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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Jun 29. 2022

당신의 SNS 사진이 교도소에?

현직 교도관의 고백.  [어느날, 살인자가 말을 걸어왔다]

  사계절 내내 차가운 문이 있다.

교도소 긴 복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위치한 이 문은 겨울은 물론이고, 숨 쉬기도 버거운 한 여름에 손등을 대보아도 묘한 한기가 손등에 스며들듯 전해온다. 이 방의 크기는 2.18 평방미터. 1평 남짓  곳곳에 부식된 페인트와 철의 조각들 뒤엉켜 흩날리듯 바닥에 떨어져 있다. 오래된 세월 동안 굳게 다문 입술처럼 방은 어떤 비밀을 그리 감추고 싶어 하는 건지 번 닫히면 쉽사리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방의 주거인도 바닥에 바짝 엎드려 툭 하고 세상의 끝에 떨어져 버린 듯 누워있다. 사람 한 명 간신히 누울 자리와 화장실이 전부인 이 방 한쪽 벽면엔 낡은 선풍기 한대가 달달거리는 소리를 내며 사력을 다해  돌린다.

31실.

여기,  방엔 사람이 살고 있다. 고 자고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말 그대로 사람이 주거하는 공간이다. 사실 '주거'라는 개념은 사람이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이자, 식기와 침구류 등이 나열돼있는, 말 그대로 사생활을 보장받는 공간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에 예고도 없이 불쑥 들어온다?

"꼼꼼히 뒤져. 뭐 나오는지 잘 보고."

누군가 주거하는 생활공간에는 그 사람의 에 대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반쯤 벌어져있는 칫솔, 만 원짜리 로션,  지난 탈모샴푸, 먹다 남은 고추장 통과 그 옆엔 초코파이 박스로 만든 수납 통도 놓여있다. 장실 창문엔 날짜 지난 일간 신문지로 만들어놓은 신문지 커튼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마치 이 방의 분위기를 보충 설명해주려는 듯 이 커튼? 의 한 면엔 이런 타이틀이 적혀있다.

소년범죄, 이대로도 괜찮은가.

쉽게 결론 내지 못할 주제의 문구가 무심하게 적혀있는 신문지를 뜯어내니 아니나 다를까 창문 너머 세로줄 쇠창살이 드러났다. 붙이 창살 아래 사는 형편에다가 넉지 않은 세간살이지만 난 그마저도 용납할 수 없다는듯한 손놀림으로 창문에 붙인 신문지와 초코파이 박스로 만든 수납통을 사정없이 뜯어냈다. 리고 창문 밑에 켜켜이 쌓아놓은 대여섯 권의 도서목록에 맨 위에 놓인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은 베르테르의 슬픔]

나는 책의 페이지를 먼지 털어내듯 넘겨갔다. 그 순간 꽂혀있던 책갈피가 툭하고 떨어졌. 책갈피가 있던 그 자리에,  주황색 형광펜으로 칠한 한 문구를 나지막이 따라 읽었다.

'오오, 천사여! 그대를 위하여 나는 살아야겠다!'

천사라...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이 문장에 형광펜을 칠한 걸까. 이 남자는 무슨 사연으로 이곳에 들어왔을까. 보급받은 닝은 며칠이나 갈아입지 않았는지 군데군데 구멍이 송송 나있다. 구겨져있는 그의 닝처럼 나의 모습을 보는 그의 표정도 일그러져있다.

"빨리 보고 나가세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남성. 조직폭력이나 마약사범은 아니다. 그저 집 앞에 잠시 담배 한대 피러 나갔다마주친 평범한 이웃집 중년 남성처럼 그의 모습은 어느 하나 특별한 게 없다. 

"조용히 하고 벽 쳐다보고 서있으세요."

