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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Feb 20. 2021

조직 밖 노동자로 소셜벤처에서 9개월 동안 일한 경험

마케팅 파트너로서 아이템 발굴, MVP, 리브랜딩, 마케팅 해내기


조직 안 인연이 조직 밖으로 연결되다


지연님 처음 만난 건 2018년 10월이었다. 당시 나는 사회혁신가 육성 프로그램 담당 마케터였고 그는 소셜벤처 창업을 하고자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단번에 그가 눈에 띄었다. 밝은 얼굴에 당찬 에너지가 느껴졌고 반복되는 우리나라의 성차별과 혐오표현 문제를 성교육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미션을 가져 관심을 두게 되었다. 공기처럼 퍼져있는 혐오를 느끼는 나였기에 처음부터 그를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그는 뚜렷한 목적의식과 성실함으로 해당 프로그램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고 그 이후로도 그와 느슨하게 인연이 이어졌다. 종종 친구처럼 만나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내가 조직 밖에서 일해보려고 하니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연락을 달라고 했고 그 역시 당시에 풀타임보다는 브랜드를 함께 논의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렇게 우리는 함께 일하게 되었다.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나섰다


당시 지연님은 새로운 아이템을 찾으려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돌아봤을 때 크게 성장하지 않았고 확장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던 거 같다. 이에 나와 함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찾았다. 떠올렸던 것 중에는 교육 콘텐츠 중심으로 미디어를 고려하기도 했고 진지하게 유튜브 채널 이름까지 정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지연님이 왜 새로운 아이템을 찾으려 하는지 어떤 점에서 한계를 느꼈는지 계속 파고들어 갔다.


근본적으로는 어린이 성교육이 어린이를 교육하는 것을 넘어 가족 내에서 특히 양육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그 부분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린 양육자를 중심으로 스터디를 했고 특히 양육을 도맡고 있는 여성 양육자가 여러가지 면에서 많이 힘들겠다는 공감대를 이루게 되었다. 이를 통해 양육자 100명 이상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하기도 했었다. 여성 양육자는 일하면서도 양육까지 전적으로 책임지는 부담을 받고 있고 스스로도 그런 책임감에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일하는 것의 여부를 떠나서 여성 양육자들은 충분히 잘 시간도 부족했고 에너지도 많이 떨어져 정신적으로도 힘듦을 호소하기도 했다.


우리는 여성 양육자들이 양육에서 효능감을 느껴야 어린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거라 판단했다. 이에 양육자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비슷한 환경과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그 속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기도 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조사해보니 여성 양육자는 굉장히 큰 범위의 집단임에도 개개인의 가치관과 성향에 따라 커뮤니티가 나뉘지 않았고 온라인에서는 맘카페가 주요했으며 어린이와 같은 유치원, 학교에 다니는 양육자끼리 소규모로 뭉쳐지거나 개별적으로 책을 사서 홀로 많은 공부를 해나가고 계셨다. 우리는 비슷한 양육자들끼리 깊은 소통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구상했고 익숙하게 사용하시는 네이버 밴드를 중심으로 빠르게 2차례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진행했다.




결국 시작점에서 전과 다른 시도를 하다


MVP 진행 결과, 우리는 양육자 커뮤니티를 접었다. MVP 진행 시 최소 목표치로 잡아놓은 KPI가 있었는데 2번 다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시 아이템을 찾아야 했지만, 빠르게 시장의 반응을 보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건 큰 교훈으로 남았다. MVP를 통해 빠르게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강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시 원점인 ‘어린이 성교육’으로 돌아왔다. 양육자들은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성교육 책으로만 교육을 진행하거나 유치원이나 학교의 교육에 의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유치원도 학교에서도 여러가지 한계로 구체적이면서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성교육을 체계적으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지연님은 당시 사업을 대면 성교육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라는 상황이 닥쳤고 대면 교육이기에 확장성에 한계가 있기도 했다. 물론 성교육 선생님을 많이 양성해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도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때문에 온라인 성교육 상품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코로나로 인한 대면 교육의 한계를 없애주면서 시간, 지역의 제한이 풀려 확장성이 더욱 기대되는 아이템이었다. 이미 클래스101 이나 패스트캠퍼스 등을 통해 온라인 교육 콘텐츠의 시장성이 입증된 상황이었다. 온라인 클래스를 제공하던 브랜드들도 점점 카테고리를 넓혀 키즈쪽으로 시도해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겐 ‘성교육’이라는 확실한 키워드가 있었다. 여전히 낮은 브랜드 인지도이지만 우리가 어릴 적 알고 있던 푸른아우성이나 방송에 많이 나오는 오은영님과 같은 분들을 제외하자면 두각을 나타내는 플레이어가 없는 분야였다. 이에 우리는 성교육과 성인지 감수성 교육까지 포괄하는 성교육 온라인 클래스를 상품화해보기로 했다.


처음은 누구나 그렇듯 모든 것이 막막했다. 직접 영상 콘텐츠를 촬영하고 편집했고 그와 동시에 홈페이지도 새롭게 세팅해 상세페이지를 완성했다. 만든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팔리는 것 역시 아니기에 홍보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할인 이벤트를 계획했다. 가까운 이들에게 알리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한 분, 한 분이 소중한 시작이었으니까. 그렇게 함께한 9개월 중 마지막 3개월은 온라인 성교육 클래스를 도맡아 집중했다. 이 역시 3차까지 MVP를 진행하면서 불안정했던 초기 세팅을 잡았고 핵심 고객이 있는 곳을 공략해 바이럴 마케팅을 하거나 직접 연락을 보내 클래스를 알렸다. 브랜드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성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나답게 사는 NA피플’ 이름으로 고객 인터뷰 콘텐츠를 진행했다. 성교육 클래스 키트에 포함되는 구성품 중 일부를 다른 브랜드와 협업해나가면 서로 윈윈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도 했다. 먼저 경험을 할 수 있게 브랜드 채널 팔로워 중심으로 체험단을 모집도 했다.


