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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Aug 01. 2023

주저흔

프롤로그 (길을 잃을때마다 하나씩 그었던 나의)

   

학교밖 청소년 30, 은둔형 외톨이 61.

누구에게나 살면서 하나쯤 가슴에 새긴 주저흔이 있다

길을 잃을 때마다 하나씩 그었던 나의 주저흔               


들어가며(prologue)     


비가 오기 직전엔 왜 그리도 그 시절이 떠오를까요.

퇴근길, 차 보닛위로 떨어져 부서지는 비의 모습을 보면서 그간 지나온 무수한 날들이 떠오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올라갈 즈음에 저는 학업을 그만두었습니다. 자퇴내고 학교 정문을 나와 뒤를 돌아볼 때도 지금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그 이후로 저는 방문을 걸어 잠 갔습니다. 그리고 커튼을 내려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빛을 차단했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그리고 3년이 지났을 무렵에 극단적인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을 참 오랫동안 품고 살았습니다. 몰입이라는 게 참 무섭더라고요.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곧 그 방법에 대해서도 가지를 뻗쳤습니다. 중간중간 약을 복용하기도 하고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아르바이트도 나갔지만 길어야 두 달, 저는 다시 제 발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처음엔 학교 밖 청소년들과 어울려 가출을 하기도 했고 잠시 밴드생활도 한 적이 있습니다만,  저에겐 보이지 않는 어떤 중력이라도 존재하는 것처럼 다시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자기 연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17년이 흘렀습니다. 그 17년 중에 6년은 외부와 단절한 채로 지냈습니다. 스스로를 가뒀죠.

경기도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밖청소년은 9만 명이 넘고 대한민국 전체로 보면 30만 명이 넘을 것이라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는 서울시에만 12만 9천 명, 전국으로 따지면 61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길을 잃은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이미 늦은 거 아니에요? 이제 와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저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상담사로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만나는 학교 밖 위기 청소년, 은둔형 외톨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마음  좌절과 분노, 후회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목격됩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을 너머 가장 깊숙한 곳에는 '행복을 바라는 열망'이 고개를 내밀지 못하고 움츠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겠지만 그 열망을 찾아내고 다시 불씨를 피우게 도와주는 것이 심리상담사인 저의 소명이겠죠.


"선생님이 저 같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요. 바닥까지 내려간 기분을... 죽고만 싶은 마음을요."

"아니요. 저는... 저도..."


차마 저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공감과 경청의 문제를 떠나서, 마음에 출혈이 생겨 저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를 해도 될지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도영 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분들의 마음은 도영 씨가 제일 잘 알잖아요. 어떻게 그 깊은 곳에서 다시 세상으로 나왔는지를, 그것만큼 큰 동기부여는 없을 거 같은데요. 용기를 내보세요."


박사생 1년 차 때 교수님이 저의 이야기를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시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4년간의 학교 밖 청소년, 6년간의 은둔생활, 7년간의 취업준비, 그 밖에도 저를 지칭하는 표현은 다양했습니다. 자퇴생, 학력미달자, 백수, 패배자, 꼴통, 낙오자 등등. 그렇게 17년의 세월을 무심하게 흘려보냈던 저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야 결심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저의 치부라고만 생각했던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깊고 새까맣던 늪에서 나와 세상으로 한걸음 내디뎠으니까요.     


당시에 저도 누군가는 저를 바라봐주기를 바랐고 공감받고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청소년학개론에 나올법한 이론들은 그 어떤 답도 제시해주지 못했습니다. 이유를 몰라서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이유를 너무 잘 알기에 더 괴로운 것인데 세상은 원인과 답을 찾으려고만 했기 때문이죠.     


때로는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어주는 것보다,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게 더 큰 위로가 됩니다.     


어디선가 스쳐 지나가며 눈에 익혔던 글귀가 생각납니다. 저도 소위 말하는 '바닥 치기'를 경험했습니다. 신경쇠약에 걸리고 사회공포증에 우울증 약도 소용이 없어서 그 젊고 어린것이 하루종일 죽고 싶다는 생각 했다는 것에 바보같이 눈물도 납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그거 아시나요? 어떤 물체든 바닥을 치면 분명히 반동을 일으켜 살짝 어오릅니다. 어떤 것도 예외는 없습니다. 바닥을 치면 그 반동을 이용할 기회는 분명히 있습니다. 자퇴생의 한은 저를 박사과정에 이르게까지 만들었고 수년간 그 캄캄한 방 안에서 수도 없이 머릿속에 떠올리던 생각들은 잘 정돈된 책이 되어 세상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세상이 무서워 수년간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내밀지 못했던 제가 대학강단에 서고 강연을 다니며 상담사로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죠.

그렇다고 항상 행복한 건 아닙니다. 지금도 저 뒤로 밀어 넣었던 우울과 좌절이 다시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전 이 '반동의 법칙'을 항상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든 다시 뛰어오를 수 있다고 믿으면서요.

오늘은, 여러분이 뛰어오를 차례 아닐까요?     


두서가 길었습니다.

1992년의 어느날, 선선한 바람이 불던 가로등 등불 밑에 서있던 빼짝마른 한 소년의 길고 깊었던 여정.

그럼 이제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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