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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12. 2024

9월, 거제도 한달살기가 시작되다

거제도 감상, 동네 소개, 숙소 소개(비용 포함)

#9월의 거제도, 예쁘다. 진짜 예쁘다!     


성수기 관광객이 빠져 한산해진 9월, 우리의 거제도 한달살기가 시작되었다.

     

살면서 몇 번인가 거제도에 와봤으나, 너무 오래전이거나 매우 짧았던 여정으로, 이곳과 관련하여 기억에 남는 게 많지 않다. 9~10살 때 친척들과 거제 몽돌해수욕장으로 여행 온 적이 있었고, 15년 전 외도를 후다닥 보고 바로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바쁜 일정 때문에 말 그대로 이 섬을 지나간 적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 보니 긴 운전 끝에 도착한 거제도는 처음 와 본 곳처럼 생소했다. 다만, 너무나 사랑했고 여전히 그리운 나의 외할머니 고향이 이곳이라는 사실만으로 ‘거제도’ 세 글자가 주는 느낌은 아련하고 따뜻했다.      


이태리 남부 아니냐며


거제도에서 지내며 가장 많이 한 말이 “거제도 진짜 예쁘다.”이다. 남부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할 때면 눈이 바빠진다. 언제 짠하고 드러날지 모를 예쁜 풍경을 놓칠세라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9월의 파란 하늘과 거대 풍선 같은 하얀 구름, 한낮의 짙푸른 바다와 다이아몬드 가루를 뿌린 듯 반짝거리는 윤슬이 이루는 조화는 내 글솜씨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다이아 가루 뿌렸나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해안도로 한쪽 면에 바다가 펼쳐지고 다른 면에는 길 따라 수국이 쭈욱 심겨 있는데, 9월이라 꽃이 다 졌다는 점이다. 이 길에 하늘색, 연보라, 하얀 수국까지 더해졌으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차 안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내가 보인다. 다른 분들이 찍어둔 사진과 영상으로 거제도 수국길을 감상하며 아쉬움을 달래 본다.      


9월 거제도 1일 1 해안도로 드라이브는, 수국은 졌어도, 충분히 행복하다.     


#거제도에도 이태원이 있다


거제도 옥포동에 한달살기 짐을 풀었다. 그런데 이 동네 분위기가 좀 독특하다. 마트나 길에 이상할 정도로 외국인이 많고, 숙소 인근에는 할랄푸드, 텍사스 바비큐, Western pub 등 다국적 식당이 많아, 나의 어린 시절 서울 이태원과 닮은 느낌이었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려고 요가와 필라테스 학원에 등록했는데, 수강생 10명 중 6명이 외국인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살짝 들어보니 포르투갈어를 쓰고 있었고, 수업은 영어 60 : 한국어 40으로 진행되었다. 거제도의 요가원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영어로 요가 수업을 받다니,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운동이 끝나고 옆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간단한 자기소개 후 “여기 왜 이렇게 외국인이 많아요?” 물었더니 옥포항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란다. 대개가 북미 혹은 유럽인이고, 본인이 사는 아파트에는 한국인 반, 외국인 반이라 애들은 놀이터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로 떠들며 논다고 한다. 이곳에서 아이를 키운다면 애써서 영어 유치원에 보낼 필요도, 돈 써서 영어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되겠다.     


나는 거제도의 이태원, 옥태원에서 살고있다.

한 달 동안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 영어 실력을 다지기는 어렵겠지만, 동네 다국적 맛집을 섭렵해 보겠다는 포부를 안고서.      


#숙소 소개      


이번 거제도 집은 투룸에 거실이 크게 빠진 아파트이다.


헤드레스트가 있는 4인용 소파, 책상, 큰 방에는 시*스 침대, 작은 방엔 AC* 침대가 갖추어진 집이다. 단순히 사진용으로 가구와 가전 구색만 맞춘 집이 아니라 사는 데에 불편이 없는 집이라 만족스럽다. 게다가 거제도 숙소비가 타지방 대비 저렴하여 더 마음에 들었다. (저희 숙소는 125만 원+공과금 15만 원에 계약했어요.)    



"일단 환기부터 할까?" 숙소에 도착해서 창을 여는데, 어머나! 방충망이 없다.

매일 환기하고 청소해야 하는 나로서는 적잖게 당황스러웠지만, 남편이 "모기 들어오면 잡지 뭐." 캐리어 속 전기 모기채를 테니스 채처럼 휘젓는 제스처를 취했다. "드디어 이 녀석이 활약하겠구나." 남편이 편하게 반응하니 나도 따라 웃었다.


살다 보니 불편한 점이 하나, 둘 튀어나오지만 우리는 더 이상 숙소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세상에 완벽한 숙소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미흡한 청소, 냄새나는 수건 등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노력과 정성을 쏟지만,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는 내 마음을 바꿔야 한다는 깨달음을 여행에도 적용하게 되었다. 


남편은 예전 우리 집이 얼마나 편안한 공간이었는지 그리고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내가 어떤 노력을 했을지 헤아리고 고마움을 표현한다. 나는 창틀의 먼지, 소파의 얼룩, 특이취가 나는 카펫을 관대한 눈으로 바라보며 청소 강박을 내려놓는다.


예민둥이 부부가 이제야 조금씩 여행에 적응해 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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