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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남해 독일마을을 다녀와서

by 윤슬

남해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남녀가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서 만나 인연을 는 모습이 그려진다. 영화를 보며, 말 안 통하는 타국에서 고된 일을 자처한 이들 중 사연 없는 사람은 없었겠지 싶어 마음이 아팠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은퇴 후 조국으로 돌아와 남해에 독일마을을 이루어 정착했다는 것을 듣고, 그때부터 남해에 가보고 싶었다.


거제를 떠날 날을 일주일 남겨두고 남해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군을 한 바퀴 돌아보기엔 체력과 시간이 모자라, 독일마을로 선택과 집중하여 다녀오기로 했다.


마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오니 마을 소개 석문이 눈에 띄었다.



"너무나 가난했던 1960~1970년도 우리나라!"

로 시작하는 첫 문장에, 그 시절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아휴... 안쓰러운 한숨이 나왔다.


독일마을 안내 QR을 찍어 설명을 들으며 전망대에 오르고, 주황색 지붕이 인상적인 마을의 집들을 구경하였다.


현재 거주 중인 실제 파독 광부, 간호사님들께서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남해 독일마을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데 듣다가 감정이 복받쳐 오르기도 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죄로, 빛나야 할 청춘을 타국에서 말할 수 없이 고생하며 보냈을 이들에게 연민이 일었다.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출출해져 독일 가정식을 판매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슈니첼과 굴라쉬, 치킨 오븐구이를 시켰다.



유럽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던 때, 독일에 몇 번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 당시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며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는 아까부터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던 울컥한 감정에 대해 남편과 나누었다.


20대 초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1년간 외국에서 공부할 때도 서러운 일들은 있었다. 하물며 딱 그 나이대에, 가정의 생계를 위해 단지 살기 위해 타국에서 노동했던 청년들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짐작도 안 간다.


다행히 나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한창 발전하고 희망에 차 있던 시기에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것을 '난 운이 좋았지~.' 생각에서 그친다면 지나치게 철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15~20년 정도 빨리 태어났더라면, 태어나 보니 세상 가난한 나라에, 답 안 나오는 집구석이었다면 나라고 그런 고생을 면할 수 있었을까?


눈부시게 빠른 경제적 발전이라는 업적 이면에는 누군가는 죽도록 고생했다는 역사가 있다.


나의 다행이 다른 이의 불행의 결과일 수 있다.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앞서 살았던 이의 눈물값이고 핏값이구나 생각하니 대화 도중 목이 메이기도 했다


기념품점에 들러 독일 음식 몇 가지를 구입하여 해가 지기 전 떠날 준비를 하였다.


돌아오던 길, 붉은 기를 머금은 하늘 덕에 마음은 더욱 차분해졌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이야기는 언론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그들은 애국자라 칭송받지만, 알려지지 않은 훨씬 많은 무명 씨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과 노고가 현재의 밑거름이 되었을 텐데,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 서운하거나 억울하진 않을지 염려가 되었다. 그 무명 씨 중 한 사람이 우리네 조부모님이고 부모님이며 이모와 삼촌일 텐데...


전화로 전하기는 쑥스러우니, 아버지께 톡을 드려야겠다.

"고생 많으셨어요.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난데없는 딸의 덕담에 의아해하시겠지만


"그래, 고맙다."

무뚝뚝하나 다정하게 받아주실 것 같다.

전망대에서 본 독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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