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책이 되는 경험을 직접 만드는 값진 일
지난 9월, 텀블벅 펀딩을 2주간 진행했다. 그동안 45명의 후원자를 모으고 목표 금액의 116%인 약 80만 원을 달성했다. 그 후 10월 초·중순까지 독립출판 최종 작업을 진행하고 배송을 보냈다. 불과 한 달 전인데도 아득해져 내가 언제 책을 내고 펀딩을 했었나 싶어진다. 기억이 저 멀리 더 사라지기 전에, 펀딩 기획부터 끝까지 약 두 달의 과정을 회고해보려고 한다.
펀딩은 품이 많이 드는 일
품이 많이 든다는 말을 일하다 보면 한 번씩은 꼭 하게 되는 거 같다. 품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에 드는 힘이나 수고.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일의 '품'이라는 건 크고 작게 손이 많이 가고 사람이 꼭 필요한 일을 할 때 쓰는 거 같다. 텀블벅 펀딩이 딱 그렇다. 펀딩 페이지 기획은 물론 실물의 느낌이 전달되도록 독립출판물 표지와 내지 이미지를 활용해 목업 이미지를 만든다. 또 여러 펀딩 페이지를 살펴보니 타이틀을 영상으로 만들며 더욱 매력적일 거 같았다. 그래서 책의 소개, 주요 글귀 그리고 책 표지와 내지 이미지를 활용해 영상 콘텐츠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샀던 경험을 떠올리자면 특별하게 다가온 한 문장이 제일 컸다. 그래서 흑백 내지 이미지 배경으로 타이핑 사운드와 글씨가 나오는 효과를 적용해 짧은 글귀에 집중시켰다. 이 문장 중 한 문장이라도 누군가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https://youtu.be/1oh7RtYTUJk)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펀딩에 굿즈가 빠지면 섭섭하다. 여러 펀딩을 살펴보면 굿즈는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하지만 그 기본에도 노동과 비용이 들어간다. 물론 개인의 재량으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실물을 보지 않고 구매를 해준 후원자를 위해서라도 리워드가 필요했다. 그래서 정가의 10% 할인한 종이책 구매 고객 모두에게 2장의 엽서를 함께 제공했다. 이와 오픈한 펀딩을 알차게 활용하고자 2천 원을 추가하면 책 속 이미지와 글귀가 담긴 스티커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적으면 또 간단해 보이긴 하지만 굿즈에 넣을 사진과 글귀를 골라 디자인하고 종이 재질을 정하고 제작업체를 확정하는 일련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작은 굿즈가 완성된다. 이처럼 펀딩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라 만들려면 콘텐츠 공장처럼 무엇이든 찍어내야 한다.
텀블벅 펀딩에도 외주가 필요해
조직 밖 노동자로 외주 일을 해내고 있지만 스스로 만든 펀딩에도 외주가 필요했다. 한 사람이 진행하기 무리가 있는 일도 있었고 꼭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봐야만 되는 일들이 있었다. 그 첫 번째로 교정교열이다. 물론 나 역시 여러 번의 교정교열을 보며 맞춤법을 확인하고 어색한 문장을 다듬었지만, 글을 쓴 사람이 아닌 타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걸 즐기는 친구에게 교정교열을 부탁했다. 얼핏 그 친구가 출판사 편집자에 대한 막연한 바람을 이야기한 것도 떠올랐기에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부족하지만 5만원이라는 페이를 주고 작업 요청 메일을 주고 받았다. 일주일 정도 후 친구는 연필로 교정교열을 진행한 두꺼운 스프링 제본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도 설명이 필요하다며 만나서 어떤 이유에서 이런 표시를 했는지 이야기를 풀어내 주었다. 교정교열 작업자이자 첫 독자인 그의 살뜰한 말을 들으니 괜히 고마웠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친구 덕분에 책이 더 나아지겠구나 느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외주는 북디자인 검토였다. 디자인 전공자도 아니고 처음으로 인디자인을 익히며 만들었으니 스스로도 아쉬운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인디자인 툴을 사용하는 것보다 디자인 그 자체가 문제였다. 그렇다고 디자인 작업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꾸역꾸역 만든 책을 가지고 디자이너 친구를 만났다. 간단하게만 봐달라고 했는데 친구는 첫 만남 이후에도 두 번째 만남에 응해주었고 종종 막히는 부분을 해결해주기도 했다. 이럴 거면 이 친구에게도 약소하지만 페이를 줄 걸 참 미안했다. 만나면서 식사나 커피를 사긴 했으나 그가 보여준 호의에는 턱없이 부족했었다.
