은 내가 알던 다이어트의 틀을 깨기에 충분했다. 자칭 칼로리 덕후, 아니 칼로리 변태였던 나는 스마트폰에 찍힌 칼로리에 일희일비하며 뱃살을 주무르고 있었으니까.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워 칼로리 계산을 하고 있으면, 바싹 마른 빨래를 걷어 예쁘게 개는 일처럼 조금 귀찮지만 뿌듯했다. 하루 총 섭취 칼로리에서 기초대사량과 운동으로 소모한 칼로리의 합을 빼고 음수가 나오면 자기 효능감에 취했다. 덜 먹고 더 움직였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몸은 가벼워졌다. 비록 단순한 사칙연산에 불과했지만, 스스로 타의 모범이라 여겼다. 슬럼프가 오기 전까지.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단지,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고 하기 싫어졌다. 일주일 이상 일기를 써 본 적도 없는 내가 6개월이 넘도록 식사일기와 일일 칼로리 집착했으니 의지력이 바닥날만했다. 식사일기는 일기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일주일에 겨우 두 번 정도 쓰게 됐고 운동은 그냥저냥 중저강도에 머물렀다. 마치 그토록 원하던 정상에 오르고 보니 목표를 잃고 터벅터벅 방황하는 것처럼, 더 이상 '유지기'에 쓸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보기 좋게 온 몸으로 요요를 맞았다. 비행기를 타고 먹구름 위로 올라가, 빛나는 태양과 맑은 하늘을 아주 잠깐 만끽한 뒤 다시 먹구름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예전의 나로 돌아온 나는 다시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를 부정했다. 날씬했던 나를 그리워하고 현재의 나를 증오했다. 더 과격해졌다. 어쩌다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과식한 날에는 장시간 등산을 하며 몸을 학대했다. 등산 앱실시간 소모 칼로리를 수시로 확인하며 머릿속으로 이미 계산해 놓은 목표치에 도달할 때까지 정상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뜨거워진 허벅지 근육을 간신히 부여잡고 비틀비틀 걸어 버스 정류장에 서면,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버스 번호가 더 태워야 하는 칼로리로 보였다.

  수도승의 마음으로 온 우주의 의지력을 끌어와 식단과 운동에 쏟아부었다. 효과는 있었고 건강은 없었다... 나름 운동 경력과 건강 상식이 풍부하다고 자부했던 나조차도 학대당한 몸의 복수는 예측하지 못했다. 족저근막염, 위장장애, 근육 파열, 추간판 탈출증이 담긴 복수혈전 세트를 받고 나니 아주 자연스럽게 다이어트를 포기했다.

  그냥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운동은 거의 안 했다. 퀭하고 초점 잃은 눈으로 욕실 거울에 비친 똥배를 바라보며, "인생은 무상이오, 모든 것은 허상이니 다이어트만큼 어리석은 것이 또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식사일기를 적던 식단 앱운동 도 말끔하게 지웠다. 속이 다 시원했다. 그렇게 한 6개월 정도 몸을 방치했다. 담가놓고 까맣게 잊은 어느 장독대 속 푹 익은 김치마냥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아랫 뱃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언가 달랐다. 건강을 되찾고 난 이후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운동하고 싶을 때 조금씩 운동했을 뿐인데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엄격하게 칼로리를 측정하고 제한했을 때와 비교해 보았을 때, 그때보다 더 먹고 덜 움직였음에도 살은 빠졌다! 물론, 소심한 식단과 과격한 운동보다 살은 느리게 빠졌지만, 빠지긴 빠지니까 나로서는 정말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20대와 30대를 합쳐 총 7번의 다이어트를 하면서 다이어트가 즐겁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나? 없었다. 배둘레햄과 몸무게가 줄어든 날에도 기쁨은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갔고 여전히 남아있는 뱃살을 혐오스럽게 쳐다보며 칼로리의 과부족을 반성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르다고 느꼈다. 칼로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단지 더 건강해지려는 작은 노력만으로도 살이 빠지다니! 즐거움에 더해 심지어 신기하기까지 했다. 내가 알지 못하던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것 같았다. 하나의 틀이 깨지고 새로운 영역에 들어선 설렘에 취해 본격적으로 다이어트와 건강 관련 책들, 영양학 서적들, 그리고 비만 관련 논문들에 빠져들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칼로리 측정법

                                                       (건너뛰어도 무방!)


※ 칼로리의 정의
1cal=1기압에서 14.5도의  1g을

                                 15.5도로 올리는 열량 (+1도)
1cal×1,000=1kcal

1kcal=1기압에서 14.5도의  1kg을

                                 15.5도로 올리는 열량
1kcal = 1Cal

 : 1cal은 1칼로리로 읽고 1Cal은 1킬로칼로리로 읽지만 1Cal은 1칼로리로 줄여 부른다. 언어의 사회성 만세!


  칼로리를 측정하는 방법은 음식의 칼로리를 측정하는 방법과 운동의 칼로리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나누어 알아보자!


1. 음식의 칼로리를 측정하는 방법



  산소가 들어있는 원통에 음식을 넣고 그 원통 주변을 1kg의 물로 감싼다. 이 원통을 "봄베 열량계'라고 부른다. 열량계의 재질은 열전도율이 높은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를 쓴다. 음식을 실링 된 열량계 안에서 완전히 연소시킨 후 물의 온도 변화를 측정한다. 물의 온도가 20도가 올랐다면 그 음식은 단위 무게당 20칼로리를 가지고 있다고 1차 평가한다.

  그런 다음, 실제 우리가 음식을 섭취했을 때 음식은 완전연소가 아니라 불완전 연소한다는 점, 소화흡수율이 100%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여 각 영양소별 계수를 곱해 좀 더 현실적인 칼로리를 산출한다. 이러한 방법을 직접 열량 측정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운동의 칼로리 측정법과 달리 음식의 칼로리 측정법은 이 방법이 거의 전부다. 딱히 다른 대안이 없다고 한다.


