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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Dec 09. 2021

우울증과 비만의 연결고리-2

그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여정

하나. 우울증이 있는데 비만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50대 중반을 넘긴 그는 나이답지 않게 여전히 회사에 헌신하는 우수한 중간 관리자였다. 쉰 목소리와 날카로운 눈빛을 머금은 깡마른 얼굴 너머에는 늘 인정이 넘치고 속 깊은 구석이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아무런 불평 없이 아내가 골라주는 잿빛 양복과 물방울 넥타이를 매고 한결 같이 지하철에 몸을 싣던 그는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나와 종종 마주치며 출근길 메이트를 자처했다. 내게는 어려운 상대였지만 가벼운 업무부터 잔뼈 굵은 인생 스토리까지 나누는 사이가 되어보니 왠지 모를 측은지심과 동질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도 우울증이 왔다.

  고객사의 갑작스러운 요청으로 밤 9시가 넘도록 야근을 하던 날이었다. 그는 이제 막 주임이 된 나와 함께 퇴근을 마다하고 멀찌감치 앉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군데군데 불이 꺼진 넓은 사무실에는 오직 나와 그뿐이었다. 부산스럽게 타자 치는 소리와 시끄럽게 딸깍 거리는 마우스 소리를 깨고 그가 입을 열었다. "영재야 나 요즘 힘들다. 약 먹어". 나는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그에게로 덥석 고개를 돌렸지만 짐짓 능청을 떨며 대답했다. "네? 잘 못 들었습니다". 똑똑히 들었고 무슨 의미인지, 또 조카뻘인 부하 직원에게 그런 말을 할 만큼 얼마나 참담한 심정인지 알 수 있었기에 나는 되려 뜻 모를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상기된 얼굴로 여전히 그를 응시하고 있는 내게 그는 애꿎은 모니터만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후. 갱년기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사는 게 재미없다. 의사 양반이 심각한 우울증이라고 하는데... 약 먹고 다음 날 일어나면 좀 괜찮아". 그에게 뭔가 심심한 위로라도 건네어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리숙함 사이에서 나는 번뜩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이야기의 물꼬를 막는 데 성공했다. "제 어머니도 우울증이셨는데 약 꾸준히 드시고 완치되셨어요. 감기 같은 거라고 하잖아요. 곧 나으실 겁니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제야 나를 한 번 쳐다봤다. 그리고 퇴근할 때까지 나는 더 이상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지친 하루 끝에 걸린 우울한 풍경이었다.

  평소 그를 잘 안다고 착각했던 나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그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그런 아픔을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아픔을 숨기고 들키지 않을 정도로 그는 순수하고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 후로 2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아주 성실하게 잠들기 전 약 먹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그에게는 규칙적이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저 단순한 행동 하나를 얹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직을 할 때까지 그의 감기는 완치되지 못했다.         

  가끔씩 만취해서 무너져 내리는 그의 낯선 모습 속에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버린 무기력함  깊이를 알 수 없는 한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끈을 부여잡고 죽을힘을 다해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몸부림은 부하 직원들의 귀감이 되는 그의 등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대학 졸업을 코 앞에 둔 첫째 아들과 고등학교 교복을 입기 시작한 둘째 아들 앞에서 그는 자랑스러운 아버지였고 항상 아내의 내조에 기댈 수 있는 듬직한 남편이었다.


ㆍㆍㆍ


  나는 고등학교 내내 선릉역 인근의 패밀리마트에서 주말마다 오전 알바했다. 빠릿빠릿하고 책임감 넘치는 모습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를 예쁘게 봐주셨던 점주 아주머니가 기억난다.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마주치는 진상 손님들과 각종 사건사고들, 그리고 일과 육아의 병행으로부터 차 오르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들 때문에 여러 군데에서 처방받은 각종 신경안정제와 청심환을 달고 살았다. 마치 그 공간에 머무는 모든 이들에게 일부러 보여주려고 의도라도 한 듯 워크인쿨러 문 앞에 놓여있던 여분의 매대 위에는 꽤 자주 병원 이름이 인쇄된 약 봉투들이 눈에 띄었다.

 44kg도 나가지 않는 몸으로 매장을 이리저리 활보하며 빠르게 움직이는 손놀림은 그녀가 우울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열심히 사는 워킹맘일 뿐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열심히 산다고 해도 스트레스가 범람하는 삶은 빗겨나갈 수 없었다. 유흥가에 불이 켜지는 늦은 저녁 시간마다 사연 많은 취객과 기고만장한 일부 유흥업 종사자들, 그리고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한껏 끌어안고 거칠게 씩씩거리는 몇몇 넥타이들 때문에 그녀의 신경은 바람 잘 날 없었다. 2주에 한 번씩은 경찰차가 다녀갔고 퇴근 후에 시작되는 각종 집안일과 육아는 끝이 없었다. 마치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구르는 얼음 덩어리 마냥 그녀가 마주한 일상은 말 그대로 소모전이었다. 전보다 좋은 조건으로 가맹 재계약을 한 지 얼마  되었다고 말하면서 다음에는 꼭 가게 일을 접고 싶다던 그녀의 푸념 사이로 희미한 불안감이 넘실거렸다.

