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때 행복했어.
투잡을 하다 하나를 그만둔지 4개월이 넘어가고있다. 최근 회사에서 우연히 숙소가 마련되어 그곳에 똬리를 틀었다.
집에서 떨어져 지내면 가끔 아빠에게 전화가 온다.
'어디냐?' 치킨을 샀다는 암호다. 숙소라는 내 대답에 '쓰레기. 아예 집 나갔냐?' 삐진 대답이 돌아오고. '아빠가 지드래곤이야? 맨날 쓰레기래. 집 나갔다!'
10초 통화로 전화를 끊는 게 우리 안부다.
1. 복수
숙소에 있다가 종종 쉬는 날 집으로 돌아오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저녁,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항상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고 있고, 아빠는 티비가 틀어진 거실에서 불뚝 튀어나온 배를 들석이며 자고있다.
동생은 꼭두새벽 오거나 그나마 자정 전 집에 오는데 문을 닫아버리니 엄마에겐 말동무가 없다.
간만에 짐을 한아름 가지고 방으로 들어서면 엄마가 두두두 달려와 '뭐야뭐야~? 먹을 거 사왔냐? 아우 뭐 먹고싶어라. 너만 또 맛있는거 먹고왔지? 나쁜년. 방 좀 치워라.' 내 싱글침대에 드러눕는다.
혹, 내가 일찍 혼자 거실에서 넷플릭스 보고 있는 날이면 엄마가 현관에 들어서며 '웬일로 집에 있냐?'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죽- 따라 본다.
다시보는 드라마에 집중하며 보고있는데 엄마가 옆에서 '쟤 칼 봤지? 나중에 죽는거 아니었어?' , '쟤가 뭐래? 쟤 누구야? 눈이 안보여. 안경 어따놨더라?', 저 남자가 저 여자 차로 치었잖아. 아유 나쁜놈.' '소리 좀 줄여, 시끄러죽겠네.'
'...엄마! 엄마 때문에 엄마 목소리가 더 시끄러워! 제발 내가 뭐 볼 때 제발제발 말 좀 걸지말아줘, 스포좀 하지마!'
'스포가 뭔데?'
'아직 안나온 얘긴데 왜 자꾸 미리 먼저 말하냐고, 엄마는 내가 미리 쟤 죽어. 말해주면 좋아?'
'응 좋아!'
아이씨... 분노분노 티비 툭 꺼버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복수를 시전한다. 등 뒤로 엄마가
'아우씨 나 잘 보고있는데 끄면 어떡해! 저 못된 년, 어떻게 트는거야...'
'내가 보던거지 엄마가 보던거 아니잖아? 나 이제 안볼거야. 엄만 들어가서 공부나해, 면접 공부 해야한다며, 나 고등학생땐 잘보고 있던 티비, 나도 볼라치면 툭툭 잘도 꺼댔으면서, 다 돌려받는거야.'
2. 나 어릴 때 행복했어
어차피 엄마랑 처음 시작이 좋았어도 결국 둘이 의상하는 일이 태반이니 말도 섞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러다 앵겨붙고 싶은 날도 있고.
혼자 방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던 엄마 곁으로 누워 끌어안았다. '엄마앙 엄마 뭐해애~?'
'맨날 지랄하더니 오늘은 왜 앵겨붙냐?'
휴대폰 틱틱하던 엄마가 '너 독산동 살 때 기억나?'
어릴 때 나는 하도 싸돌아다녀서 엄마가 걸을 때마다 삑삑거리는 신발을 사줬다고 한다.
시장에 갔다가 정신없던 엄마가 날 두고 집에 온 날이 있었다고 한다. 서둘러 다시 시장으로 달려갔더니 시장 한복판에 시끄러운 삑삑이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엄마와 함께 돌던 루트대로 뛰어다니며 놀고있었다고 했다.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는 남에 집(친구 집)에 눌러붙어 노는 걸 좋아했는데, 하도 집에 가질 않으니 남에집 엄마들이 나에게 이제 너네 집에 가라는 눈치로 먹을 걸 쥐어줬다고 했다.
'집에 꼭 안있고 남에 집에서 눈치 받아야 했냐?'
엄마는 고집도 센 게 집도 안오고, 그게 그렇게 속이 상했다고 한다.
'먹을 거 줬으니 됐네! 돈으로 받아올 걸 그랬나?'
'야, 돈 받아오면 그 집에 재수도 붙어온댔어.'
'그래? 그럼 먹을 거로 받아왔으니까 그 집 운도 내가 가져왔겠네~!'
엄마와 히히덕대며 '나 어릴 때 진짜 행복했는데.'
떠올리자 '진짜? 행복했어? 다행이다...'
나 어릴 때 혼나기도 정말 많이 혼났다.
고집도 세고 밖으로 나도는 것도 참 많이 좋아하니,그녀가 나를 많이 버거워 했음을 체감한다.
하루종일 놀아도 지치지 않는 체력이었다.
20대 초중반때 나는 엄마에게 상처를 줬었다.
'나 어릴 때(초/중학교) 엄마가 나한테 화푼거 다알아. 나 학대했잖아, 맨날 대여섯시간씩 때리고 혼내고... 그거 사랑같애? 학대야.' 독설도 많이 뱉았다.
어린 가슴에 쌓인 상처를 되돌려줬다. 엄마도 상처받아봐. 내가 그때 얼마나 아프고 슬펐는지 느껴봐. 독기도 품었었다.
학교, 시험, 경쟁이라는 최전선에 들어섰을 때부터.
친구와 놀고 집에 돌아온 나를 식탁에 앉혀두고 계산기로 나에게 들어가는 돈을 두들겨 대며 부담감을 안겨대던 엄마.
'얘를 어쩌면 좋냐고. 아빠라는 작자는 맨 술만 처먹고 들어오고. 남에집 아빠는...'
나에겐 십원 한 장 투자하는게 아깝다며 밤마다 매일 술을 마시지만. 지겨운 집구석이라며 갖은 욕을 내뱉다 아침이면 꼬박 6년동안 학교를 데려다 주던 아빠. 그렇게 우린 마주치면 싸우는 웬수가 됐었는데. 사실 그보다 더 어릴 때를 떠올리면 나는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