마지막 외주는 택배 배송이었다. 개별포장까지는 직접 하겠는데 택배를 발송하는 일이 문제였다. 게다가 우체국 택배 기본 배송료가 4,000원으로 인상되면서 배송비만 20만 원 가까이 들게 생겼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독립책방 공상온도의 배송 서비스(http://www.gongsangondo.com/)를 알게 되었다. 책방에서 계약된 택배 서비스를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배송비로 진행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더불어 내 집 주소가 아닌 책방 주소로 보낼 수 있는 것도 나에겐 메리트였다. 이에 카카오톡 채널로 연락을 드렸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매번 친절하고 상세하게 안내해주셔서 무사히 개별 택배 발송까지 완료할 수 있었다.
누가 뭐래도 가족과 친구가 제일
내 책을 구매한 후원자 중 40% 이상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인들이었다. 멋들어진 디자인도 아니고 인정받은 이야기도 아닌 책. 이걸 사주는 사람은 역시 내 주변 사람들이었다. 텀블펀 펀딩은 후원자가 구매 가격 이상의 금액을 설정할 수도 있는데 JackPot 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약 6만 원을 후원해줬다. 이름처럼 잭팟이 터진 것. 누군지 정말 궁금했는데 나중에 주소지를 받아보니 옆방에 있는 친동생이었다. 최근에는 동생 친구들 6명이 추가로 책을 구매해주기도 했다. 기특한 녀석. 기대하지 않았던 동생에게 왠지 큰 빚을 진 기분이었는데 그렇다고 더 잘해주진 못했다. 다만 동생 친구들이 받아보는 택배에 동생을 잘 부탁한다며 엽서를 함께 넣었다. 펀딩이 목표 이상으로 달성하자 엄마는 다 갚아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덕을 쌓으면서 베풀라고 거듭 강조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면 된다. 그럼 그 사람들이 나에게 힘이 되어준다.
힘 나는 피드백을 받아요
조직 밖 노동자는 피드백이 매번 간절하다. 특히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는 내게 반응이나 피드백은 성과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람들 역시 각자 살기 바빠 좀처럼 타인의 것을 유심히 봐주지도, 건강한 피드백을 전해주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펀딩 덕분에 간만에 감사한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인상 깊었던 피드백을 공유하자면 아래와 같다.
한 사람의 세상이 글로 쓰여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는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책을 읽는 동안 영화 <벌새>가 생각났다. 이 책은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가 봐왔고 경험한 세상에 대해 겨우 내뱉은 말들이 이렇게 귀하고 그 귀한 말들이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킨다.
@pberyy_710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글로 내뱉은 슬기님의 책. 한국에서 딸, 여성, 일하는 사람, 그냥 사람으로서 겪은 모든 이야기에 공감했다. "나를 낳느라 수고했어" 라는 문장은 텀블벅 페이지에서 봤을 때부터 눈에 들어왔는데 실제 이 문장이 적힌 장을 읽으면서 눈물을 쏟았다.
@sunbin__
스스로도 잘 못 하는 피드백을 이렇게 감동적인 문장으로 받아서 짜릿했다. 그리고 정말 감사했다.
친구와 함께 만든 첫 번째 독립출판을 해내고 온전히 혼자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두 번째 독립출판까지 마쳤다. 그러면 아쉬움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매번 욕심이 난다. 다음에는 더 잘 만들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보고 싶은 기획과 팔고 싶은 글이 있다면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고 또 글로 날 봐주는 시선을 계속 받아보고 싶다.
혹시 글을 좋아하고 또 글을 쓰는 당신이라면 독립출판 그리고 텀블벅 펀딩을 추천하고 싶다. 글이 책이 되는 경험을 직접 만드는 일이니까. 이걸 만든다고 집은 못 사겠지만 마음은 부자가 될 거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