하지만 여러 노력에도 온라인 성교육 클래스의 매출은 잡아놓은 목표치에 미치진 못했다. 그래도 조금씩 판매가 되었고 이를 레퍼런스로 B2B와 B2G 사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때문인지 2명이었던 조직 구성원은 5명까지 늘어났다. 우리는 해당 상품 역시 3차례 MVP를 해보고 판단을 하자고 했었는데 나는 그 과정 중에서 3차 MVP 온라인 클래스 오픈까지 진행하고 업무를 종료하게 되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지금 시점에서는 이 아이템을 또 어떻게 판단하고 이끌어나갈지 궁금하기도 하다.




NADAUN을 더 나답게, 리브랜딩을 하다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나가면서 동시에 진행했던 작업이 리브랜딩이다. 브랜드라면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과 미션을 가지고 색깔을 드러내길 원한다. 그게 수많은 경쟁자 속에서 차별화가 되는 주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전 브랜드 이름은 youniicon(유니콘)이었다. 이 이름은 사회혁신가 육성 프로그램 참여 당시 지었던 이름이었다. 지연님은 여러 고민을 통해 사업자등록증에 올라간 ‘나다운’으로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연님이 만드는 브랜드엔 모두가 성별에 상관없이 나답게 살아가길 바란다는 진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 역시 창업가의 철학이 담긴 이름 같다고 생각하여 동의했다.


브랜드명을 바꾸면서 전체적인 리브랜딩을 진행했는데 이전에 유니콘이 가지고 있던 통통 튀고 다소 지나치게 밝고 활기찬 느낌도 바꾸고 싶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양육자에게 신뢰감을 주면서 친절한 느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린이 성교육’ 서비스의 경우 고객과 사용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고객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는 사람인데 나다운의 경우는 그게 양육자였다. 사용자는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나다운에게는 사용자가 어린이였다. 즉 돈을 지불하는 사람과 사용자가 다르다는 것이다. 어린이 제품과 서비스를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어린이가 사용하지만 직접 구매할 수 없고 양육자의 시선에서 어린이에게 도움이 될 거 같은 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나다운이 전보다 양육자에게 조금 더 믿을 수 있으면서 친절한 브랜드로 다가가야한다고 판단하며 리브랜딩을 진행했다.


디자인의 경우 나와 이미 합을 맞춰본 디자이너에게 과업을 요청드렸다. 지연님과 함께 정리한 내용과 원하는 브랜드의 캐릭터나 느낌을 설명했고 비슷한 결의 레퍼런스를 전달했다. 브랜드 스토리는 지연님의 처음 시작부터 그 과정을 하나씩 파헤쳐가면서 핵심고객을 설득이 시킬 수 있는 스토리 구조를 잡아 정리했다. 브랜드 슬로건은 브랜드의 가치와 이름이 각인될 수 있는 방향으로 여러 후보를 리스트업 했고 내부 논의와 외부 의견을 구해 ‘어린이와 양육자를 더 나답게’로 결정하게 되었다. 변경된 리브랜딩에 맞춰 새로운 홈페이지 기획 및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에 구성원이 늘어나면서 브랜드의 철학에 맞게 다함께 NADAUN의 일 문화를 정리하며 조직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혹시 리브랜딩 관련 내용이 반영된 홈페이지가 궁금하다면 여기(https://www.nadaun.kr/about)를 살펴봐주길 바란다.




NADAUN 마케팅 파트너로 일했던 감사한 순간들을 기억하며



9개월 동안 지연님과 NADAUN 구성원과 함께하면서 감사한 순간들이  많았다. 지연님은 대표자로서 구성원들의 입장을 먼저 살펴보고 배려해주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내가 나로 존재하면서 일할  있었고 나의 쓸모를 매번 정확한 언어로 북돋아 주어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젠더감수성이 높고 서로를 존중하는 NADAUN 동료들 덕분에 다른 곳에서 숨겨야 했던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과 비건 지향의 가치관을 말하며 어느 때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있었다.


더불어 우리가 함께 만드는 상품과 서비스가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제공하며 성인지 감수성까지 키울 수 있기에 종종 보람찬 순간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아쉬운 이별을 했던 건 회사가 커나가는 속도에 맞게 지연님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구성원이 필요했고 나는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조직 밖에서 더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서로 평화로운 작별 인사를 하면서 9개월을 마무리했다. 허나 우리는 계속 느슨하게 연결되어 지낼 것이고 언젠가 서로가 필요할 때면 또 일해볼 수 있기에 마지막 인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나와 가까운 사랑스러운 조카가 생긴다면 나는 무조건 NADAUN 성교육을 선물해줄 거다. 자신의 몸을 잘 알고 이해해야 하니까. 그것이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자세이고 자신이 소중한 만큼 타인도 소중하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니까. 그리고 훗날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잘못된 영상(그게 불법 촬영물일지도 여성을 학대하는 내용이 담긴 것일지도 모르는)을 보지 않을 수 있도록 NADAUN이 명확하고 친절하게 알려줄 거니까. 이 마음을 간직하며 NADAUN을 오래오래 응원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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