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하루는 오후 3시에 시작된다
'백수의 하루는 오후 3시에 시작된다'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 이백수(32세, 가명) 씨는 백수직을 내려놓은 지 만으로 2년을 향해간다. '백수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물론 내가 지향하는 미래가 '돈 많은 백수'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복귀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사실 돈 많은 백수가 된다는 것은 정말로 꿈같은 이야기다. 인간은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심신을 고단케 하며 얼마나 많은 행복을 소모하고 있나. 돈 많은 백수가 된다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좋아하는 것만 먹으며 행복으로 하루를 채울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꿈같은 이야기는 그저 꿈일 뿐이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만둔 후로 돈 많은 백수 생활을 영위하기를 8개월, 내가 취업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도록 등을 떠민 웬수1등 공신은 바로 내 통장잔고였다. 물론 당장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적금을 깨지 않는 한 더 이상 백수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쯤 나는 이미 구직사이트에 파묻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위기의 도래
유식한 척하기 위해 인용을 하긴 하겠지만 사실 대학교에서 심리학 개론 수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단계적으로 나타나며, 하위 계층의 욕구가 충족되어야만 다음 단계의 욕구가 발현된다고 한다.
백수에는 여러 종류의 백수가 있지만, 특히 이 글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대상은 '애정과 소속의 욕구'가 결여되거나, 욕구는 있지만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어 고착화된 백수, 혹은 그 백수의 부모님이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일반적인 경우, 돈이 점점 떨어지면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기 어려운 상황이 다가온다. 물론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 생활하며 백수로서의 생활을 지속해나갈 수도 있지만, 언제까지고 부모님 밑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니까.
보통 이렇게 통장 잔고가 위험수위를 나타내기 시작하면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식주 중에서 '식'에 위험신호가 나타난다. 비싸고 맛있는 걸 먹기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 않은 경우 월세를 내기 어려워져 '주'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현실이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기 시작하면 결국 꿈만 같던 '돈 많은 백수'생활은 정말 깨어나야 할 '꿈'이 되어버린다.
필자의 경우처럼 이전 직장에서 고생을 했으니 휴식기를 가지다가, 그 달콤한 휴식에 취해버려 빠져나오지 못하던 사람은 급하게 구직활동을 재개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계획적이지 않고 철저히 준비된 게 아니다 보니 만족스러운 직장을 찾기도 어렵고 그런 직장에 들어가기도 어렵다. 결국 현실과 빠르게 타협할 수밖에 없어진다.
애초에 취직이라는 과제 자체가 너무 어려워 본의 아니게 장기간 백수 생활을 영위한 경우는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마치 꿈을 꾸면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지만, 이제 빨리 그 꿈에서 깨어나야 하는데 그 방법을 모르는 것과도 같은 상황인 것이다.
Solution?
사실 이러한 상황에 처하고 나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면 답이 없다. 애초에 취업이란 차곡차곡 쌓아둔 발판을 토대로 취업난이라는 장벽을 뛰어넘고 사회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미리 계획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 장벽은 높기만 할 뿐이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결과는 눈을 낮춰서 기대 이하의 직장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난다. 물론 운이 좋아서 자신이 준비해온 분야에 딱 맞는 구직공고를 발견해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급박할수록 그런 가능성은 낮아진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기회가 찾아오기란 어려운 법이니까.
그러니 이러한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체계적으로 준비를 하라고 조언하고 싶지만, 백수 생활을 오래 했던 내가 그 어려움에 대해 모르는 바는 절대 아니다. 오후 3시에 일어나는 습관은 관성처럼 작용해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오후 3시는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꿈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상쾌한 아침이 아닌, 남들보다 늦은 아침을 맞이할 뿐이다. 자신이 꿈속에 있다는 자각, 깨어나야 한다는 의지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극단적이긴 하지만, 스스로 자금을 제한해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한 달간의 생활비만 남기고 나머지 돈을 전부 장기 예금 넣어버리거나, 로또에 꼬라박거나, 부모님에게 맡기며 "취직하기 전까지 돌려주지 마세요"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절박한 상황에 몰아넣으면 어느새 달콤하기만 했던 꿈보다는 씁쓸한 현실이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위에 말한 상황에 놓인 백수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입장이라면, 용돈을 제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꿈에 젖어 있는 백수에게 있어 '취업'은 '목표'가 아니라 '스트레스 요소'일뿐이다. 그래서 대부분 이런 상황에 있는 백수들은 그 '스트레스 요소'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는 무조건 꺼려하고 피하기 바쁘다. 그런 상황에 부모가 금전적인 제한을 걸어버리면 스트레스가 폭발해 마구 짜증을 낼 수도 있다.
물론 스트레스는 몸에 해롭다. 너무 많이 받으면. 혹은 너무 적게 받으면. 흰 생쥐에게 스트레스를 없애는 실험을 했더니 며칠 못 가서 죽어버리더라는 실험 결과가 나타내듯, 스트레스는 오히려 살아가는 데에 있어 필요한 요소이다. 멈춰있는 돌이 구르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밀어줘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금전적 지원을 끊으라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한 뒤' 혹은 이 글을 읽어보게 한 뒤라는 사항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마치며
필자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잠을 잘 때, 꿈을 꿀 때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잠이라는 것도, 꿈이라는 것도 결국은 '깨어났을 때'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을 시니컬하게 바라본 백수의 이야기.
40만 백수가 공감한 '백수의 하루는 오후 3시에 시작된다' 2019년에도 절찬리 연재중!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