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 딸이라 미안합니다! (1)

발칙한 연애사를 까발리며

by 주부맥가이버

내 나이 스물셋에 엄마가 내게 통보했다. 엄마의 말투는 나직하고 다정하게 둔갑했지만 거칠고 부서지지 않는 돌덩이처럼 차갑고 무겁게 나를 옭아매었다. 깊은 밤 울려 퍼진 엄마의 말은 이제 엄마가 무당이 돼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처럼 우리 엄마는 어느새 무당이 되었고 올해로 자그마치 23년 차 무당에 접어들었다.


무당 딸로서의 23년! 세상의 편견에 맞서며 고된 무당일을 하는 엄마만큼은 아니겠으나 내게도 우여곡절은 많았다. 글의 주인공은 내가 되겠으니 충분히 자기중심적으로 내가 제일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그중 으뜸을 꼽으라면 단연코 나의 연애사가 해당될 것이다.


내가 가장 예뻤을 이십 대 초반에 그놈이 날 차지했다. 나의 모든 처음을 가져간 그와 3년을 캠퍼스 커플로 명성을 날렸건만 우리 엄마가 무당이 되자 나를 거세게 차 버렸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던 그 도둑놈은 결코 자신이 날 버린 이유는 우리 엄마가 무당이라서가 아니라고 변명할 테지만 그 까닭 말고 다른 연유를 도대체 찾을 길이 없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라는 멋진 문구를 떠올리며 그는 날 차 버린 것에 대한 합리화를 했을 것이다.


이별을 떠올려도 눈물이 흐르지 않을 때쯤 헤어짐이 내게 선물임을 깨달았다. 서른이 넘어 동창회에서 만난 그를 보니 미어지던 가운데 머리숱이 휑한 것이 아닌가. 다른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대머리는 아니다. 난 그날 첫 연인에 대한 모든 억하심정을 정리했다.


없는 집안 살림에 무당 딸이 K대 수재를 만났다고 무당 엄마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노화가 시작된다는 이십 대 후반이었지만 꽤 반반했을 내 나이 스물일곱에 그를 만났다. 불타오르는 사교댄스동아리에서 우리의 연애사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의 어머니 김여사는 아주 돼먹지 못하고 툭하면 자살쇼를 벌이는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다. 우리 엄마가 무당인데 어디서 우리의 궁합을 보고 왔는지 내가 과거에 애를 하나 낳았다고 했단다. 웃으며 김여사의 말을 농담처럼 전하던 그놈 면상을 한 대 후려치지 못한 것이 내겐 천추의 한이 되었다. 어퍼컷은 날리지 못하고 애먼 길바닥만 후려치며 통곡을 했었다. 우리 집도 점집인데 엉뚱하게 다른 무당집 가서 궁합을 본 것도 짜증 나는 데다 내가 애를 낳았다는 엉터리 무당 얘기를 아들에게 당당하게 전했다는 건 나를 이미 밑바닥에 깔고 본다는 말이나 다름없이 들렸다. 결국 무지 똑똑하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그와도 난 이별의 수순을 밟았다. 보기 좋고 깔끔하게 또 차였다.

첫 번째도 눈물바다였지만 두 번째 이별 후엔 후유증이 심각했다. 꼭 이별 때문만은 아녔지만 서른 살의 나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을 우울해하고 슬퍼하며 또 그만큼의 시간을 그러지 않은 척하며 살았다. 그렇게 촌구석 고향을 떠나고 싶어 상경을 했는데 어찌 서울 하늘 아래 내 서방은 없단 말인가! 그로부터 5년을 싱글로, 아니 노처녀로 살았다.


간간히 주어지던 소개팅에서조차 전의를 상실한 군인처럼 솔로탈출을 위한 치열한 노력 따위는 없었다. 첫 번째 연애사를 깔끔하게 정리해준 ‘대머리’가 소개팅 남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모든 것이 괜찮았는데 대머리였고 가발을 쓰고 있었다. 가발은 마치 봉숭아 학당의 맹구가 저요, 저요!,라고 소리를 치는 것처럼 대번 눈에 번쩍 띄었다. 같이 살던 남편이 대머리가 되는 꼴은 봐도 처음 만난 상대가 대머리인 것은 불감당이었다. 하지만 더욱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은 그 대머리 아저씨가 내게 애프터를 하지 않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이었다. 불감당의 연속이었다.


다음번 타자는 대머리였지만 홍석천처럼 시원하게 머리를 밀고 다니는 남자였다. 머리가 반질반질 빤짝하는 남자를 가까이에서 본 건 대머리가 된 아빠 말고는 처음이었다. 우리 아빠는 젊은 시절 알랭 들롱을 뺨치는 외모였는데도 대머리가 된 후 정말 볼품없어질 정도로 대머리의 신체적 타격은 엄청났다. 대머리는 인류의 재앙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예 싹 밀어버린 민머리는 대머리보다는 훨씬 보기 좋았다. 그 민머리를 홍석천이 아닌 쿵따리 샤바라 클론의 구준엽으로 상상하며 데이트를 즐겼다. 건물주라던 그를 만날 수 없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대머리가 아니라 그의 성격 때문이었다. 대표적 이혼 사유인 성격차이. 인간도 동물이라서 그런 건지 나와는 어떤 인간적 교감도 나눌 수 없던 그는 나의 데이트 거절 한방에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 후로도 소개팅은 이어졌다. 나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은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도 그리 매력이 하나 없던지. 머피의 법칙처럼 내가 맘에 드는 남자들은 한사코 내게 또 만나자는 제의를 어찌나 하지 않던지. 솔로는 계속 솔로이려고 하는 관성의 법칙이라도 작용하는 듯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몇 번 데이트를 즐겼던 항해사는(처음 친구가 소개해준다고 했을 때 ‘한의사’로 잘못 알아듣고 매우 기뻐했던 나는 그저 그런 속물임을 고백한다.) 나와의 두 번째 데이트에서 게임을 하자더니 벌칙으로 팔목 때리기를 제안했다. 난 재미로 응했는데 온 몸의 힘을 실어 내 가녀린 팔목을 내리치던 그 항해사에게 하마터면 나는 욕을 할 뻔했다. 그러더니 내게 연봉이 얼마고 모아놓은 돈이 얼마냐고 묻던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용기 없는 나를 이제야 용서한다.


겁 없이 매력적이지 않은 인간이 내게 다가오면 내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엄마가 무당이라는 것을 비롯해 쫄딱 망한 콩가루 집안사를 들이밀면 대부분이 나가떨어졌다. 무당과 가난 중 어떤 것이 그를 보내버렸는지 약간 궁금했지만 꼭 알 필요 없는 의문이었다. 남자들은 딱 두 부류로 나뉘었다. 내가 무당 딸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내게서 깔끔하게 등을 돌리거나 그 따위 무에가 상관이냐는 의로움이었다. 어쨌든 내게 관심을 보여준 남자들에게 무당 딸이라고 거들먹거린 것에 대해 갑자기 사과가 하고 싶어졌다.

“거참 무당 딸이라 미안합니다.”


* 대문사진 © priscilladupreez,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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