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혹은 그 이하 어디쯤 (1)

신통방통 방보살

by 주부맥가이버

대단할 것도, 바람 잘 날도 없는 것 같던 나의 콩가루 집안사가 내 글의 시작이었다. 이야기의 처음은 호기롭고 당당했으나 나는 점점 바닥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소설 완득이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가 내 마음에 울려 퍼졌다. 상처가 되기 싫으면 그냥 니 입으로 말해버려, 라는 그 말이 내 가슴 깊은 곳에 가 콕 박혔다. 그래서 나는 서슴없이 "우리 엄마는 무당이야."라고 말하고 다녔는지도 몰랐다. 내 나이 스물셋, 엄마가 무당이 된다고 했을 때 나의 마음이 어땠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주인공 완이를 보며 깨달았다. 완이가 엄마의 대장암 선고 앞에 엄마의 걱정이 아닌 자신과 연인 연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는 죄책감으로 자신의 따귀를 수없이 내리치는 장면을 보았다. 나의 마음은 완이와 한 치도 다름없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그렇다고 죄책감에 내 얼굴에 따귀 세례를 퍼붓지도 않았다. 엄마가 걷게 될 고된 무당의 길보다는 나는 내 안위安慰가 더 중했다. 내 앞에 수식어처럼 붙게 될 ‘무당의 딸’이라는 말이 치가 떨리게 싫었다. 난 그저 나이길 원했다. 튀고 싶지도 바닥을 기고 싶지도 않은 보통 혹은 그 이하 어디쯤의 삶이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가 신통방통 방보살이 되고 나서의 나는 어딘가 달라졌음에 틀림없었다.

살면서 우리가 갖게 될 수많은 오만과 편견을 어린아이들에게선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우리 집안의 첫 조카가 어린이집 원장님에게 할머니에 대해 당당히 외쳤던 그날이 떠오른다. "우리 할머니는 신통방통 방보살이에요!"라며 자랑스레 할머니 소개를 내뱉던 모습을.


신통방통에 걸맞게 엄마의 영빨은 신을 받고 몇 년간은 실로 아주 좋았단다. 박복하기 짝이 없고 잘 살다가 쫄딱 망한 엄마가 그나마 중년 이후의 삶을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신을 모셨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하지만 역으로 신을 받았기에 박복하고 쫄딱 망했을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한다.


딸인 나조차 무당으로서의 삶이 어떤지 깊게 알 수 없다. 엄마가 어떤 일을 하던지 간에 엄마는 그저 엄마니까. 나는 엄마가 남의 안위를 빌어주는 굿 한판을 벌이기 위해 손수 얼마나 많은 양의 모둠전을 부쳐대는지, 삼색나물을 물에 데쳐 손가락 관절이 시큰하도록 어찌나 세게 쥐어짜는지, 과일을 산처럼 종류별로 쌓고 통돼지를 주문해 제사상처럼 떡 벌어지게 차려놓은 상 옆에 놓아둔다든지 하는 정도만 알고 있다. 실로 이문을 남겨먹기 위한 굿 한판을 위해 쓰이는 노동의 강도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돈 주고 사람을 부리기도 하지만 빠듯한 살림을 위해 수고비를 더 남기려면, 행여나 돈 주고 부린 사람이 빠릿빠릿하지 못한 경우를 따져보면 본전 생각에 엄마는 늘 혼자 그 많은 일을 해내고야 만다. 그마저도 박한 이문에 무당일로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며 고 있다.

무당은 대물림을 한다. 대대손손 기술을 전하는 장인이면 좋으련만 무당일은 대물림을 해서 좋을 것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무당일은 많은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하지만 물려주길 바라는 자손이 있을 리 만무하다. 누구 하나 스스로 무당이길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늘에서 조상신은 당신 자손 하나하나를 눈여겨보다 하나를 점찍을 것이다. 승승장구하며 콧대가 높은 자손보단 삶이 고달프고 자신을 의지할 수 있는 자손을 택한다.


