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 딸이라 미안합니다! (2)

결국 무당은 그 어떤 것의 이유도 아니다

by 주부맥가이버

23년 차 무당 딸로서 사과를 해야 한다. 비로소 권장이 아닌 의무임을 알아차린다.


엄마가 무당이 되었을 때, 사 남매 중 맏딸이란 이유로 총대를 매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스물셋의 나는 모든 것이 원통했고 부끄럽기 바빴다. 나보다 어린 동생들의 마음을 돌볼 겨를 따위는 없었다. 귀하게 태어난 막내 남동생의 처지가 참 가련했다. 세월이 지나서야 그가 얼마나 외롭고 처절했을지 짐작해 볼 뿐이다. 엄마가 신을 받으러 떠났다. 나는 툭하면 늦잠을 자서 남동생의 손에 라면 값을 쥐여주었다. 어떤 날은 없는 솜씨로 싼 다 식어빠진 도시락을 수줍게 내밀었다. 말없이 받아나가는 남동생의 뒷모습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윙윙거렸다.


얼마 전 매형들과 술을 들이키며 남동생이 그랬다고 한다. ‘난 버림받았어요.’ 동생의 목소리가 내 맘을 돌덩이처럼 묵직하게 눌렀다. 충분히 그럴만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남동생을 두고 떠난 엄마와 자기 삶에 치여 툭하면 눈물을 찍어내던 아빠에게 동생은 버림받았음에 틀림없었다. 미처 그의 슬픔을 들춰보기도 전에 각자의 아픔으로 우리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꽤 오랜 기간 동안 막내는 고독을 삼키며 담배를 태웠을 테다.


둘째와 셋째 여동생은 나와 마음을 깊게 나눈 자매들이다. 어릴 때 서로의 머리끄덩이를 잡기도 하고, 아침에는 눈 뜨자마자 옷 쟁탈전을 벌였었다. 지금은 사는 모양새가 달라도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은 지구 밑바닥에서부터 에베레스트 정상만큼 치켜 올라갈 태세다. 얼짱 사 남매 단체 카톡방에 일만 터졌다 하면 각자 유능한 분야로 우리는 총출동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갑작스러운 엄마의 부재를, 우유부단하고 무능력한 아빠를 견뎌내긴 힘들었을 것이다.


나도 때로는 일탈하고 싶었다. 아빠가 사고로 머리가 깨진 날도, 엄마가 신을 받으러 집을 나간 날에도 아마 난 시험공부를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징크스처럼 꼭 시험 기간에 사고가 터졌다. 아마 그러지 않았다면 난 서울대학교를 합격했을지도 모른다고 자위해 본다. 동생들의 자그마한 일탈을 보고 부모처럼 꾸지람을 늘어놓았다. 머리를 맥주로 샛노랗게 염색하고 온 여동생의 머리를 후려갈기거나, 담배꽁초를 페트병에 산처럼 쌓으며 살아가는 남동생에게 폭언을 퍼붓기도 하였다. 나의 야단 때문인지, 그들의 노력으로 인한 건지 몰라도 동생들은 시샘이 날 정도로 나보다 더 잘 살아가고 있다.


내가 하기 힘든 일 중에 하나는 무당 엄마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일이었다. 여동생들은 수시로 점사 손님을 물어다 엄마에게 건네주는 제비들 같았다. 하지만 나는 차마 엄마가 무당이라고 홍보하지 못했다. 더구나 엄마에게 와서 점을 보라고 권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창피한 마음이 앞섰고 점사의 결과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결코 지고 싶지 않았다.


말로는 편견을 갖지 말자 했다. 무당 엄마를 당당하게 여기자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난 다분히 위선적이었다. 17년간 일한 회사의 대표에게 엄마의 직업을 숨겼다. 기독교 신자인 그에게 굳이 엄마의 종교를 알려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회사의 자금까지 담당하는 내가 가난한 집의 무당 딸이라는 것을 나서서 알릴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어쩌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궁색함은 온몸에서 퍼져나갔을 것이다. 나는 그저 모르쇠로 일관했을 뿐이었다. 가식으로 똘똘 뭉쳤던 더 젊은 날의 머리칼을 용서로 빗어준다.


우선 과거로 날아가, 굴욕감으로 물든 스물셋의 나를 살포시 안아본다.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했던 답답한 마음의 끈을 훅 당겨본다. 옷고름이 풀리 듯, 스스로 당겨져 나온다. 마흔여섯의 내가 스물셋의 나에게 온기가 가득한 손을 내민다. 참아내느라 애썼노라고 작은 어깨를 다독인다.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은 응당 내 가족이다. 나의 말뿐인 당당함을 돌이켜본다. 행동하는 번듯함을 보여준 동생들을 존경한다. 필요한 이들에게 무당 엄마의 소중한 능력을 나눠 준 그들의 정정당당함에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나의 부모. 목숨처럼 사랑하면서도 밥 먹듯이 부모를 미워했다. 어떤 날은 이래서 다른 날은 저래서 원망스레 바라보았다. 끝까지 우리를 버리지 않고 세월의 풍파 속에서 모든 것을 견뎌낸 부모가 이제야 조금은 자랑스럽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헤매고 쓰러진 날이 다반사였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사 남매 곁에 건재함에 코끝이 찡해진다.


특히 무당 엄마. 엄마가 무당이라서,라는 만만한 삶의 도피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힘겨울 때마다 나의 방패막이돼주던 무당이라는 화두는 결국 그 어떤 것의 이유도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 남매 결혼의 서막에도 무당이라는 엄마의 존재는 일말의 영향도 끼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둘째 여동생의 이혼에도 무당 엄마는 무관한 사람이었음을 밝힌다.


삶이 잘 안 풀리고 속상할 때마다 냉장고 위에 몰래 숨겨둔 초콜릿 과자처럼 꺼내 먹은 것이 ‘무당’이라는 해결책이었다. 인생이 어떤 식으로 흐트러지더라도 꽤 번듯한 명분이 되어주었다. 지금에서야 치기 어린 행동을 뉘우친다.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


무당이 대물림을 하듯이 아빠의 유전자도 내게 대물림되었다. 그가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의 상흔이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전해진다. 엄마의 박복한 팔자가 비슷한 밑그림을 그리며 다가온다. 내 인생 최대의 과업은 무당의 대물림을 거슬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유전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과 배려의 부재로 가득한 부모의 삶을 내 아이들에게 결코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 거세게 흔들리고 단단하지 못한 조상의 유전자를 도려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히려 무당이 대물림되는 것보다 결핍이 가득한 삶이 대물림될까 두려워해야 한다.


무당이 그리는 무늬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존재 자체로 우뚝 설 뿐, 누구에게도 강요된 것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기쁜 마음으로 고유의 인생 문양을 그려나갈 요량이다.



* 대문사진 © kalhh, 출처 Pixabay

이전 11화보통 혹은 그 이하 어디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