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서 구하소서

교도소에 들어간 심리상담사(Q에 대하여) 2화.

by 김도영

한강이 보이는 여의도역 4번 출구.

차가운 바람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사거리 코너 안쪽에 자리 잡은 건물을 바라보며 잠시 걸음을 멈췄다. 오늘은 여성가족부 주관 성폭력·가정폭력 전문상담원 과정의 마지막 날이었다.

건물 앞 공원에서 낙엽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노란 은행잎과 붉은 단풍잎들이 뒤엉켜 땅에 떨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마치 인간의 운명처럼 떨어지고, 일어서고, 다시 떨어지고. 영원히 반복되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변할 수 있을까


나는 속으로 이 질문을 되뇌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교육장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사회복지사, 상담사, 교사, 경찰관, 그리고 나. 각자 다른 현장에서 인간의 내면을 마주하는 사람들. 우리는 지난 몇 달 동안 성범죄의 유형과 특성, 피해자 심리 및 상담기법을 배웠다. 하지만 배울수록 더 깊어지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의문이었다.

“교도관님, 오늘로 과정이 끝나네요. 소감이 어떠세요?”

교육 담당자가 수료증을 건네며 물었다.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질문이 생겼어요.”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지식이 쌓일수록 현실의 복잡함은 더욱 선명해졌다. 마치 안개가 걷히면서 험준한 산맥이 드러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실 것 같아요. 현장에서 일하시니까 이론과 현실의 간극을 더 깊이 느끼셨을 거예요.”


다음 날 퇴근길, 석사생이었을 때 상담을 수업했던 교수와 만나기 위해 대학원으로 향했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교도소와 대학원을 오갔다. 대학원에서는 인간 심리에 대해 공부했고, 교도소에서는 인간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목격했다. 박사과정에서 어느 교수가 언급한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가 1963년 출간한《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아렌트는 나치 전범 재판을 지켜보며 유대인 학살을 지휘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악마도 괴물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관료였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살인을 ‘사명’으로 여기 지도 않았고 특별한 악의도 없었다. 다만, 시키는 대로 따르고 주어진 명령을 무비판적으로 수행했다.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큰 악이었다. 내가 매일 마주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평범함으로 위장한 어둠. 아니, 어쩌면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에 숨어있는 어둠.

대학원 교수실 창밖으로는 캠퍼스의 은행나무들이 보였다. 교수는 커피 한잔을 건네며 반가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범죄인의 이상심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이러니가 있어요.”

교수가 소파에 앉으며 나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어떤 아이러니요?”

“우리는 범죄자의 심리를 연구하지만, 정작 진짜 범죄자를 직접 만날 기회는 많지 않아요. 대부분 통계 자료, 설문 결과, 2차 자료에 의존하죠.”

교수는 책상 위의 논문 더미를 가리켰다. 수십 년간 축적된 지식의 결정체들이었지만 교수의 말처럼 인간의 마음을 논문 속 그래프나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프로파일러들이 유명해진 건 범죄자를 잡는 과정에서의 활약 때문이에요.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그렇게 그려지고요. 마인드 헌터 Mind Hunter라는 드라마를 본 적 있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주인공 홀든 포드와 빌 텐치가 교도소에서 연쇄살인범들을 인터뷰하는 장면들. 내가 하는 일과 닮았다. 나 역시 실제 교도소에서 살인자나 마약중독자들을 프로파일링하고 심리 분석하며, 심리상담을 진행한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의 목적은 범죄자를 이해해서 다른 범죄자를 잡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잡은 후의 과정이에요.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사회로 어떻게 안전하게 복귀시킬 것인가. 실제 강력범죄자들은 상당수 재범인 경우가 많다는 건 알고 있죠? 잡는 일에만 지원과 예산을 투자하고 다시 내보내는 일은 등한시한다면, 과연 우리 사회가 안전해질 수 있을까요?”

교수는 커피 한잔을 다 들이켠 후에 다시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사람들은 범죄인의 흔적을 좇는 프로파일러는 알지만, 범죄심리교정전문가들은 잘 모르죠. 프로파일링은 몇 개월간의 수사로 끝나지만 범죄심리교정은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을 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물론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보내는 것도 그만큼 중요한 것이죠.”

나도 커피를 몽땅 들이켰다. 내가 평소에 주장해 왔던 생각과 너무나 똑같아서 놀랐다. 우리 사회는 범죄자를 잡아서 격리시키는 것만 조명하지만, 그 이후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언젠가는 그들을 다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그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느냐가 피해자를 막는 것이겠지.

“최근 들어 교정 현장에 심리학 전공자들이 많이 배치되고 있어요. 석사, 박사 학위를 가진 심리전문가들이 특별채용으로 들어오고 있고요. 하지만 그들도 처음에는 당황하죠. 대학에서는 이론으로만 배웠는데, 실제 살인자, 성범죄자들을 마주하는 게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니까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어요.”

나는 그때를 떠올렸다. 첫 상담에서 느꼈던 그 당황스러움과 두려움. 갈등과 혼란 같은 것들 말이다.

“교도관님 같은 분이 귀한 이유가 그거예요. 현장 경험과 학문적 배경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론과 실제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는 그동안 내가 어정쩡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 교도관치고는 너무 이론적이고 학자치고는 너무 현실적인 사람.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내만의 강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동연구를 제안한 거예요. 현장의 생생한 데이터와 학문적 이론이 만날 때 진짜 의미 있는 연구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일주일 후, 나는 상담사에게 그간의 일들을 털어놓고 있었다. 지난 첫 상담 이후 두 번째 상담이었다.

