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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Jan 02. 2022

탄수화물은 정말 다이어트의 적일까?-2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더니 탄수화물이 있었다.


탄수화물 넌 대체 뭐니?


  오늘도 입가에 묻은 빵가루를 훔치며 죄책감에 고개를 숙이는 우리에게 탄수화물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3대 영양소 중의 하나, #마음의 평화, #저탄수 식단, #밀가루, #밥, #녹말, #중독.

  많은 태그로 우리에게 꾸준히 어필하고 있지만 그 실체를 알기에는 왠지 모르게 뜨뜻미지근하다. 탄수화물은 본래 먹는 것이니 영양 측면의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래와 같은 키워드는 어떨까?

#태양애너지, #광합성의 산물, #생명의 끈,
#당 복합체, #당질.



  태양은 빛난다. 고로 탄수화물은 존재한다.

  식물은 햇빛을 받으면 이산화탄소와 물을 재료로 화학 애너지와 산소를 생성하고 이 애너지를 유기 분자,  탄수화물저장한다. 이런 과정을 줄여 광합성이라고 부른다. 보이지는 않지만 만물의 이어짐을 끈에 비유할 때, 광합성은 태양과 생명을 잇는 끈이고 식물은 매듭이며  탄수화물은 그 매듭에서 뻗어 나와 우리와 같은 동물을 지탱하는 그물망인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애너지를 얻기 위해 태양애너지를 먹고 산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밥 한 숟갈 속에는 칠흑 같은 우주를 뚫고 지구에 도착한 태양 빛이 들어있다.

  어느 날 태양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얼어 죽거나 숨 쉬기가 곤란해지는 것은 둘째(?) 치고 더 이상 맛있는 밥이나 달콤한 빵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해야 할 것이다!OTL



탄수화물 말고 당질!


  탄수화물이란 단어가 주는 좀처럼 애매모호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수화물(hydrate)'은 물포함하는 물질을 말하는데, 탄수화물을 이 뜻에 맞게 풀이하면 탄소와 물의 유기 화합물이 다. 하지만 다당류를 제외한 탄수화물 대부분은 실제로 물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엥..?

  탄수화물이란 단어는 포도당의 분자식 C6H12O6을 C(H2O)6으로 잘못 해석하여 포도당을 수화물이라고 착각한 데서 비롯되었다. 잘못 번역한 후 의심 없이 써오다가-심지어 한국의 우수한 영양학자들마저도!-이대로 굳혀졌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언어의 사회성이 과학의 정확성을 이긴 멋진 사례가 아닌가?


  수화물인 에탄올이나 탄산나트륨과 달리 탄수화물은 오히려 DNA, 의류, 심지어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 등을 구성하는 고분자 탄소 화합물에 가깝다. 좀 더 자세하게 주사 탐침 현미경(Scanning Probe Microscopy)으로 들여다보면, 탄수화물은 기본적으로 탄소, 수소, 산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소는 1:2:1의 비율을 이루고 있다. 탄수화물계의 대표 격인 포도당을 예로 들면 분자식은 [C6H12O6]인데 탄소 6개, 수소 12개, 산소 6개로 구성되어 있다.

  즉, 탄수화물은 이 세 가지 원소를 주축으로 일정 비율을 유지하며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는 생체 분자다. 그리고 가장 단순한 구조인 [CnH2nOn]을 '단당류'라고 부른다. 여기서 n은 미지수다. n이 3이면  탄소가 3개니까 삼탄당(트라이오스), 탄소가 4개면 사탄당(테트로스), 5개면 오탄당(펜토스) 등으로 부른다. 포도당은 육탄당이 된다. 이러한 단당류가 여러 개 결합하면 다당류가 되는데 이것을 흔히 복합 탄수화물이라고 부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탄수화물이라는 단어가 가진 한계가 드러난다. 탄수화물이라고 하면 밥이나 빵, 옥수수와 같은 퍽퍽한 녹말이나 전분 등을 떠올리기 쉬운데, 설탕이나 과당과 같은 단당류도 탄수화물이라는 사실을 쉽게 놓칠 수 있다. 오죽했으면 당질이라는 쉬운 말을 놔두고 이해를 돕기 위해 설탕을 정제 탄수화물이라고 표현하겠는가. '당=설탕, 탄수화물=빵'이 아니라 '당=탄수화물'인 것이다. 단어의 애매모호성은 때로 인지를 방해한다.

