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SNS 사진이 교도소에?
현직 교도관의 고백. [어느날, 살인자가 말을 걸어왔다]
사계절 내내 차가운 문이 있다.
교도소 긴 복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위치한 이 문은 겨울은 물론이고, 숨 쉬기도 버거운 한 여름에 손등을 대보아도 묘한 한기가 손등에 스며들듯 전해온다. 이 방의 크기는 2.18 평방미터. 1평 남짓의 문 곳곳에는 부식된 페인트와 철의 조각들이 뒤엉켜 흩날리듯 바닥에 떨어져 있다. 오래된 세월 동안 굳게 다문 입술처럼 방은 어떤 비밀을 그리 감추고 싶어 하는 건지 한번 닫히면 쉽사리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방의 주거인도 방바닥에 바짝 엎드려 툭 하고 세상의 끝에 떨어져 버린 듯 누워있다. 사람 한 명 간신히 누울 자리와 화장실이 전부인 이 방 한쪽 벽면엔 낡은 선풍기 한대가 달달거리는 소리를 내며 사력을 다해 날을 돌린다.
31실.
여기, 이 방엔 사람이 살고 있다. 먹고 자고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말 그대로 사람이 주거하는 공간이다. 사실 '주거'라는 개념은 사람이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이자, 식기와 침구류 등이 나열돼있는, 말 그대로 사생활을 보장받는 공간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에 예고도 없이 불쑥 들어온다면?
"꼼꼼히 뒤져. 뭐 나오는지 잘 보고."
누군가 주거하는 생활공간에는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반쯤 벌어져있는 칫솔, 만 원짜리 로션, 철 지난 탈모샴푸, 먹다 남은 고추장 통과 그 옆엔 초코파이 박스로 만든 수납 통도 놓여있다. 화장실 창문엔 날짜 지난 일간 신문지로 만들어놓은 신문지 커튼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마치 이 방의 분위기를 보충 설명해주려는 듯 이 커튼? 의 한 면엔 이런 타이틀이 적혀있다.
소년범죄, 이대로도 괜찮은가.
쉽게 결론 내지 못할 주제의 문구가 무심하게 적혀있는 신문지를 뜯어내니 아니나 다를까 창문 너머 세로줄 쇠창살이 드러났다. 쇠붙이 창살 아래 사는 형편에다가 넉넉지 않은 세간살이지만 난 그마저도 용납할 수 없다는듯한 손놀림으로 창문에 붙인 신문지와 초코파이 박스로 만든 수납통을 사정없이 뜯어냈다. 그리고 창문 밑에 켜켜이 쌓아놓은 대여섯 권의 도서목록에서 맨 위에 놓인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나는 책의 페이지를 먼지 털어내듯 넘겨갔다. 그 순간 꽂혀있던 책갈피가 툭하고 떨어졌다. 책갈피가 있던 그 자리에, 난 그가 주황색 형광펜으로 칠한 한 문구를 나지막이 따라 읽었다.
'오오, 천사여! 그대를 위하여 나는 살아야겠다!'
천사라...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이 문장에 형광펜을 칠한 걸까. 이 남자는 무슨 사연으로 이곳에 들어왔을까. 보급받은 런닝은 며칠이나 갈아입지 않았는지 군데군데 구멍이 송송 나있다. 구겨져있는 그의 런닝처럼 나의 모습을 보는 그의 표정도 일그러져있다.
"빨리 보고 나가세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남성. 조직폭력이나 마약사범은 아니다. 그저 집 앞에 잠시 담배 한대 피러 나갔다가 마주친 평범한 이웃집 중년 남성처럼 그의 모습은 어느 하나 특별한 게 없다.
"조용히 하고 벽 쳐다보고 서있으세요."