  어쩌다 우울한 이야기의 봇물이 터지기라도 하면 그녀는 숨도 쉬지 않고 빠르게 말하며 금세 단편 한 권을 완성했다. 그녀의 일상 곳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트리거들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그것들을 포착하고 표현하기 위해 그녀는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듯 보였다. 위험하고 불확실한 무엇인가를 유추하고 인지하는 걸 넘어, 비로소 자기 식대로 정확히 표현해야지만 인생의 통제력을 획득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표현 뒤에 이어지는 끊임없는 반추는 그녀를 괴롭혔다. 말하면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나면 기억이 떠올랐으며, 기억이 나면 다시 말해야 했다. 그녀는 시지프스처럼 내일이면 다시 떨어질 무거운 바위를 혼자서 힘겹게 옮기고 있었다.




. 비만하지만 우울증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냅킨공예에 푹 빠진 그녀는 한 번 앉으면 해가 지도록 일어날줄 몰랐다. 냅킨 서랍장부터 에코백, 부채, 심지어 와인병까지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은 물건이 없을 정도로 냅킨공예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냅킨을 수놓은 다양한 그림들을 직접 그려 넣는 경지까지 오른 그녀는 지역 공방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꽤 유명한 냅킨 아티스트로 통했다. 그녀가 지도하는 8명 남짓의 정기 공예반은 항상 포화 상태였고 그녀의 걸작들 일부는 수도권의 몇몇 아트갤러리에서 완판 행진을 이어나갔다.

  그녀를 처음 본 건 2017년 어느 겨울의 쨍쨍한 아침을 맞은 한강 공원이었다. 내가 맡고 있던 러닝 레슨에 수강생으로 참여한 그녀는 화사한 핑크빛 바람막이와 검은색 츄리닝 바지를 입고 당당하게 등장했다. 다소 통통했던, 아니 체지방이 많아 보이는 그녀는 나와 수강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이 한강 공원을 뛰어서는 안 된다라는 법은 없지만 달리기에 실리는 과체중이 몸에 아주 큰 스트레스를 줄 수 있었기에 나는 그녀에게 비교적 에두른 설명을 하고 저강도 조깅을 주문했다. 근데 의외로 그녀는 조깅을 아주 잘했고 또 예상외로 아주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비만한 여성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소심, 위축, 짜증, 우울 같은 것들은 그녀를 몰랐다. 어쩌면 그런 꼬리표 자체가 아예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페르소나가 짙은 그녀일 거라 지레짐작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과 삶에 대한 애착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빛나는 입술은 결코 가면으로 가릴 수 없는 작은 태양이었다.

  짧지만 길었던 6개월간의 레슨이 끝나던 날, 그녀는 무려 17kg을 감량했다며 내 두 손을 아주 꼭 쥐었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서로의 직업에 대한 존중의 의미였을까, 나와 그녀는 어느새 서로에게 '선생님'이라 부르고 있었는데 서로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선생님""아이구 제가 감사하죠. 선생님"이 마치 탁구대 위를 왕복하는 탁구공처럼 핑퐁핑퐁 거렸다.


ㆍㆍㆍ


  "야 너 살 안 뺄 거야?" 오랜만에 만난 그는 가성비가 좋다며 나를 한식뷔페로 데려왔다. 녀석과 오랜만에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 좀 할까 했는데 그의 입을 틀어막은 음식들이 얄궂게 느껴졌다. 그는 자칭 다이어트 전도사인 내게 유일하게 도전장을 내미는 친구였는데 살 좀 빼자고 어르고 달래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살을 왜 빼? 사는데 아무런 지장 없는데? 나는 내가 좋고 행복해~ 마귀야 물러가라~ 훠이훠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180cm에 105kg가 넘는 거구였지만 그의 마음은 누구보다 가벼웠다. 걱정 없이 계획대로 행동했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여행을 떠나 늘 참신한 해결책을 들고 돌아왔다. 초딩 입맛에 중딩 같은 옷을 즐겨 입는 그였지만 나름 잘 나가는 어플 개발자였다. 불가피한 직업 환경 때문에 살이 찐 것 같아 보여도 그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들은 그의 낙천적인 성격이  한몫했다고 여겼다. 친구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할 때마다 중재자로 나섰고 나같이 고집 센 친구도 누그러뜨릴 만큼 수더분한 성격이었다. 탕수육에서 수세미 가닥이 나왔을 때도, 여자친구가 바람을 핀 사실을 알았을 때도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달라질게 뭐 있겠나며 화도 내지 않고 넘어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야 너는 속이 참 편~~하다. 어쩜 그러냐?"라고 그에게 핀잔을 날리는 나였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그런 마음가짐이 참 부럽기도 했다.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거나 사소한 불합리들이 눈엣 가시가 될 때면 감정의 칼을 빼드느라 얼마나 마음을 긁히곤 하는가.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고 오롯이 세상 흐름에 몸을 맡기며 섬세하게 좌현과 우현을 조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물살이 거셀수록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첨벙 대며, 부정적인 노질로 긍정적인 여정을 기대하는 내 모습이 그의 눈에는 어떻게 비치어졌을까. 이런 생각이 든 이후부터는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살을 빼라는 인사치레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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