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님, 교도소에서 귀신 본 적 있어요?
현직 교도관이 들려주는 진짜 교도소 이야기
뙤약볕 내리쬐는 8월의 어느 날, 한 언론사 월간지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귀신이요...?
-네. 혹시 교도소에서 근무하시면서 겪은 오싹했던 경험이 있으실까요? 괴담이라던가...
기자는 뜬금없이 '교도소 괴담'에 대해 물어봤다. 여름이 돌아오자 폭염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줄 서늘한 이야기가 필요한 모양이다. 나 또한 여름이 되면 진득한 피가 낭자하고 무덤을 파헤치고 기어 나오는 좀비물을 보며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곤 한다. 무섭고 피해야 할 공포라는 감정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2시간남짓의 러닝타임 동안 몰아붙이는 쫄깃함은 사람들의 쾌락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제 공포라는 감정은 오락거리 중 하나로 탈바꿈한 게 아닌가 싶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면서도 '공포'를 찾는 인간의 심리는 어찌 보면 두려움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한 훌륭한 대용품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 지금 너무 무서워!'라고 자신의 약한 모습을 사방팔방 떠들고 싶은 사람은 몇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내 귀에도 몇 가지 들려오는 소문은 있다. 교도소가 공동묘 지위에 지어져 원혼이 많다는 둥, 과거 삼천 교육대가 있던 자리에 교도소를 세웠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는 말 그대로 '소문'들이었다. 난 사실 귀신의 존재에 대해 그리 신뢰하는 편은 아니다. 교도관이 되고 교도소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나에게 귀신이나 유령 같은 실체가 없는 것들은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만약 퇴근 후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잠깐 잠에서 깼다고 치자. 내 눈앞에 눈이 시뻘건 귀신이 있는 것과 화장실 거울 앞에 살인죄를 저지른 수용자가 있는 것을 비교해본다면 어떤 것이 더 공포스러울까. 백번을 물어봐도 당연 후자다. 하지만 나에게 교도소 괴담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의 호기심은 이해가 간다. 사실 사람의 원한이 한 곳에 모여있는 곳, 전 세계를 다 뒤져봐도 교도소보다 더한 곳이 또 있을까.
-교도소 근무하기 무섭지 않으세요?
많은 사람들이 내게 교도소에서 일하는 것이 무섭지 않으냐고 묻는다. 사람을 살해하고 유린한 자들 틈 속에서 매일같이 부대껴 지내는 게 걱정되지 않냐는 물음일 것이다. 처음 교도관에 임용되고 이곳에 갇힌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 난 내심 놀랬다. 그들은 내가 상상한 흉악범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교도관님, 저 사람 조심하세요. 두 명 보낸 사람이에요.
-보냈다니요?
-사람 두 명을 죽여서 토막 낸 사람이에요. 뉴스에서 못 보셨어요?
한 중년 남성이 나에게 살갑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자 옆방에 있는 수용자가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였다. 그의 얘기를 듣고 돌아 생각해보니 그 중년 남성은 유독 피부가 하얬다. 마치 피가 통하지 않는 사람처럼. 그 얼굴로 사람을 살해했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았다. 난 사무실로 들어와 방금 사람을 살해했다는 그의 인적사항을 확인했다. 하지만 옆방 남자의 말과는 달리 그 중년 남성의 죄명은 '절도'였다. 왜 나에게 이런 거짓말을 했을까. 뒤늦게 알았지만 두 명을 살해해 토막 낸 장본인은 나에게 속삭였던 옆방의 그 남자, 본인이었다. 가끔 그의 목소리와 숨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던 게 떠올라 소름이 돋아 오른다. 그러고 보니 나도 출근길에 그 살인사건의 기사를 보며 댓글을 달았다. 부디 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저 사람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려 달라고. 그날 이후 난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는 그 사람의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판단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처음엔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구나라고 느꼈다. 하지만 내가 본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폭력성을 내비쳤다. 많은 곳의 교도소는 보통 백여 명이 넘는 수용자들이 수감된 곳에 교도관 한 명이 투입된다. 무기는 지참할 수 없다. 내가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유사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손바닥만 한 작은 무전기, 그것이 내 생명줄이다. 한 번은 내가 아는 선배 한분이 수용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요구하는 약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현장 교도관은 약을 처방할 수 없다. 수용자에게 약이 지급되려면 면허가 있는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한다. 선배는 결국 뇌진탕 진단을 받고 입원을 하게 됐다. 더 안타까운 건 그의 빈자리의 안타까움을 느낄 틈도 없이 남은 교도관들은 그 자리를 메꿔야 된다는 것이다. 인력 충원은 요원하다. 아침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는 일이 잦아지니 교도소 귀신을 얘기하기 전에 내가 이곳의 지박령地縛霊이 된 건 아닌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심지어 근무 중에 폭행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 요양이 필요한 사람이 눈치를 보며 쭈뼛될 때, '왜 우리는 이렇게 밖에 대우받지 못하는가'에 대해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귀신은 모르겠다. 그저 이것이 교도소에서 내가 느낀 기이하거나 무서운 '괴담'이다.
원한을 품은 천년 묶은 피 철갑 된 귀신과 연쇄살인범이 나오는 공포영화. 전기톱으로 사람을 토막 내고 피를 뽑는 장면을 보며 우리는 공포와 긴장감, 그리고 이것이 실제 상황이 아니라는 데에서 오는 안도감을 느낀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픽션이라는 것이 명백해야지만 비로소 오싹한 쾌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정말 허구만의 이야기일까. 실제 현실엔 각본이 없다. 그리고 이곳은 교도소다. 교도소에서 일하고 있는 내가 이 부분에서 할 말은 이것뿐이다.
귀신이 무섭냐고? 글쎄, 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