  이와 비슷한 예로 식이섬유가 있다. 설탕처럼 식이섬유도 탄수화물이다! 비록 우리가 소화할 수는 없지만 혈당을 천천히 올리고 장내 유익균의 좋은 먹이가 되는 식이섬유(셀룰로스)는 복합 탄수화물, 즉 난소화성 다당류로 분류된다. 왜냐하면 그 분자 구조 역시 포도당의 중합체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탄수화물이 포함하고 있는 집합의 일관성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성질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려면 '당'에 '바탕 질'(質) 자를 붙여 '당질'이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 이름의 뜻과 발음이 만든 파동이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성명학의 운명론처럼, 탄수화물을 당질로 바꿔 부른다면 좀 더 공고한 영양 관점을 바탕으로 다이어트 성공에 한 발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더니 탄수화물이 있었다.


   약 1만 4000년 전, 지금의 방이동 일대의 숲에서 사냥을 끝내고 귀가하던 철수 씨 눈에 황금빛 식물이 들어왔다. 빙하기가 막 접어든 따뜻한 날씨였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살며시 고개를 숙이고 살랑거리던 그 식물은 교태를 부리며 철수 씨를 유혹했다. 그 부드러운 자태에 넋이 나가기도 잠시, 철수 씨는 수풀을 헤집고 그것의 줄기를 꺾어 집으로 가져왔다. 가족들과 함께 뱀고기를 뜯고 불멍을 때리던 그는 문득 아까 가져온 식물이 생각났다. 줄기의 끝에는 둥글고 납작한 모양의 봉오리 같은 것이 듬성듬성 붙어 있었는데, 마치 아주 작은 솔방울 여러 개가 가냘픈 줄기에 힘겹게 매달린 모습이었다. 항상 호기심이 넘쳤던 그는 봉오리를 손가락으로 비틀고 뜯어 안을 들여다봤다. 하얀색 모래알이 들어 있었다. 그는 모래알을 꺼내 던져보고 맛보고 씹어도 봤다. 딱딱하긴 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단내가 났다. 의외로 먹을만했다. 그러나 손톱의 반도 되지 않는 모래알은 허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철수 씨는 실망을 금치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솔방울들을 불 속에 내던졌다. 그리고 잠시 후, 노릇노릇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뭇가지를 이용해 이미 검댕이 되어버린 솔방울들을 다시 불 밖으로 꺼냈다. 작은 힘으로도 쉽게 바스러지는 탄 껍질을 벗겨내자 설익은 하얀 열매가 보였다. 뭔가 달라졌다. 타기는 했지만 좀 더 부드러워졌고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고소하고 맛있었다. 이 솔방울의 이름은 '소로리 볍씨'였다.

