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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수 Sep 27. 2015

#4 명절

백수의 하루는 오후 3시에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왔다. 해피해피 아임해피 즐거운 한가위 행복한 추석. 주부에게는 하루 10시간의 가사노동을, 가장에게는 10시간의 장거리 운전을, 학생들에게는 시험을 앞둔 부담감을, 뭐니 뭐니 해도 백수들에겐 친척들의 넘쳐 나는 관심과 덕담, 그리고 인생에 대한 조언을. 그야말로 스트레스를 왕창 받을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이쯤 되면 과연 누구에게 '즐거운' 한가위인지 궁금해진다.

한가위에 슈퍼문이 뜬다고 하니, 소원을 빌어 봅시다. 우리 백수들의 소원은 당연히... ^^ 여친(남친) 생기는 거죠.

 나 역시 현역 백수인지라 다가오는 추석이 반갑지만은 않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까. 면접에서 난감한 질문을 받았을 때 당혹스러운 건 눈 한번 질끈 감았다 떼면 끝이지만, 명절에는 몇 번 눈을 감았다 떼도 명절이다. 현명하게 처신하지 않으면 친척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다.


 많은 백수들이 검색 사이트에서 백수들이 명절 나는 법을 검색해 보았을 것이다. 물론 필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기억에 남는 걸 몇 가지 뽑자면, 첫 번째로 아픈 척 하라는 내용의 답변. 아무리 그래도 아프다는 사람에게 쓴  소리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다. 친척들 왔을 때 잠깐 얼굴 비추고, 차례 지낼 때에만 참여했다가 나머지 시간에는 방 안에 틀어박혀 계속 자거나 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현실적이지 못한 것 같다. 아프지 않은데 아픈 척 해봐야 그렇게 아파 보이지도 않을 거고, 무엇보다도 아픈 척 하고 누워있으면 스스로가 비참해진다. 누워서 할 일도 없을 테니, 비관적인 생각만  계속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는 아예 얼굴에 철판 깔고 친척집에 가지 말라는 말도 있었다. 이것 역시 내 생각에 그리 좋은 방법인 것 같지는 않다(백수인 우리 형이 이번 추석 때 안 온다고 한다. 이 글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당연히 친척들은 가족들에게 'ㅇㅇ이는 왜 안 왔어?'하고 물을 것이고, 가족들은 '백수라 바쁘대요'라는 피카소 백만 볼트 쏘는 소리나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돌아오는 것은 들리지 않는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혀 끌끌 차는 소리와 시대를 잘못 타고난 현 시대 백수들에 대한 동정(동정할 거면 돈으로 주시죠)뿐.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러 가지 않는 것도,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친척들을 일부로 피해야 한다는 것도, 스스로에게 찝찝하고 비참한 기분만을 남길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방법은 당당해져라고 하는 글이었다. 목표로 하는 회사에 대해 많이 알아보고, 미리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친척들이 '취직 어떻게 돼 가?'라는 눈치 밥 말아먹은 질문을 던져주길 기다렸다가, 마치 입사 면접 때 질문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최대한 당당하게 '저는 이러 이러한 회사에 지원하려고 준비 중입니다.'로 시작해 지금까지 준비해온 모든 내용들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것이다. 회사에 대한 설명과 함께 앞으로의 방향과 비전에 대해서까지 설명한다면 보통 친척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독한 친척이 있다면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그럴 때에는 '서류 전형은 통과했고, 며칠 뒤에 면접도 갈 겁니다'라고 말하라고 돼 있었다. 이 대목은 아무리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라도 '거짓말'이기 때문에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면접 날짜를 친척들이 돌아가는 날짜와 잘 맞춰서 말한다면, 약간의 금전적 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다.'라는 팁은 참고할 만 했던 것 같다.


 필자가 추천하고자 하는 방법은 마지막 방법과 맥을 같이한다. 모티브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전공서적, 혹은 토익 참고서가 든 가방을 준비하는 것. 차례를 지내고 나서 잽싸게 가방을 싸서 나가는 것이다. 전공과 관련된 자격증 시험, 혹은 토익 시험을 준비해야 된다고 하며 최대한 자리를 비운다. 그렇게 하면 듣고 싶지 않은 잔소리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열심히 준비 중이다'라는 느낌도 풍겨 운이 좋으면 칭찬과 함께 금전적인 이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큰집에 가는 입장이라도 마찬가지다. 가방을 챙겨 가자. 그리고 차례를 지낸 뒤에 '하루라도 쉴 수 없다'며 가방을 싸들고 나가는 것이다. 친척들은 'ㅇㅇ이 열심히 하네'라며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에 대한 칭찬을 해줄 것이고, 부모님은 '원래 저렇진 않은데...'라는 겸손한 대답과 함께 마음속으로 '백수 생활 오래 하더니 연기가 많이 늘었구나. 배우를 시킬걸 그랬어.'라며  뿌듯해하실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돌아왔을 때 절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왔어요"라는 정신 나간 거짓말은 하지 말 것. 당신이 피시방에서 놀다 들어왔든 공원 벤치에서 휴대폰만 보다가 들어왔든 상관없다. 제발 도서관에 갔다 왔다고는 하지 말자. 차라리 "추석에 문 여는 도서관을 찾다가 다리가 아파서 벤치 위에서 자고 왔어요"라고 말하는 편이 덜 한심해 보일 것이다. 돌아와서는 무조건 '근처 카페에서 공부하다  왔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이건 선택사항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사항이다.


 또 하나 팁을 주자면, 열심히 명절 준비를 돕고 친척집에 가서도 차례 준비와 식사 준비, 식사 후 설거지 등을 도맡아서 수행함으로써 좋은 인상을 주어 잔소리와 설교로부터 면죄부를 얻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일을 잘 해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면 'ㅇㅇ아 앉아봐라'로 시작되는 공포의 면담 시간이 오히려 길어질 수도 있다는 부작용이 있다.


 이 외에도 명절을 극복하기에 좋은 팁이 있다면 댓글로 제보 바란다.

내일은 달을 보며 우리 백수들이  하루빨리 취업 스트레스 없는 진정한 의미의 '즐거운 명절'을 맞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2순위로 빌어야겠다(1순위는 여자친구 생기게 해주세요).



인생을 시니컬하게 바라본 백수의 이야기.

40만 백수가 공감한 '백수의 하루는 오후 3시에 시작된다' 절찬리 연재 중!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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