이 사람은 내가 무슨 내놓은 방을 보러 온 부동산 중개인쯤 된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번엔 세면대 쪽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싱크대 물컵 통엔 고혈압 이뇨제 뭉치와 파란색 알약 박스가 하나 있다. 알약 박스엔 전립선 비대증에 좋다는 쏘팔메토의 효능이 적혀있다. 냥 남일 같지 않은 그의 알약통을 뒤적이며 나는 잠시 볼록 나온 내 배와 얇은 팔다리를 번갈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러다 내 시선은 박스 밑에 보물처럼 겨놓은 한 사진첩에 집중됐다. 간혹 사진첩 사이에 지급받은 약들을 모아놓고 한꺼번에 과다 복용하는 사가 있기에 더욱 꼼꼼히 봐야 했다. 이십여 장의 사진들은 모두 한 사람.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이 환히 웃고 있는 사진들이었다. 공원에서, 놀이터에서, 미소 짓고 있는  여학생의 사진들을 보고 있다 보니 내 마음이 잠시 숭숭해졌다.

'딸인가... 아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나이일 텐데...'

살아가면서 부모의 이혼이나, 파산, 갈등은 사춘기를 겪는 아이에겐 큰 혼돈일 것이다. 그런데 부모의 구속이라니, 이 여학생의 삶에 버지의 부재는 마음 한 모서리에 원망의 감정을 일으키기도 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의 방 이불 사이에 꽂아놓은 흰 봉투들은 모두 수신인에게 도달하지 않은 반송된 편지들이었다.  사진들과 반송된 편지, 을 쳐다보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니 한 연민이 들었다.

그와 좀 더 인간적인 말투로 대화를 하는 게 나았을까.

"사 다 끝났어요. 신문지로 창문 가리지 마시고 정리정돈 깔끔하게 하세요. 그리고..."

나도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라 그런 건지. 평소에 잘하지 않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툭 나왔다.

"나중에 출소하게 되면 가족들 생각해서라도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 마세요."

나름 딸아이를 그리워하는 그 남자를 위한답시고 한 얘기였지만 다소 명령하듯 얘기한 건 아닌지 어색함이 밀려왔다. 그는 내 얘기엔 대꾸하지 않고 그저 말없이 어지럽혀진 자신의 방을 쪼그려 앉아 정리했다.

머쓱한 걸음걸이로 담당실에 들어와 검사표를 작성했다.  타인의 생활양식이 담긴 공간을 불쑥 들어가 마구 휘젓고 돌아 나왔다. 시에 시작되는 방 검사는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에 들어간다는 건 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텁텁한 입속을 다시며 그의 수용번호를 전산에 입력했을 때, 모니터에 그의 인적사항 드러났다.


-죄명: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

-결혼 여부: 미혼

-자녀 유무: 무


등본상에 그는 결혼한 적도 없었고, 자녀도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진의 그 여학생은 누구였을까. 예전에 어느 뉴스기사에서 이런 기사를 본적이 있다. 누군가 SNS에 공개된 불특정 다수의 일반 여성 사진들을 캡쳐해 구속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판매한다는 것이다. 내 권한으로 그 사진을 검열해 반송시킬수도 없을뿐더러, 가족인지 일면식도 없는 일반 SNS사진인지 알수있는 방법도 없다. 심지어 그 얼굴사진의 뒷배경에는 주거지를 특정할수있는 장소가 나와있었다.이곳의 어두운 기운 때문인지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이 멈춤 버튼 없이 머릿속에 상영하듯 재생됐다. 설마 아니겠지.

이 방의 그에게 있어 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고, 나에게 그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우린 교도소라는 공간을 공유다. 차가운 철문 하나를 그 사이에 두고.


얼마 후, 그가 떠나고 다음 주거인이 그 방에 들어왔다. 나는 떠난 사람의 죄명이 적힌 명단을 뺀 자리에 새로 들어온 사람의 명단을 끼워 넣었다. 안타깝게도 이번 주거인의 죄명은 살인 유기였다. 이 안의 이야기들은 이처럼 작은 1평짜리 방이 담기에는 너 짙다. 도심에서 떨어진 조용하고 인적 드문 산 중턱을 깎아 위치한 도소만, 그 안의 분노와 회한의 사연들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있다.

7성급 호텔보다, 풀장 딸린 고급 리조트보다 훨씬 더 북적북적하며, 365일 비수기가 없는 이 작은 방들은


오늘도 만실滿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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