식품의약품 안전처가 매년 고시하는 [식품 등의 표시기준]에 따르면, 식품 100㎖당 열량이 4㎉ 미만이거나, 1회 제공량당 5㎉ 미만이면 '제로 칼로리'로 표시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아는 0칼로리 제품들은 실제로 0칼로리가 아니다.



2. 운동의 칼로리를 측정하는 방법

 1) 직접 열량 측정법

    위의 음식 칼로리 측정법과 같은 방식이다. 사람이 직접 물로 둘러싸인 열량계 공간에 들어가 운동한다(당연히 태울 수는 없다). 체온에서 비롯된 단위 시간당 열 발생량과 열 손실량에 의한 물의 총 온도 변화를 측정한다. 물의 총 온도 변화는 평형 온도를 기준으로 상승한 온도의 총합으로 구한다. 사람이 열량계 안에서 10분 동안 스쿼트 100개를 했더니 물의 총 온도 변화가 70도였다면, 스쿼트의 소모 칼로리는 10분당 70칼로리가 된다. 이 방법은 비교적 정확할 수 있지만 비용과 시간이 아주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이런 알바가 있다면 해보고 싶다ㅋ).


 2) 호흡 상수 측정법

   신체는 영양소로부터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산소를 들이마시고 그 영양소가 산화할 때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신체의 산소 흡입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측정하여 간접적으로 얼마만큼의 칼로리를 소모했는지 평가하는 방법이다. 다만, 신체가 어떤 영양소를 이용한 것인지 알 수 없다면 오차가 크다는 단점이 있다.

  

 3) 운동 계수  측정법

  다른 측정 방법을 통해 얻은 데이터와 통계를 기초로 만든 종목별 운동 계수에 체중과 시간을 곱해 소모 칼로리를 구하는 방법이다. 체중 1kg당 15분의 운동을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어, 달리기의 운동 계수는 2이므로 70kg의 사람이 30분 동안 달리기를 했다면, 그 공식은 다음과 같다.

                       2 × 70kg × 2 = 280kcal

  하지만 이 방법은 운동의 강도, 개인의 신체 능력과 구성, 산소섭취량 등이 반영되지 못하기에 그 오차는 무려 30%에 달한다.


  4) 기타

    그밖에 METs 측정법, 심박수 측정법(스마트워치) 등의 간접 측정법이 있다.




칼로리를 믿지 말고 내 몸을 믿자!


  칼로리는 분명 중요한 개념이다. 영양학과 운동생리학의 기본 언어와 다름없고 에너지의 기본 단위인 J(줄)보다 생물을 잘 표현하며 이미 수많은 산업을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다이어트할 때만큼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고 때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음식 칼로리의 경우 체내 영양소의 불완전 연소와 소화흡수율까지 고려하여 1g당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4kcal, 지방은 9kcal, 알코올은 7kcal라는 비교적 정확한 근거를 마련해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오차는 크다. 왜냐하면 개개인마다 소화흡수율이 다르고 음식의 조리방법, 조리 전ㆍ후에 따라 영양소의 구성 비율과 열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식사 후 음식이 지방으로 변환ㆍ축적되는 시간(4시간~8시간)과 중성지방으로의 전환율도 저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다이어터의 입장에서 칼로리는 여전히 불확실한 존재다.

  운동 칼로리는 음식 칼로리보다 오차가 더 크다. 실생활에서 자주 애용하는 각종 앱이나 헬스기구, 스마트워치 등의 운동 칼로리는 간접 열량 측정법으로 얻은 데이터를 통해 다시 간접적으로 얻은 일종의 근사치에 불과하다. 게다가 신체의 대사 적응을 연구한 논문들을 보면 조금 기가 막히다. 규칙적이고 꾸준한 운동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신체는 기어코(?) 다른 활동에서 에너지를 아끼기 시작하기 때문에 운동 강도를 어마어마하게 늘리지 않는 이상 결국 대사량 측면에서 조삼모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012년, 미국 헌터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 애리조나 대학의 공동연구팀은 아프리카 탄자니아 지방에서 수렵ㆍ채집 생활을 하는 하드자 부족과 서구의 직장인들을 비교했는데, 일상에서 소모하는 에너지 소비량이 거의 같다는 것이었다. 매일 수십 km를 이동하는 수렵 생활자와 도시 직장인의 소모 칼로리가 별반 다르지 않다니! 하루에 3시간씩 등산을 하던 나와 요요와 부상을 맞고 장렬히 다이어트를 포기했던 나는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일 소모 칼로리를 공유했던 것인가?! 한편으로는 운동에만 매달리는 다이어터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연구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음식과 운동 칼로리는 맹신하지 말지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칼로리에는 속지 말지어다. 신체는 그렇게 순순히 덧셈과 뺄셈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교묘하고 복잡하며 세련됐다. 그러니 내 몸을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 자꾸 몸을 의심하며 부정확한 숫자에 희망을 거는 것은 멈춰야 한다. 운동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먹는 게 중요하고, 그것보다는 칼로리에 연연하지 않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게 중요하다. 먹는 게 곧 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칼로리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으로만 보자. 음식과 음식 간 에너지 밀도를 비교하거나, 운동 종목 간 운동 강도를 비교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과거의 나처럼 칼로리에 집착하는 다이어터들에게 제언한다. 살은 숫자가 빼주는 게 아니라 건강이 빼주는 것이다. 당신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면 살은 빠진다. 더 이상 자신의 몸을 학대하지 말고 건강해져야 한다. 몸과 마음에게 다이어트가 아닌 건강을 가르쳐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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