“그래서 그 연구가 어떻게 진행됐나요?”

상담사가 관심을 보였다. 그녀도 박사과정을 수료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펜이 종이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 첫날을 떠올렸다. 교도소 복도 가운데 위치한 상담실의 차가운 공기, 형광등의 빛, 그리고 그들의 눈빛. “저는 나가서 그 여자를 찾을 거예요.”

첫 번째 집단상담에서 이 모 씨가 한 말이었다. 30대 후반의 물류운송업자, 그는 몰래카메라 설치 혐의로 수감 됐다.

“왜 그런 생각을 하시나요?”

교수가 최대한 중립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조차 피해자 탓을 하는 이들을 보며 평정심을 잃어가는 것이 보였다.

“복수하려고요. 신고한 그 여자 때문에 제 인생이 망가졌으니까요.”

그의 논리는 완벽하게 전도되어 있었다. 자신이 가해자인데 피해자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또 할 거 같아요. 참을 수가 없어요."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내가 매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두 번째 수감자는 47세 회사원이었다. "제가 한 게 그렇게 큰 일인가요? 그냥 스친 건데..."라며 진심으로 의아해했다. 세 번째는 28세 대학생이었다. 들어오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저는... 죽고 싶어요. 제가 한 일이 용서받을 수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같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세 사람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어떤 사람은 재범 의지를 드러냈고, 어떤 사람은 문제의식이 전혀 없었으며, 어떤 사람은 극도의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 인간의 복잡함이여!


나는 속으로 소리 질렀다. 같은 행위라도 그 이면의 동기와 인식은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계획된 악의였고, 누군가는 무지였고, 누군가는 충동이라 했다.

“그때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나는 상담사에게 말했다.

“세 사람이 모두 성범죄자였지만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었거든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어떤 방법이 효과적일지...”

“어떻게 진행하셨나요?”

“직접적인 질문은 피했어요. 그들이 자신의 범죄를 이야기하는 걸 너무 힘들어했거든요. 특히 최 모 씨 같은 경우는 아예 말을 못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이 회피와 합리화 속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어떤 공통점인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내 이야기를 듣던 상담사도 감정이입이 됐는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예전에 연쇄살인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죠. ‘제가 죽인 게 맞아요. 맞아요. 저 나쁜 놈이에요. 죽어 마땅한 놈이죠.’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그 남자의 표정에 전혀 죄책감은 없었어요. 너무 평온한 표정이었죠. 반면, 이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말하기 꺼리고 합리화하는 것이 어쩌면 ‘죄책감’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죄책감이 없다면 그 살인자처럼 자신의 죄를 말하는 것도, 죄를 인정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테니까요.”

나는 그때 사용했던 방법들을 이어서 설명했다.

“그래서 은유적인 방법을 사용했어요. 그림을 그리게 했죠. '당신의 마음 상태를 그림으로 표현해 보세요'라고. 심리 카드도 사용했고요. 여러 장의 카드 중에서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을 고르게 했어요.”

“효과가 있었나요?”

“놀라웠어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던 것들이 그림과 카드를 통해서는 나오더라고요.”

나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점차 그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어린 시절의 상처,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대인관계의 어려움... 하지만 그것들이 변명이 될 수는 없었죠. 상처받은 사람이 모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는 상담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중요한 건 그들이 서서히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는데, 24회 상담을 거치면서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 깨닫기 시작했죠.”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였나요?”

“한 사람은 ‘제가 괴물이었네요’라고 울면서 말했고 다른 사람은 ‘제 딸이 이런 일을 당한다면...’이라고 하면서 처음으로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더라고요. 물론 완전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은 느끼기 시작했어요.”

상담실이 조용해졌다. 상담사가 뭔가를 적으며 물었다.

“연구 결과는 어땠나요?”

“복잡했어요. 변화는 분명히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깊고 지속적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거든요.”

나는 잠시 멈췄다가 계속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출소 후 어떻게 지내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추적 관찰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믿어요. 우리가 한 일이 의미가 있었다고.”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해외 연구들을 보면 심리적 개입을 받은 성범죄자들의 재범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낮다는 결과들이 나와 있어요. 실제로 교도소에서 심리적 개입을 받은 수감자의 경우 재범률이 20% 이상 낮아진다는 연구도 있고요.”

상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죄라는 걸 인정했고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런 개입이 없었다면 그들은 그저 시간만 채우고 분노한 채로 다시 우리 사회로 돌아갔을 것이거든요.”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아요. 하지만 씨앗은 심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그 씨앗이 자랄 수도 있고요.”

상담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프로파일러처럼 나도 인간의 어둠과 매일 싸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범죄자를 잡는 일을 한다면 나는 잡힌 범죄자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씨앗을 심는 일을 한다.


나는 이 일이 좋다. 괴물을 찾는 일보다 괴물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일이기도 하니까.

우리는 모두 같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선과 악, 희망과 절망, 인간성과 범죄성 사이의 끝없는 전쟁.

하지만 그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는 없다. 다만 매일 조금씩, 한 걸음씩 전진할 뿐이다.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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