  아주 오랜 세월, 식물은 보란 듯이 탄수화물을 머금고 있었다. 당시에는 차마 그것을 적극적이고 규칙적으로 활용할 수단과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 예나 지금이나 탄수화물은 지구에 가장 많이 축적되어 있는 영양분이다. 제우스가 태초에 만들어 놓은 판도라의 상자는 단지 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볍씨를 수확하기 전까지 철수 씨가 탄수화물을 아예 먹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가을 무렵, 어쩌다가 운 좋게 마주친 달콤한 과일은 기나긴 겨울에 대비해 중성지방을 몸에 축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금이야 과당 때문에 과일 배가 나올까 봐 노심초사 하지만 당시로서 잘 익은 과일 하나생명 그 자체였다. 그리고 마침내 철수 씨의 기나긴 배고픔과 호기심은 볍씨와 만났다. 처음에는 우연의 연속이었고 우연의 관찰은 경험의 축적으로 이어졌으며 경험은 기술이 되었다. 드디어 농사를 할 수 있게 되었. 천천히 열리는 상자의 틈새 탄수화물이 가장 먼저 나왔다. 상자를 활짝 열자 탄수화물 뒤로 이윽고 눈부신 것들과 어두운 것들이 따라 나왔다. 문자, 바퀴, 철학, 전쟁, 과학, 전염병, 자본주의, 산업혁명, 컴퓨터, 비만! 것들은 인간의 몸을 포함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머지않아 특이점이 올 거라는 레이 커즈와일이 듣는다면 조금 섭섭해(?) 하겠지만, 이미 우리는 볍씨를 불에 던진 순간부터 좋든 싫든 여러 개의 특이점을 향해 몇 개의 특이점을 지나쳐 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뱃살에도 특이점이 왔다. 무서우리만큼 고요하던 배꼽 부근의 특이점은 우연한 계기로 빅뱅을 일으켰다. 뱃살이 점점 팽창 중이라는 꺼림칙한 사실을 대부분 쉽게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방복사애너지'가 발견된 후 뱃살팽창가설은 이론이 되었다.

*지방복사애너지 : 이를테면 인슐린 모형에서 말하는 인슐린 저항성 / 혈중 팔미톨레산의 증가 / 지방세포의 염증 / 섭식장애 / 운동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비만의 시대가 도래하기까지 위대한 발견과 찝찝한 발전은 인간의 안과 밖에서 수많은 병리현상을 낳았다. 안에서는 후성비만유전, 에너지 대사의 불균형, 비만 세균과 염증 등이 생겼고 밖에서는 빈부격차와 스트레스, 환경호르몬, 텅 빈 칼로리 상품히트 등이 뒤를 이었다.

  인류학자들은 비만을 대표적인 사회 병리현상으로 바라본다. 나는 좀 더 지엽적으로 비만을 '탄수화물과 결탁한 영양시장 과점부작용'으로 바라본다. 자본주의를 원망한 적은 없지만, 영양시장의 과점은 지금도 원망스럽다. 농경사회를 기점으로 분업화가 가속화하면서 식재료나 식품 생산자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한 탓도 있겠지만, 대자본을 필요로 하는 상품일수록 큰 정부가 나선다고 하더라도 과점 시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어느 후생경제학자의 푸념에 한 숨을 더할 수밖에 없다.

  탄수화물은 3대 영양소 가운데 원가가 가장 싸다. 단백질이나 지방과 달리 지구에서 가장 많은 영양분이고 가공이 쉽기 때문이다. 유통기한도 가장 길다. 또한 결정적으로 가장 맛있다. 그러하니 대자본을 주면서 인간의 3대 욕구를 겨냥한 사업을 펼쳐 보라고 한다면, 단연 식욕에 집중할 것이고 탄수화물 수요자에게 포지셔닝(Positioning)할 가공식품을 개발할 것이다. 겉보기에 단순해 보이는 이 전략은 불안한 사회상과 맞물려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섭식중추의 보상 회로가 일으키는 당 중독 기전'을 그들이 몰랐다고 하더라도 무한한 *고객 충성도가 엿 보이는 가공식품 업계의 아주 높은 *회전율은 영양 독과점 시장에서 가공식품이 차지하는 위상을 한눈에 보여준다. 탄수화물은 가공식품 업계의 메인 플레이어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익룡인 것이다.

고객 충성도 :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고객 충성도는 브랜드와의 감성적인 관계에 집중한 '감정적인 충성도'가 아니라 고객의 행동 패턴에 초점을 둔 '행동적인 충성도'다.
회전율 : 2018년 기준 식품산업통계정보(FIS)에 따르면, 첨가당이 많이 들어가는 음료 제조업의 자기자본 회전율은 약 1.29로, 고기ㆍ과실ㆍ채소 제조업의 자기자본 회전율이 3.69인 것과 비교해 보았을 때 채산성이 아주 좋다는 걸 보여준다. 참고로 운동 후에 마시는 게X레이나 파X레이드도 첨가당이 정말 많다!


