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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Oct 05. 2021

GTA5와 직장상사의 상관관계

플스 할 시간이 없어서 인생을 플스 하기로 했습니다#1


삶 속에 일이 있어야 하는데 일 밖에 없으니 삶이 없다.

일 더하기 일이 삼이 아니듯이 일 더하기 일도 삶이 아니다.


처음 이곳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왔을 때 사장님은 계시지 않았다.

나는 자신을 마케팅 팀장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이끄는 대로 2층에 위치한 미팅실에 앉아서 사장님을 기다리며 여직원이 내어준 커피 한잔을 마시고 일어나 사무실 전체의 풍경을 쓱-훑어봤다.

마케팅과 영업부서는 따로 나누어져 있지 않고 한 부서가 전체를 담당하는 듯해 보였고 디자인 관련 부서로 보이는 사람들은 전날 밤 퇴근을 하지 못했는지 업무전화를 받으며 양치질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이 대기실에는 에스콰이어, 주간조선 등 몇 가지의 잡지들이 어지럽게 책상 수납장에 꽂혀 있었고 이 회사 사장님의 취미가 색소폰 연주라는 것을 방문하는 모두에게 알리려는 듯 짙은 빨간색 코트를 입고 입을 잔뜩 오므린 연주 모습의 사진이 들어간 액자들이 여기저기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기존에 내가 면접을 다니던 회사 중 유일하게 이 회사 3층에는 직원 수면실과 샤워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직원식당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모두 제공했다. 물론 한 끼에 이천오백 원씩 월급에서 차감이

되었지만 회사 밖에서 사 먹으면 기본 6천 원씩은 할 테니 회사에서 제공하는 식사가 훨씬 경제적이었다.


'와 이 회사 복지 괜찮은 거 같은데.'


그 당시 나는 취업을 위해서 이 회사를 포함한 다른 회사들도 많이 모여있는 동네로 이사 왔고

일자리와 상권이 활성화된 지역이라 다소 비싼 오피스텔 원룸 월세를 내며 살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내 생각으로는 회사 자체에서 삼시 세 끼를 저렴하게 제공해주고 어느 정도의 숙식 시설도 마련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며 혼자 살고 있는 내 생활에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복지를 제공해주는 회사라고 생각했다.


물론 오판이었다. 만약 당신이 면접을 보러 간 회사에 수면실과 샤워실에 보인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회사에 샤워실과 수면실. 그리고 삼시 세 끼를 모두 제공해준다고 하면 뒤도 보지 말고 도망쳐...'


집에 있어야 할 숙박시설이 회사에 있는 그 존재의 이유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고 말해주고 싶다.

회사가 집이 될 수 있고 집이 회사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당신에게 벌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긴 회사에서는 점심만 먹는 걸로 생각하고 있어야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고마운 회사다.

여하튼 오로지 '직원 복지'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회사도 많을 테지만 나의 경우는 아니었다.


"오늘 면접을 보러 온다는 사람이 자네인가? 나 마케팅 영업부 부장일세."


대기실에 들어온 사람은 사장님이 아니라 부장님이었다. 사장님은 오늘 오후에 색소폰 레슨을 받으러 가셔서 회사에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얘기해줬다. 부장은 40대 중반쯤 되었을까.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체격에 키는 한 170쯤 돼 보였다.

그나저나 왜 반말?


"4대 보험은 들어줄게. 여튼간에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지?"


면접은 간단명료했다. 사장님도 계시지 않았지만 부장은 나에게 내일 바로 출근 가능 여부부터 물어봤다.


"아.. 네.. 네!!"


나는 당장의 취업이 궁했던지라 뭔가 느낌은 싸했지만 씩씩하게 신규직원의 자세로 대답했고 그렇게 힘들다는 취업난에 덜컥 취업에 성공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전에 일하던 직원이 통보도 없이 그만둔 상황이라 당장 일이 펑크가 나서 내가 아니라도 누가와도 구멍 난 그 자리에 앉힐 작정이었다고 한다.

그날 내가 오기 전에 1명이 먼저 면접을 보러 왔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은 청바지를 입고 왔고 나는 정장을 입고 왔다고 나를 합격시켰다고 한다. 청바지가 그를 살렸다.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캔맥주와 나쵸를 꺼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플스를 켰다.

