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혹은 그 이하 어디쯤 (2)

무명無名의 무당 엄마

by 주부맥가이버

세상에서 신분제도(인도에 카스트제도가 현존하지만)가 사라진지 오래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계급階級이 대놓고 차별적이고 원시적이라고 치면, 계층階層은 뭔가 고급지고 우아하게 사람을 분류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무당은 어떤 계층에 속할까 궁금해졌다. 소외계층, 차상위계층, 중산층, 상류층.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무당은 중산층에 몸을 끼워 넣을 수 있을까?


나는 항상 돈에 치이고 허덕였다. 직장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그 알량한 월급의 액수 때문에 어느 계층에도 속하지 못했다. 소외계층도 아닌 중산층도 아니었다. 보통 혹은 그 이하 어디쯤의 계층이 있다면 안성맞춤이었을지도 모른다.


결혼 전에는 엄마가 무당일로 벌어들이는 수입과 나의 월급으로 월세를 내며 근근이 살았다. 살림은 늘 쪼들렸지만 나라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 따위는 아무 것도 없었다. 결혼 후에 생애 첫 집을 마련하며 다시 절망했다. 나라에서 해주는 저금리 주택담보대출을 당연히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 그마저도 무산되었다. 차상위계층의 범위에 들려면 지금보단 훨씬 더 가난해야 했다. 현재도 살기가 팍팍한데 국가의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 더 가난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감히 내가 중산층에 속할 수나 있는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무당 세계에서도 계층이 분명 존재한다. 인간은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으로 크게 나뉜다. 나머지는 중간에 낀 보통 혹은 그 이하에속하는 사람들이다. 이 분류 공식이 딱 그 세계에서도 성립한다. 성공한 무당이라면 사찰만큼은 아니어도 으리으리한 저택과 법당을 갖고 있다. 무속인으로서 무형문화재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한다. 명성도 명성이겠거니와 금전 또한 술술 따라오는 형국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실패한 무당도 수두룩하다. 단적인 예로 엄마가 제자로 삼은 K라는 인물이 그렇다. 엄마와는 어찌 인연이 깊어 신아들이 되었지만 그의 인생은 개차반이나 다름없었다. 신내림을 받고 법당을 차리기가 무섭게 받은 신을 내동댕이쳤다. 종국에는 엄마를 배신했다.


우리 엄마는 어디에 속하는 무당일까? 딸인 나의 객관적이고 냉철한 평가는 무리가 있다. 무당이 된 엄마를 오랫동안 지켜봤다. 엄마는 꽤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무당 축에 든다고 볼 수 있었다. 받은 신을 23년간 극진히 모셨으며 기도를 늘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돈을 허투루 뜯어낸 적도, 신령님이 벌어주신 돈을 쓰지 말아야 할 곳에 쓴 적도 없었다.


다만 무당 엄마에게 아쉬운 부분은 인간관계 능력이다. 무당 세계에서도 효율적으로 돈을 벌려면 머리를 써야한다. 온 마음을 다해 신도를 대한다고 돈을 많이 벌거나 명망 있는 무당이 되는 것이 아니다. 되레 상처를 받기 십상이다. 신도에게도 엄연히 지킬 선이 있으며 적당히 주고 많은 것을 바라거나 기대지 말아야한다. 보통의 인간관계와 전혀 다를 게 없다. 무당 엄마는 그런 부분에서 마음에 생채기가 나고 곧잘 좌절한다. 언제나 과하게 퍼주고 기대만큼 하지 않는 신도들에게 쉴 새 없이 실망한다. 무당 엄마를 볼 때마다 내 마음도 아프다. 신도들에게 더 위엄 있고 대단해 보이지 않는 엄마가 때때로 싫었다. 우리 엄마는 아주 보통의 무당 엄마일 뿐이었다.


무당이 되고 엄마는 늘 기도를 한다. 자식들을 위해 빌고 또 빈다. 돈을 갖다 바친 신도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조석으로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운다. 열심히 무당일을 하는데도 벌이는 신명나지 않는다. 자식들을 위한 기도는 거창할 것이 없고 부모의 마음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결코 일확천금을 얻게 해달라거나 큰 권세를 달라는 법은 없다. 되레 과한 욕심은 불행으로 치닫는 것이라 여긴다. 가방끈이 긴 것도 아니고 상담학이나 철학이란 학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엄마가 때로는 깊은 삶의 지혜를 내준다.


복채를 들으면 그 액수에 깜짝 놀랄만한 명망 있는 무당은 분명 돈을 내놓은 이에게 명쾌한 해답을 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야의 숨은 고수인 무명의 무당에게서도 삶의 깊은 답이 나올 수 있다. 이곳이 사찰인가 무당집인가 헷갈릴 정도의 대단한 점집은 비쌀 수밖에 없다. 때론 네온사인 불빛이 번쩍이고 상가가 즐비한 곳의 허름한 무당집이 자신에게 딱 맞는 점사를 봐줄 수도 있다. 게다가 복채도 마트의 1+1처럼 알차게 저렴하면서 말이다.


곧 죽어도 돈은 없지만, 나는 무당 엄마가 후자이길 바란다. 무당일로 많은 돈을 벌어 떵떵거리고 살면 얼마나 좋으랴. 엄마는 그럴 능력도 욕심도 없는 아주 보통의 인간이자 무명의 무당이다. 더 효율적으로 야무지게 무당일을 했으면 하는 아쉬운 바람은 있다. 그러나 너무 인간적이어서 탈인 무당 엄마도 견딜 만하다. 엄마가 무당이 아니라 진짜 우리 엄마인 것만 같아서다.


엄마가 무당이 되면 다사다난했던 우리 집안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하는 약간의 희망을 꿈꿨다. 영적인 존재가 되었으니 안 되던 일도 실타래 풀리듯 해결될 줄 알았다. 앞일을 다 예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당은 조상신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무당에게 세상은 더욱 세찬 파도이다.


무당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으나 신의 질투로 힘들다고들 한다. 엄마도 결국 아빠와는 무당이 된 후 이혼했다. 무당이 되려고 할 때쯤 아빠는 두 번이나 차에 받혀서 머리가 깨졌다. 엄마는 아빠 옆에 자신이 있으면 안 될 것이라며 결국 신을 받으러 떠났다.


형체도 냄새도 없는 조상신이 내 인생에도 끼어들었다. 엄마가 모시는 할머니는 나의 외할머니고 동자는 네 살 때 죽은 우리 오빠라고 했다. 결국 무당일은 가족끼리 똘똘 뭉쳐 해나가는 일인지도 몰랐다.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을 뿐.


늘 엄마 법당에 가서 때맞춰 절을 올리고 돈을 놓아드리고 동자에겐 과자를 사다 바쳤다. 믿음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도리였다. 무당은 내게 종교가 아니라 삶이다. 밥을 먹고 세수를 하고 뒷간에 가는 것과 매한가지다. <앵무새 죽이기> 책의 문구가 떠오른다. 주인공 스카우트는 독서를 사랑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숨 쉬는 걸 사랑하지 않듯이. 내게 무당인 엄마의 존재가 꼭 그러했다.


* 대문 사진 © SeeOn,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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