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그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앞서 살펴본 이 4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단지 네 명의 사례자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들의 삶 속에서 일종의 사고 패턴을 떠올렸다. 라캉주의에서 말하는 상징계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사회의 의미화를 벗어나려는 개인적 투사였던 셈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확고한 습관적인 삶 안에서 자신이 마주하는 다양한 실재들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또 다양한 상징성을 부여하는 사람들이었다.
우울하지만 비만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비만의 제1원칙인 과도한 음식 섭취로 살며시 유인하는 그 어떤 상징성도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음식 따위가 그들의 예민한 삶 속에서 차지할 수 있는 조금의 위상도 존재하지 않았다. 먹고 마시는 행위로 우울감을 위로하기보다는 좀 더 세련된 형태의 자위행위가 존재했다. 그는 우울할 때면 일을 더 했고 일이 없으면 회사에 그냥 앉아 있었다.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가장을 텁텁하게 맞아주는 가족들의 마음 한 켠에는 당신께 감사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있을 거라 여기면서 그는 퇴근을 마다했다. 그리고 그녀는 우울감이 잠시 잦아들 때면 마치 사건 현장을 프로파일링 하는 형사처럼 그녀를 괴롭히는 사람과 상황, 물건들을 포착하고 표현했다. 희미한 안갯 속에서 움켜잡을 수 있는 것들을 한 번씩 손에 꼭 쥐고 나서는 다시 그것들을 바람에 흩날려 보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비만하지만 우울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비만 그 자체가 우울한 사실이라는 상징성이 없었다. 사회가 비만자에게 의미화한 부정적인 상징을 구태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아티스트로서의 자신을 사랑했고 세상에 당당했다. 그녀가 정한 행복을 위한 조건에는 건강이 있었지만 우울해지는 조건에는 비만이 없었다. 그리고 그 역시 자신만의 굳건한 방식으로 생각하기를 즐겼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 보다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집중했고 정말 그렇게 행동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또 다른 공통점으로 안정적인 환경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안정적인 환경이라 함은 행복하거나 부유한 환경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단지 말 그대로 변화 없이 이전과 같은 환경을 뜻한다. 보통 급격한 환경 변화는 어느 개인의 사고 패턴을 흔들고 바꿔놓고는 하는데, 안정적인 환경일수록 상징계는 불변하고 그에 따라 사고 패턴의 변화가 드물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이 4명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단순히 우울증과 비만 여부로 가를 수도 있겠지만 그 연결고리를 관통하는 의미심장한 차이점은 우울증을 가지고 있으면서 비만하지 않은 사람들의 비만해질 확률이 그 반대의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보다 높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울증과 비만 모두 걱정스러운 상태인 건 분명하지만 우울증이 좀 더 치료가 힘들고 부작용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4명 중 전자 2명은 다행스럽게도 운이 조금 좋은 상황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울증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만 비만은 시간의 누적이기 때문이다.
넷. 우울증과 비만의 연결고리에 대한 육하원칙.
언제?(연결고리는 언제 생기는가?)
가지고 있는 상징계가 단순하거나 적고 환경이 급변한 직후.
어디서?(연결고리는 어디서 생기는가?)
시상하부(섭식 중추)
어떻게?(연결고리는 어떻게 생기는가?)
우울증 >> 비만 : 섭식 중추에서 일종의 기분 보상회로가 형성되면서 탄수화물 중독 또는 섭식장애에 걸리게 됨.
비만 >>> 우울증 : 시상하부의 기분-호르몬들의 불균형을 경험하면서 만성적인 우울감을 호소하게 됨.
왜?(연결고리는 왜 생기는가?)
우울증 >> 비만 : 우울감을 해소하거나 회피하기 위해 음식을 먹게 되어서
비만 >>> 우울증 : 비만에 대한 사회-의미화를 받아들인 개인은 낮아진 자존감과 열등감에 시달리게 되어서
무엇을?(연결고리는 무엇을 연결하는가?)
우울증과 비만을.
누가?(연결고리는 누가 만드는가?)
나 자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