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 들어간 심리상담사(Q에 대하여), 1화
“비가 많이 오네요.”
상담사가 창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4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정갈하게 빗어 넘긴 머리, 도수가 높아 보이는 안경, 차분한 목소리. 나는 창 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비가 오니까 그곳이 떠오르네요.”
“그곳이요?”
상담사가 새 파일을 열며 펜을 들었다. 나에 대한 파일이다. 내가 그녀의 몇 번째 케이스인지 궁금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의자에 앉아서 자신의 상처를 꺼내 놓았을까.
“교도소요. 회색 하늘을 보면 자동으로 떠올라요. 교도소도 사방이 회색이거든요.”
나는 창 밖의 빗줄기를 따라가며 말했다.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그 중간색. 선과 악, 그 중간 어디쯤 내가 서 있는 것 같았다.
“교도관님. 심리검사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어요. 이 정도면 사실 약을 처방받아야 할 정도에요. 요즘에 잠은 좀 주무시나요?”
3개월 전, 나는 교도소 직원 정신건강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법무부는 2016년 심리치료과를 신설했고 구속된 범죄자들의 프로파일링, 심리분석, 심리상담은 물론 범죄자들의 인간성을 높이고 범죄성을 억제하는 연구 등을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실제 범죄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교도관들의 정신건강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건강해야 그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일주일 후 결과가 나왔다. 우울, 불안, 사회적 고립, 감정적 둔화, 그래프를 보니 모든 항목이 위험 구간에 있었다.
“교도관님, 언제부터 무기력 증상을 느끼셨나요?”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상담사의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없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건 2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업무 스트레스인 줄 알았는데...”
나는 말을 멈추고 상담실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봤다. 평화로운 호수와 산의 풍경화였다.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평화인가. 나는 그런 평화를 언제 마지막으로 느꼈을까.
“사실은 저도 심리상담을 전공했어요. 대학원에서 심리학과 인문학을 공부했죠.”
상담사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같은 학문을 전공한 사람을 만난 것에 대한 놀라움일까, 아니면 동료가 무기력에 빠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그런데 어떻게 교도관이 되셨나요?”
“군 복무를 교도소에서 했어요. 지금은 없어졌는데, ‘경비교도대’라는 부대가 있었어요. 그때는 단순히 특수한 부대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2년이 내 인생을 바꿔놓은 2년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교도소에 이끌었다.
“복무 중에 특별한 경험이 있으셨나요?”
“처음에는 충격이었어요. 범죄자들이 제가 상상했던 괴물의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그냥... 평범하게 생겼더라고요. 동네에서 스쳐 지나가며 볼 만한 그런 사람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창 밖을 바라봤다. 비는 더욱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그 다음이었어요. 그들이 언젠가는 나간다는 거였어요.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말을 멈췄다. 그때의 깨달음이 지금도 선명했다. 범죄자들은 이 세상에서 지워진 것이 아니었다. 수사기관이 검거하고 법원이 판결하면 모두가 관심을 끄지만, 그들은 우리와 같은 세상에 살고, 언젠가는 우리 옆집에서, 같은 버스에서, 같은 마트에서 마주치게 될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교도관이 되기로 하신 건가요?”
“아니에요. 전역 후에는 오히려 그곳을 잊고 싶었어요. 그런데...”
나는 잠시 침묵하며 취업을 준비하던 그때를 떠올렸다.
“원래는 일반 회사에서 영업이나 마케팅일을 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도 그 2년이 다시 떠올랐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내가 그곳에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난 교도관이 된 이후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케이스다. 대학원에서 배운 상담의 기본 원칙인 공감과 경청.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아무리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그들도 사람이니까 변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저는 매일 교도소에 들어가서 범죄자들과 마주 앉아요. 살인, 학대, 사기, 마약중독자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죠.”
상담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적었다. 그녀의 펜이 종이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가 상담실의 정적을 깼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저도 버거웠나봐요. 사람을 살해하고, 아동을 학대하고, 성을 유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일 경청한다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일인지.”
창밖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상담사 잠깐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나를 바라봤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느끼셨나요?”
나는 잠시 침묵했다. 내 안에서 일렁이는 이 혼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저는 교도관이면서 동시에 상담사예요. 이 두 역할이... 서로 충돌해요.”
상담사가 펜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충돌하나요?”
“교도관으로서는 그들을 통제하고 격리해야 해요.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상담사로서는 그들의 변화를 믿어야 하고, 치유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해요. 어찌 됐든 분명한 건, 그들이 언젠가는 우리 사회로 다시 돌아온다는 거예요”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정의란 무엇일까.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응보인가, 재활인가.
“상담사님, 무엇이 정의일까요?”
상담사에게 물었다. 정의.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추구해온 그 이상. 플라톤은 정의를 영혼의 조화라고 했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할 때 이루어지는 질서.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비례라고 했다. 각자에게 합당한 몫을 주는 것. 그렇다면 살인자에게 합당한 몫은 무엇인가? 죽음인가, 참회인가, 아니면 용서인가.
“정의요?”
“네, 저는 매일 이 질문과 씨름해요. 가해자를 벌주는 것이 정의인지, 아니면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정의인지.”
상담사가 잠시 침묵했다. 그녀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건...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도 명확한 답은 없는 것 같아요.”
이론이 아닌 현실에서, 추상이 아닌 구체에서. 철학자들이 서재에서 고민했던 그 질문들을 나는 매일 살인자와 마주하며 질문한다.
“그들이 평생 교도소에 있는다면 모르겠지만, 법원은 사람을 살해했다고 해서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선고하진 않아요. 그 말은 곧 교도소에 있는 대다수가 결국 우리 사회로 돌아온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그들의 변화를 믿고 싶어요. 왜냐하면 이들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결국 또 다른 누군가 피해를 입을 테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피해자들의 고통도 잊을 수 없고요. 이 두 가지가 제 안에서 계속 싸우고 있어요.”
인간은 변할 수 있는가. 내 안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이 질문 이후, 상담사와 나는 서로 다른 곳을 쳐다봤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고 시계바늘은 어느새 저녁을 향해 가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다음 주에 교도소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도관님, 쉽지 않은 질문들과 함께 살아가고 계시는군요.”
쉽지 않은 질문들. 나는 속으로 반복했다. 그렇다. 답이 없는 질문들. 하지만 답을 찾아야 하는 질문들.
밖으로 나오니 비는 가랑비로 바뀌어 있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젖은 아스팔트를 바라봤다. 빗물이 고인 곳에 가로등이 반사되어 일렁이고 있었다.
다음 주에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A동에 있는 아동을 학대한 남자? 아니면 C동의 마약중독자들? 아니면, 처음으로 살인자와 마주 앉았던 그날의 이야기들?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끝을 알 수 없다. 인간의 심연에 대한 이야기들은 특히 더 그렇다.
언젠가는 모든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평생 이 미로 속을 헤맬까. 어쩌면 답을 찾는 것보다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