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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Ed May 19. 2019

릴리트의 오싹한 반격

넷플릭스 드라마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 리뷰

※넷플릭스 드라마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 현재 시즌2까지 나왔다.


넷플릭스 드라마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의 어리고 용기있는 주인공 사브리나 스펠먼보다 더 눈길을 끈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사탄의 여인 '릴리트'다. 종교가 없어 성경이나 유대 신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릴리트'란 이름을 이 드라마에서 처음 들어보았다. (초록창으로 '릴리트'를 찾아보니... 어떤 의미로 상징된 존재인지 알겠더라...) 드라마에 성경을 비트는 상징이 굉장히 많은데 종교에 무지하여 거의 못 알아들었다. 알고 보지 못 해 아쉽지만 모르고 봤기 때문에 드라마 그 자체만으로 즐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릴리트는 사탄(=어둠의 신=다크로드=루시퍼)의 명으로 사브리나를 찾아 온다. 사브리나가 어둠의 교회에 이름을 올려 사탄의 재림을 돕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그는 사브리나가 다니던 벡스터 고등학교 선생인 메리 워드웰의 가죽을 쓰고 나타난다. 릴리트는 여러모로 사브리나를 돕는다. 사탄의 명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사브리나가 벡스터 고등학교의 못된 남자애들을 혼내주는 데 동참하고, 마법학교의 가부장적인 방침을 돌파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워드웰 선생의 가죽을 뒤집어 쓴 릴리트


릴리트는 굉장히 순종적인 부하(?)로 등장한다. 사탄의 한 마디에 덜덜 떨고, 그의 발에 입을 맞추기도 한다. 사탄의 명은 어떤 일이 있어도 완수하려 애를 쓴다. 이랬던 릴리트는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바뀐다. 드라마에서 성장하는 것은 주인공 사브리나뿐이 아니다. 릴리트도 자신을 깨닫고 성장한다. 이 드라마에서 사탄과 어둠의 교회가 상징하는 것은 공고한 가부장제다. 릴리트는 사탄의 명을 열심히 수행해, 훗날 자신이 사탄의 옆자리에 앉는 여왕이 되길 원했다. 드라마의 초반, 릴리트가 원했던 것은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 남편(남성)을 통해 권력을 얻는 것이었다.


드라마에 릴리트와 아주 유사한 서사를 가진 여성이 한 명 더 있는데 사브리나와 같이 마법학교에 다니는 '프루던스'다. 프루던스는 마법학교에서 고아로 자라면서 함께 부모없이 큰 도르카스, 애거사와 자매처럼 자란다. 그러다 자신의 친아버지를 알게 되는데 그는 바로 마법학교의 교장이자 어둠의 교회의 대사제 블랙우드였다. 프루던스는 그 후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드라마 내에서 가부장 권력을 직접적으로 휘두르는 블랙우드 대사제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자신을 친딸로 인정하고 '블랙우드'란 성을 내려주길 간청한다. 릴리트가 남편을 통해 권력을 얻으려 했다면 프루던스는 아버지를 통해 권력을 얻으려 했다.


사브리나를 도우라는 사탄의 명을 수행해 나가면서 릴리트는 사탄의 본심을 알게 된다. 사탄은 릴리트가 아니라 사브리나를 자신 옆의 여왕으로 세우려 했던 것. 릴리트는 분노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사탄은 릴리트가 마음을 준 조신남 아담을 죽여버린다. 자신의 명에 소홀하고 다른 이에게 눈을 팔았다는 이유다. 릴리트는 사랑도 잃고, 여왕의 자리도 얻을 수 없게 돼버렸다. 프루던스도 마찬가지다. 블랙우드는 끝까지 자신의 사생아를 이용만 했고, 프루던스에게 친자매와도 같은 도르카스와 애거사마저 죽이려 했다. 모든 것을 잃은 것만 같은 릴리트와 프루던스. 그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프루던스와 그의 자매들


릴리트는 그냥 사탄을 없애고, 자기가 지옥의 왕이 돼버렸다. 간단하고도 현명한 선택이다. 왕의 자리를 원하는 릴리트와 사탄의 옆자리에 앉기 싫은 사브리나가 합심하여 사탄을 인간의 몸에 가둬버린다. 안타깝게도 사탄을 가둔 인간의 몸이 사브리나의 조신한 남친 니콜라스였지만... 시즌2의 마지막에 사브리나는 사탄을 몸에 가두고 지옥에 잠든 남친 니콜라스를 구하러 모험을 떠나며 시즌3을 예고한다. 프루던스는 난리통에 도망친 친아버지 블랙우드에게 복수하러 길을 떠난다. 


우리는 릴리트나 프루던스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권력의 옆자리만이 유일한 길이었던 수많은 여성들 말이다. 릴리트는 그 공식을 손쉽게 부숴버렸다. 당신이 나를 선택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기보다 내가 스스로 그 자리에 앉겠다. 사탄이라면 죽고 못 살았던 릴리트의 성장이자 반격이다. 이것은 드라마기에 릴리트에겐 그럴 만한 힘이 있었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여전히 유일한 선택지는 남성의 옆자리인 경우가 많고, 반격한다 해도 가부장제 카르텔 앞에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스스로 왕이 된 릴리트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것이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도 좋지만 릴리트와 프루던스의 오싹한 성장과 반격에 더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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