무당일은 대단할 것도 그렇다고 션찮은 것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이다. 매일 아침 옥수를 갈고 기도문을 외우고 전국 팔도 명산을 찾아 산을 타고 추운 겨울 바깥에서 오들오들 떨며 산기도를 한다. 보통날은 힘들다고 찾아오는 이를 맞아 점사를 본다. 삼만 원도 좋고 오만 원도 좋고 십만 원은 더할 나위 없다. 조상신은 결코 공짜로 무엇을 내주지 않는다. 나도 엄마에게 돈을 내야만 점사를 보고 공수를 받을 수 있다. 세상에 공짜가 있을 리가!


조상신은 어쩜 인간보다도 더 노여움을 잘 타고 괘씸한 이에겐 벌도 내릴 만큼 어린아이와 같다. 한번 모신 신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면 자손들이 평탄치 못할 수도 있다 하여 엄마는 그분들 섬김을 최우선으로 한다. 엄마가 잘 모셔서 하늘로 보내드리면 아쉬울 것 없는 그분들이 다시는 자손들에게 손을 뻗지 않을 거란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엄마를 신들에게 빼앗긴다. 시샘과 질투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 엄마는 자신이 잘 불려 무당일을 끝내야만 자신의 대에서 끝이 날 것이라 믿고 있다.

때론 엄마를 선점하는 신도들에게도 자식은 뒤로 밀린다. 집의 가장 넓은 방이 항상 법당 차지이고 방에서 떠밀려 난 엄마는 거실 한편에 이부자리를 편다. 나머지 가족은 조상신보다, 신도들보다 으레 뒷전이다. 신도들은 엄마를 보살님 하고 부르며 따르다가 심사가 뒤틀려버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등을 돌렸다. 그 좁은 고향땅에서 험담을 늘어놓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돼먹지 못한 신도들에게조차 순위가 밀려났다는 생각이 들면 엄마가 무당이 아니었으면,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주부였으면 하는 이뤄질 수 없는 바람이 고개를 쳐든다.


결국 무당일도 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다. 관계의 후유증이 남는다. 신도들이 과연 엄마를 정말 보살‘’이라 생각할지 의문스러웠다. 그들은 언제든 필요하면 엄마에게 전화를 넣거나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 엄마는 낮잠을 자다가도, 우리와 중요한 대화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 음식을 씹는 와중에도, 심지어 똥을 누다가도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곤 했다. 이야기는 정말 각양각색이다. 보통 불길한 꿈을 꾸고 나서 해몽을 원하거나 지지고 볶는 인생사에 대한 상담이다. 가령 남편이 바람이 났네, 자식이 손목에 자해를 했네, 쫄딱 망하게 생겼네, 몸이 갑자기 아프네, 딸이 이혼을 하게 생겼네 등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것이 질문의 요지이다. 그나마 중요한 일을 결정하거나 대학입시에 어떻게 되겠느냐 정도의 질문은 골치가 덜 아픈 축에 속한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물음을 때론 이해할 수 없다. 그저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말하는 이에게 위로와 힘을 줄 순 있다. 그것이 엄마가 하는 무당일의 팔 할을 차지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할지는 결국 자신의 결정이다. 엄마가 위험천만한 조언을 내뱉을 때마다 훗날을 걱정했다.

우리 엄마는 무당이지만 그저 보통 인간이다. 무능력한 아빠와 결혼해서 반평생을 고된 노동을 하며 살아왔고 무당일을 하는 지금도 그러하다. 성격은 불같아서 일을 처리하는 것도 마음을 내는 일도 시뻘건 불덩어리 마냥 뜨겁다. 그건 어떤 경우엔 매우 긍정적으로, 또 다른 경우엔 아주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꼭 엄마 인생의 굴곡처럼.


어리고 지금보다 젊었을 때 구부러진 엄마의 삶에 분노하고 매몰차게 한 적이 많았다. 경외와 멸시 사이에 존재하는 무당처럼 엄마는 내게 전지전능한 신과 실패하고 제멋대로인 인간 사이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갈지자로 인생을 널뛰기하며 살았듯 엄마 또한 그러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