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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Dec 29. 2021

탄수화물은 정말 다이어트의 적일까?-1

YES? 탄수화물 NO?

  지난 50년간 전 세계의 수많은 영양학자들은 탄수화물과 지방 진영으로 나뉘어 피 튀기는 전쟁을 치렀다. 한때는 칼로리 과잉 섭취가 에너지 대사의 불균형을 초래하니까 저지방 식단을 유지해야 한다는 열역학 관점이 우세하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생리학 관점의 '탄수화물-인슐린' 모형에 좀 더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그리고 이 모형은 대중들 사이에서 보란 듯이 히트를 쳤다. 저탄고지로 시작해 팔레오 다이어트를 거쳐 케톤식으로 종지부를 찍는 탄수화물 증오 대열에 나도 서 있었다. 탄수화물의 탄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 이를 갈았고 짜장면을 먹자는 친구에게 짜장면같이 생겼다고 폭격을 퍼부었다.


기분이 저기압일 때는 고기앞으로 가라!


  

  그렇게 생리학 관점의 고상한 조언이 다이어터들 사이에서 점차 진리가 되어갔다. 실제로 살이 빠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제2형 당뇨병 환자들에게도 인슐린 모형은 효과가 있었다. 아니 탁월했다. 저탄수 진영의 선봉에 선 <왜 우리는 살찌는가>의 저자 게리 타우부스와 <그레인 브레인>의 저자 데이비드 펄머터, 그리고 하버드 의대의 데이빗 러드윅 교수 등은 승리를 장담했다. 이제 곧 종전이 코 앞에 있었다.


  근데 아니나 다를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탄수 진영을 마치 지구 평면설을 믿는 확증편향론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연구결과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2013년, 앞선 연구들에서 저탄수 신봉자로 이름을 떨쳤던 스탠퍼드 의대의 크리스토퍼 가드너 박사는 이 전쟁의 최종 빌런이 되기 위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저탄수 vs 저지방' 실험을 강행했다.


(크리스토퍼 가드너 박사의 인터뷰 영상 중)

Effect of Low-Fat vs Low-Carbohydrate Diet on 12-Month Weight Loss in Overweight Adults and the Association With Genotype Pattern or Insulin Secretion.

  실험 기간은 1년이었지만 연구에는 5년이 걸렸다. 심지어 지금도 연구 중이다. 18세 이상 50세 이하, 남녀 600명을 저탄수 진영 300명과 저지방 진영 300명으로 나누고 철저하게 식단을 제한했다. 그야말로 블록버스터급 대규모 실험이었다. 실험 기간 동안 필수 영양을 고려하여 저탄수 진영은 하루 탄수화물 섭취량을 120g 내외로 제한했고 저지방 진영은 하루 지방 섭취량을 50g 내외로 제한했다. 물론, 유의미한 통계치를 얻기 위해 양 진영 간에 하루 총 칼로리 섭취량과 단백질 섭취량을 최대한 일치시켰고 실험 결과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참가자들의 유전적 특이성을 모두 검사했으며, 가공식품의 영양적 변수를 감안하여 참가자들에게는 모두 자연식품을 제공했다. 그리고 결과는 참담했다. 2018년 2월 20일, 샴페인을 터뜨리려고 기쁘게 흔들다가 차마 엄지손가락을 떼지 못하고 연구 결과를 바라보았을 저탄수 진영의 표정은 어땠을까?


  어느 하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는 없었다. 체중 감량, 콜레스테롤 수치, 기초대사량, 인슐린 민감도, 유전형질의 미세한 변화 등 양 진영 간에 이렇다 할 차이는 없었다. 저탄수 진영은 누워서 떡 먹으려다 숨이 턱 막히게 된 꼴이었다. 게다가 그로부터 불과 6개월 뒤, 유명 과학 저널 렌셋에 올라온 15,400명을 대상으로 펼친 설문 연구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결론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또 2020년 초 폴란드의 우츠 의과대학 연구팀은 저탄수 식사를 하는 사람이 고탄수 식사를 하는 사람보다 사망할 위험이 32%나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무시무시한 기세로 세력을 확장하던 조조의 남정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던 적벽대전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교묘하게 페이퍼 사이를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는 우리 몸이 문제일까? 아니면, 아직 과학기술이 부족한 걸까? 실험이 잘못되었나? 살을 빼고 싶은 우리의 염원이 부족했을까?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정답을 구하고 싶거든 정확한 질문을 던지라고 말했다. 부정확한 질문일수록 믿고 싶은 답이 나오기 마련이고 오차가 점점 커지다가 결국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전혀 단순하지도, 명쾌하지도 않은 우리 몸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또 어떻겠는가? 탄수화물은 정말 다이어트의 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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