크... 이 시간. 바로 이 시간만을 기다려온 것이다. 퇴근+샤워+플스+캔맥주 이 조합은 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총과 폭탄이 난무하는 GTA5 요새 내가 두 달째 하고 있는 최애 게임이다.

이 자유로운 오픈월드. 실제 같은 그래픽.

게임기술의 발전은 실로 놀랍다.

난 집 앞마당에 세워놓은 노란색 람보르기니를 타고 밤의 거리를  질주했다. 이 해방감.

GTA5 게임 속 트레버의 모습

'부장이랑 닮았네. 하하'


게임의 주인공중 하나인 트레버를 보며 혼자 키득댔다.

후줄근한 흰색티셔츠에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

그리고 그리 친절하지 않은 인상을 보면서 아침에 면접에서 만났던 부장이 떠올랐다.

이 게임 속에서 부장을 닮은 트레버는 무법자였다. 하늘을 날아가는 헬기를 바주카포로 격추시키지를 않나, 경찰이 추격에 붙어도 1도 신경 쓰지 않고 유유자적 도로와 인도를 넘나들며 곡예운전을 했다.

지나가는 시민을 차로 치고 은행에 수류탄을 터트리고.. 한마디로 막장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런 막장인 상황은 게임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 봐 봐~어허~어서!" 


부장은 주 대리를 자신이 앉은자리 옆으로 와서 앉으라고 강요했다. 주대리는 내가 면접 대기실에 갔을때 커피를 가져다준 여직원이다. 회사는 신규직원 환영회 회식자리를 마련했고 우리는 미리 예약한 고깃집에서 간단하게 반주를 한 후에 다 같이 노래방으로 이동했다.


"아.... 네..."


주 대리는 쭈볏쭈볏 거리더니 부장의 옆자리에 앉아 반주에 맞춰 박수를 치는 시늉을 했다.


"우리 브루스 한번 당길까?"


부장은 주 대리의 손목을 잡고 확 일으켜 세우더니 그녀를 끌어안고 허리춤에 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 두 손은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저런 씨-'


나는 자리에 일어나 부장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만약 GTA5 게임 속에서라면 이 트레버를 닮은 부장에게 주먹을 한대 날렸을 것이다. 물론 주먹으로 끝나진 않았겠지만.


"부장님, 취하신 거 같아요. 주 대리님과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뭐? 너 뭐하는 놈이야? 어디 신입이 건방지게. 죽을라고."


씩씩 대며 나를 노려보는 부장을 뒤로 한채 주 대리에게 집에 가자고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회식 끝나고 들어갈게요.. 미안해요."


"네?"


당혹스러웠다.

그녀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떨어지는 눈물을 한번 훔치더니 부장의 옆자리에 다시 가서 앉았다.

어색해진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노래방 밖으로 나왔다.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머릿속으로

마음 정리를 한 후에 다시 노래방 안으로 들어와서 부장에게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부장은 나의 사과를 받는 둥 마는 둥 다시 주 대리의 허리춤에 손을 올려놓고 술에 취한 목소리로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끔찍한 바이브레이션을 섞어 불러댔다.

주 대리 본인이 괜찮다는데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 대리는 힘들게 들어온 회사이기도 하고 그만두면 안 되는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도와줘서 고맙지만 미안하다고-




다음날 주말 아침. 어김없이 나는 플스를 켰다.

전날 저장했던 공간에서 트래버는 그 후줄근한 티를 입고 서있었다. 나는 트레버를 움직여 차에 타게 하고

한산한 외각으로 질주했다. 그리고 큰 강물이 있는 곳에 도착한 트레버는 강물 속으로 차를 주행했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채- 그렇게 트레버가 탄 노란색 람보르기니는 점점 화면속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나의 GTA5는 게임 오버됐고 그 회사와도 이별했다. 또 누군가 그 회사의 복지시설에 감탄하며 내가 있었던 자리에 들어갈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다음 게임, 다음 회사로 넘어갈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그곳에 또 다른 트레버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게임은 계속된다.


#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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