  이 부분은 다이어트 컨설팅에서 누누이 강조해 오던 '다이어트 영양 요인'에서 빠질 수 없는 지점이다. "다당류나 복합 탄수화물이 풍부한 자연식품 위주로 드시고 되도록이면 단순당이 많은 가공식품은 줄이셔야 해요. 자연식품은 혈당도 천천히 올리고 지방 분해도 도와주지만, 가공식품은 혈당도 빨리 올리고 웬만하면 거의 애너지로 쓰지 못하고 중성지방으로 변하거든요. 그러니까 아주 가끔만 드세요. 중독에서 벗어나셔야죠. 먹지 말라니깐요!". 네오에게 빨간약을 건네는 모피어스의 심정으로 많은 다이어터들에게 '가공된 당질 식품'의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오라고 잔소리한다. 한편으로는 Birth와 Death 사이에 Choice가 있으니 선택만 하면 될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택이 아니라 강요당하고 있다면?, 중독되었다면? 또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공된 당질은 가성비가 좋고 편의점 음식부터 배달음식까지 너무 흔하고 다양하며, 술과 담배처럼 우리를 중독시키기 때문이다.

※ 가공된 당질 식품(가공식품) 리스트
  즉석식품, 인스턴트 식품, 패스트푸드, 편의점이나 마트 음식, 배달음식, 공장에서 생산된 각종 소스, 베이커리 빵류, 과자류, 초콜릿류,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비타민 음료, 주스류, 드링킹 요구르트류, 잼류, 통조림류, 레토르트 식품 등.
  이 중에서 건강에 해롭지 않은 일부 상품이 있을 수 있다. 보다 자세한 건 해당 식품영양성분 표시를 참고하거나 식품의약 안전처에서 운영 중인 아래 사이트를 참고해 보자.
https://www.foodsafetykorea.go.kr/fcdb/detail/search/list.do


기술과 자본주의는 탄수화물에게 오명을 씌웠다.

  인간은 재료가 주어지면 무언가 쌓아 올리거나 새롭고 이로운 것을 만드는데 능숙하다. 그런데 유독 영양만큼은 거꾸로 하는 듯하다. 멀쩡한 다당류를 가수분해하거나 GMO(유전자변형생물)를 압착해 값싼 첨가당을 만들지를 않나, 단순당에 트랜스지방 가득한 마가린을 더해 내장지방을 끼워 팔고, 무지방 스티커를 붙이고 비싸게 파는데 정작 싸구려 단순당을 듬뿍 넣는가 하면, 심지어 대체인공당질로 맛을 낸 제로칼로리 제품을 들이밀며 나의 소중한 장내 유익균까지 사멸시키고 있다. '쿨럭, 묵었다 아이가..'. 앞으로 얼마나 더 교묘하고 기상천외한 가공 당질 식품이 등장할지 기대된다. 그것들을 먹을 때마다 미래의 병원비를 카카오 뱅크에 미리 입금받을 수만 있다면 덜 억울할지도.


  상자에서 탄수화물이 나온 이후, 사연 많은 역사를 지나 비로소 비만의 시대에 다다랐다. 뱃살이 없는 사람 찾기가 어려워진 요즘, 아직도 애꿎은 탄수화물과 싸우고 있는 분들이 보여 조금 안타깝다. '탄수화물이 잘못했네, 잘못했어'가 아니라 자연식품을 멀리하고 자극적이고 편리한 것들만 쫓는 안일함이 잘못이다. 나는 꿈꾼다. 비만하지 않고 균형 잡힌 당신의 몸을. 탄수화물을 적으로 돌리지 말고 가공된 당질 식품에게 선전 포고하라! 그리고 골고루 먹으라! 귀엽고 사랑스러운(?) 탄수화물에게 키스하! 적군이 아니고 우리 편이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그리고 전진하라! 우리에게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아직 나오지 않은 희망이 남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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