이 사람은 내가 무슨 내놓은 방을 보러 온 부동산 중개인쯤 된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이번엔 세면대 쪽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싱크대 물컵 통엔 고혈압 이뇨제 뭉치와 파란색 알약 박스가 하나 있다. 알약 박스엔 전립선 비대증에 좋다는 쏘팔메토의 효능이 적혀있다. 마냥 남일 같지 않은 그의 알약통을 뒤적이며 나는 잠시 볼록 나온 내 배와 얇은 팔다리를 번갈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내 시선은 박스 밑에 보물처럼 숨겨놓은 한 사진첩에 집중됐다. 간혹 사진첩 사이에 지급받은 약들을 모아놓고 한꺼번에 과다 복용하는 사례가 있기에 더욱 꼼꼼히 봐야 했다. 이십여 장의 사진들은 모두 한 사람.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이 환히 웃고 있는 사진들이었다. 공원에서, 놀이터에서, 미소 짓고 있는 그 여학생의 사진들을 보고 있다 보니 내 마음이 잠시 숭숭해졌다.
'딸인가... 아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일 텐데...'
살아가면서 부모의 이혼이나, 파산, 갈등은 사춘기를 겪는 아이에겐 큰 혼돈일 것이다. 그런데 부모의 구속이라니, 이 여학생의 삶에 아버지의 부재는 마음 한 모서리에 원망의 감정을 일으키기도 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의 방 이불 사이에 꽂아놓은 흰 봉투들은 모두 수신인에게 도달하지 않은 반송된 편지들이었다. 딸의 사진들과 반송된 편지, 벽을 쳐다보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니 괜한 연민이 들었다.
그와 좀 더 인간적인 말투로 대화를 하는 게 나았을까.
"검사 다 끝났어요. 신문지로 창문 가리지 마시고 정리정돈 깔끔하게 하세요. 그리고..."
나도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라 그런 건지. 평소에 잘하지 않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툭 나왔다.
"나중에 출소하게 되면 가족들 생각해서라도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 마세요."
나름 딸아이를 그리워하는 그 남자를 위한답시고 한 얘기였지만 다소 명령하듯 얘기한 건 아닌지 어색함이 밀려왔다. 그는 내 얘기엔 대꾸하지 않고 그저 말없이 어지럽혀진 자신의 방을 쪼그려 앉아 정리했다.
머쓱한 걸음걸이로 담당실에 들어와 검사표를 작성했다. 난 타인의 생활양식이 담긴 공간을 불쑥 들어가 마구 휘젓고 돌아 나왔다. 불시에 시작되는 방 검사는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에 들어간다는 건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텁텁한 입속을 다시며 그의 수용번호를 전산에 입력했을 때, 모니터에에 그의 인적사항이 드러났다.
-죄명: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
-결혼 여부: 미혼
-자녀 유무: 무
등본상에 그는 결혼한 적도 없었고, 자녀도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진의 그 여학생은 누구였을까. 예전에 어느 뉴스기사에서 이런 기사를 본적이 있다. 누군가 SNS에 공개된 불특정 다수의 일반 여성 사진들을 캡쳐해 구속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판매한다는 것이다. 내 권한으로 그 사진을 검열해 반송시킬수도 없을뿐더러, 가족인지 일면식도 없는 일반인 SNS사진인지 알수있는 방법도 없다. 심지어 그 얼굴사진의 뒷배경에는 주거지를 특정할수있는 장소가 나와있었다.이곳의 어두운 기운 때문인지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이 멈춤 버튼 없이 머릿속에 상영하듯 재생됐다. 설마 아니겠지.
이 방의 그에게 있어 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고, 나에게도 그는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우린 교도소라는 공간을 공유했다. 차가운 철문 하나를 그 사이에 두고.
얼마 후, 그가 떠나고 다음 주거인이 그 방에 들어왔다. 나는 떠난 사람의 죄명이 적힌 명단을 뺀 자리에 새로 들어온 사람의 명단을 끼워 넣었다. 안타깝게도 이번 주거인의 죄명은 살인 유기였다. 이 안의 이야기들은 이처럼 작은 1평짜리 방이 담기에는 너무 크고 짙다. 도심에서 떨어진 조용하고 인적 드문 산 중턱을 깎아 위치한 교도소지만, 그 안의 분노와 회한의 사연들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있다.
7성급 호텔보다, 풀장 딸린 고급 리조트보다 훨씬 더 북적북적하며, 365일 비수기가 없는 이 작은 방들은
오늘도 만실滿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