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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Apr 22. 2023

그들


어둠에 햇살이 닿자 푸른 숲이 칠해졌다.

곧이어 햇살을 말리기 위해 바람이 불었다.
그들은 바람과 함께 춤추며 뿌리를 뻗어 고향의 흙을 다시 꽉 껴안았다.

아직 뺏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가지에 머물던 새들의 노랫소리가 풀잎으로 스며들고, 다람쥐의 작은 발이 어리목 가지를 간지럽히자

그들은 친구들이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비로소

안심했다.


밤이 지났다.

인간의 폭압에 밤새도록 굴복했다가 매일 아침 고통의 씨앗을 뿌렸다.

아침이 왔다.

그들은 이제 복수를 다짐했다.

태초의 지배자들은 증오의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인간은 듣지 못했다.
인간의 발자취는 자욱하게 남아 무심한 손길로 숲을 헤쳤다.
거대한 기계들이 그들의 생살을 베어내자 숲의 감시자들은 인간에게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그 역시 인간은 듣지 못했다.


그들은 인간의 욕망과 부주의를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역사와 발전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인간이 숲을 지키기를 바라며 인간이 그들의 아이였던 때와 지금도 그들의 자식인 것을 잊지 않기를 소망했다.


가장 오래된 지성체는 수백만 번이 넘도록 인간을 용서하고 또 용서했다. 인간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다.

쉴 곳을 원하면 쉬어가라고 했다.

인간이 다가와 그들을 쓰다듬을 때면 기분이 좋았다.

행복했다.

그들은 인간의 발전을 보고 풀잎을 흔들며 박수를 보냈다.

로켓이 우주로 날아가던 날, 그들은 웅성거리며 인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때로 시커먼 매연이 숲을 혼탁하게 할지라도, 더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인간을 미워하는 어머니를 설득했다.

조금 오래 걸려도 인간은 예전처럼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거라고.

그들은 지구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인간의 편이었다.


어느 날, 북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말했다.

인간의 짓이라고 했다.

믿기 어려웠다.

세상은 더 오염되었고 어머니와 숲의 친구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다.

자신들의 어리석음으로 인간의 눈을 멀게 했다고 자책했다.

더 이상 고향의 흙을 끌어안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보다 더 이상 인간의 편을 들 수 없다는 절망감이 그들을 에워쌌다.


숲의 감시자들이 비로소 눈을 떴다.

백만 년 만에 깨어난 그들은 이 모든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인간의 오만과 타락을 지켜보던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몇 십 년이면 충분했다.

인간은 멸종할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사랑하는 존재를 증오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 밤새 몸부림쳤다.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참이었다.

모든 계획은 모든 지구에 전달되었다.

그들의 계획은 인간이 알아차릴 수 없도록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인간의 도시로 지진과 태풍을 보내 우선 몇 백만 명만 죽이기로 했다.

그다음에는 자연에 존재하는 바이러스를 퍼뜨려 우선 몇 천만명만 죽이기로 했다.

그다음에는 습도를 떨어뜨리고 온도를 높여 우선 몇 억 명만 죽이기로 했으며, 인간이 마실 수 있는 물과 공기를 차단하여 남아있는 모든 인간을 죽이기로 했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들은 인간의 절규를 들으며 함께 슬퍼했다.

무리에서 벗어난 몇몇 인간이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숨죽여 외면했다.

돌이킬 수 없었다.

숲의 모든 친구들은 그들의 품에 안겨 오들오들 떨고 있었지만, 그들은 친구들에게 곧 이 불행이 끝날 것이라 말하며 안심시켰다.


아침이 밝았다.

다시 인간이 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유품과 도시를 끌어안고 마지막 슬픔을 토해냈다.

그들은 인간을 기억했다.

인간의 웃음소리, 얼굴, 목소리, 몸, 발가락, 머리카락, 그 모든 것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인간의 도시는 금세 자연의 일부가 되었고 숲의 친구들은 다시 평화를 찾았다.

어머니는 회복을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의 자식들에게 인간이 있었다고 가르쳤다.

그들의 자식들 또한 그들의 자식들에게 인간이 있었다고 가르쳤다.

동물들은 그 사실을 끝내 기억할 수 없었지만, 가장 오래된 태초의 지성체들은 그 사실을 끝내 지울 수 없었다.

꽃 위로 벌이 앉고 햇살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차가운 우주에 운 좋게 떠있음을,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한때 인간이 있었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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