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Oct 17. 2024

여행 중 구독자와의 만남

연예인병 초기 아내, 매니저병 중기 남편

#만남1


거제도 한달살기 글을 블로그와 브런치 스토리에 올렸다. 나는 한 때 내가 앓았던 질병과 관련하여 블로그를 운영 중인데, 창원에 사시는 이웃님께서 부부동반 만남을 제안해 셨다. 예전 서울에서도 블로그 이웃님과 만나 본 경험이 몇 차례 있어 크게 망설이지 않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9월의 청명한 토요일, 거가대교를 건너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젊은 부부가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댓글 느낌상 여성일 거라 여기고 아내와 눈을 맞추며 걸어갔는데, 이웃님은 의외로 남성, 즉 남편분이었다. 만남부터 놀랍고 재미있었다.


가끔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긴 하나 어떻게 바로 알아보셨을까 궁금했는데, 나와 같은 병원을 다니는 그가 외래 진료실에서 우리를 본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땐 말은 못 걸고 멀리서 ‘아, 블로거 그분이구나.’ 생각만 했다고 하였다.


장소를 옮겨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 그의 입원 시 사진을 보게 되었다. 동병상련이라고, 병마의 고통과 회복 과정에서의 몸부림이 굳이 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180cm 키에 40kg 중반까지 몸무게가 빠진, 죽음 가까이 서 있던 무력한 남자가 현재는 다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빠이자 남편이며, 아들로서 살고 있는 모습에 감격스러웠다. 이웃님 부부 지난 시간에 박수를 쳐 드리고, 완벽히 돌아오지 못한 몸을 이끌고 살아가는 오늘의 그를 마음으로 안아드리고 싶었다. 그게 어떤 건지 알기에. 


그는 내게 블로그에 올렸던 글로 위로와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아내가 "남편이 글을 좋아해요. 그래서 뵙고 싶어 했어요." 말을 전하셨을 때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휴, 횡설수설, 매끄럽지 못한 내 글이 뭐라고.’

이웃님께서는 한술 더 떠서 오늘의 만남이 본인에게는 “연예인 팬 미팅” 같다며 나를 추켜세워 주셨다. ‘살면서 내가 이런 말을 다 듣는구나.’ 어리둥절해하면서 괜스레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오랫동안 글로만 만나던 사람을 실제 대면하면 실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은 시간을 두고 생각을 정제한 결과물이나, 말은 날 것 그대로라 그 거침이 걱정스러웠다.

부부의 칭찬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데, 우리 남편은 그 어느 때보다 신나 보였다. 본인의 I 성향을 망각한 채, 초면에 꽤 깊은 속마음까지 보이며 수다를 떠는 모습이 낯설고 신기했다.     


식사 대접에 이어 의미있는 선물까지! ㅠㅜ  이웃님과의 만남으로 평범한 날이 생일같은 하루가 되었다

만남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 앞으로 이웃님 가족 중 누구 하나 건강 문제로 크게 고생하는 일 없기를 기도하였다.


기도 끝에는 그나저나 난 앞으로 병원 갈 때 옷도 신경 써서 입고, 화장 좀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블로그 이웃님 중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생각이라는 녀석이 엉뚱한 곳으로 튀더니, 가슴 찡했던 만남의 마무리로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어 버린다.


허 참, 이웃님 한 분 만나 뵙고 말로만 듣던 연예인병에 걸렸나 보네. 큰일 났다. 이 병에 걸리면 좀처럼 낫기 어렵다던데.

      

풉,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졌다. 행여 누가 볼까 휴지로 입가를 꾹꾹 눌렀다.



#만남 2


브런치 글에, “옥포에 브레드만이라는 유기농 빵집 있습니다. 한번 놀러 오세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보다 사장님의 고민이 담긴, 좋은 재료를 쓰는 가게를 선호하는 편이라, 남편과 그곳을 찾아갔다.

      

가게는 동네 사랑방 느낌으로 친근했다. 우리가 레몬 파운드케이크를 쟁반에 담는 걸 보신 사모님께서는 재료 소개와 함께 케이크 맛있게 먹는 법을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계산을 끝내고, 그냥 나가려다 용기를 내서 말을 꺼냈다.


제 브런치 글에 댓글 달아주셔서 놀러 왔어요.”

사장님께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시길래 설명을 조금 덧붙였다.

“거제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거든요.”

“아~아~~ 작가님이세요? 우와! 너무 반갑습니다”
 사장님 얼굴이 환해지더니, 두 손까지 양옆에 붙이고 공손하게 인사하며 반겨주셨다.      


작가라는 말이 나는 간지럽다. 작가, 너무 소중해 차마 내놓을 수 없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꿈이다. 아니, 감히 꿈이라고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멀고 먼 단어이다. 작년에 생전 처음 신청한 작은 에세이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며 글쓰기에 관심이 생겼으나,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며 내게 글쓰기는 취미일 뿐이라고 자신을 도닥여 둔 상태다.


“작가님이세요?”

질문에 민망해져 내가 대답대신 웃으며 뒤로 빠지자 이번에도 남편이 활약한다.

“네에~”

끝소리까지 올리면서 그가 대답한다. 엄마야! 뻔뻔스러워라.


사장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니 어깨가 한껏 신나 보인다. 가게를 나오던 길, 거듭 거절했지만, 사장님께선 빵 하나를 덤으로 우리의 봉투 속으로 밀어 넣어주셨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남편의 입이 귀에 걸려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작가님~, 작가님~”

내가 부끄러워했던 모습을 본 그는 일부러 나를 그렇게 부르면서 재미있어했다. 광대가 부푼 채로. 이럴 때 남편은 영락없이 고무줄 끊고 줄행랑치는 11살짜리 개구쟁이가 된다.     


“작가님~안 되겠어요. 26년쯤엔 장소를 하나 빌려 구독자와의 만남을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어디가 좋으려나? 세종문화회관...”

“여보! 정신 차려!”

“뒤에 작은 커피숍! 네 거기가 좋겠습니다. 아, 제가 아무리 바빠도 매니저로서 이 건은 진행시켜 보겠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도 그의 작가님, 매니저 상황극은 계속되었다. 심하다. 이 정도면 매니저병 중증이다. 거제도에서 구독자 2명 만나고 저토록 신나 버린 내 편 남편이여.          




구독자님과 만난 후 그동안 글을 쓰기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누군가는 내 글로 희망을 붙잡았고, 어떤 이는 호기심과 재미를 느낀 것 같다.


글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이 아는 사람이 되어,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관심으로 변하였다. 나는 창원에 사는 블로그 이웃님의 건강을 기도하고, 거제 옥포동 브런치 독자님의 사업번성을 기원한다. 그들은 내 글에 하트를 누르며 나를 응원한다. 글을 써서 발행하는 작은 행위로 내 세상이 확장되고, 그 안에서 사람의 온기가 오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난 오늘도 끄적거린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더라도 글을 다. 일단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수단으로써, 나아가 작가님 호칭이 부끄럽지 않게 글을 쓰는 날이 올 거라는 소망을 안고서.

매거진의 이전글 외할머니의 유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