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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Nov 24. 2021

갑자기 외로워도 괜찮아

추운 계절, 혼자 일하는 조직 밖 노동자의 마음


11 초였던  같다. 갑자기, 불현듯, 불쑥 워진 마음은. 그때 달력에 우울, 불안을 적어놓았다.  후에는 공허, 외로움을 적었다. 그러자  2 만에 달력에 5번의 옅은 파란색의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떠오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뭐가 이유인지 모르겠다.


2달 전만에 해도 반팔을 입고 다녔는데 갑작스레 변덕스러운 온도와 줄어든 햇빛 때문인지, 추운 계절에 취약한 몸과 마음이라 그런지, 좋아하는 산책을 즐기기 못해서 그런지, 2021년이 끝나가서 그런지, 내 불안을 자극하는 누군가를 만나서 그런지, 오랫동안 지우지 못한 이메일을 열어봐서 그런지, 훅-빠져버린 드라마 때문인지, 남은 기운을 다른 이에게 다 퍼줘서 그런지. 아마도 이 모든 게 크고 작게 내게 영향을 주었겠지.


그런데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낀 우울과 불안, 공허와 외로움이 이전과는 달랐기에. 과거엔 그 감정에 온 몸이 빠져 허우적거렸다면 이제는 찰랑찰랑 발을 담그고 있는 기분이라서 말이다. 이 정도 감정은 다들 느끼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그럼에도 집에서 혼자 일하는 조직 밖 노동자라서 전보다 가볍게 느껴지는 이 감정도 깨고 나오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먼저, 익숙하고 익숙한 집이라는 업무공간 때문이다. 친동생과 사는 이 집에서 동생이 출근하고 나면 대체로 혼자 있다.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주로 직접 만들어먹는다. 요리를 좋아하지만 뭘 먹을지, 그걸 만들 재료는 있는지, 만들 힘은 있는 체크가 필요하다. 냉장고 문을 열고 단번에 먹고 싶은 게 떠오르면 좋지만, 대체로 지루한 식재료와 손쉬운 조리법으로 어제와 비슷한 식사를 한다. 자주 해 먹는 건 두부부침, 떡볶이, 김치볶음밥, 토스트 같은 것이다. 이어 설거지하는 사람도 나다. 자주 귀찮아서 미뤄둔 집안일은 누구도 해주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느 날 아침에는 미뤄둔 설거지를 하려다가 동생이 홀랑 자기 꺼만 설거지를 하고 가서 혼자 기분이 상해버렸다. 그게 우리 집의 규칙이긴 한데, 내가 해준 것이 더 생각나고 같이 산다 뿐이지 서로를 챙긴다는 감각이 없는 동생이 미워졌다. 사적인 공간이면서 업무 공간이 되는 집에서는 온갖 감정이 뒤엉키기 좋은 환경이다. 이를 벗어나기엔 환기가 필요한데, 배만 채우는 거 같은 배달음식도 싫고 집중해야 하는 일이면 통제할 수 없는 카페 소음도 거슬린다. 내가 좋아하는 환경을 찾아가려면 이동시간은 필수요. 예상치 못한 소비가 생겨난다. 어째 악순환인가.


다음으로 사람을 만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외주 프로젝트로 미팅도 하고, 강의나 워크샵 운영으로 사람들을 만나지만 거의 온라인이거나 일주일의 한두 번 정도이다. 그 외 시간은 온전히 내 자유와 책임 아래 착실히 굴려야 한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사람이 필요할 때는 분명 있다. 소소하게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나누고 털어버리거나 공감을 받을 수도 있고, 결이 맞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 새로운 힘이 될 수도 있겠다. 이 때문에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모임도 직접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럼에도 역부족인 거 같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친한 친구들은 주로 직장을 다니는지라 그들의 시간과 내 시간이 맞지 않을 때가 많다.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연락하는 게 신경 쓰여서 아무 말도 보내지 않거나 불쑥 놀고 싶은데 친구는 그럴 수가 없으니 또 연락을 삼킨다. 지금의 나의 에너지 레벨이 괜찮을지 염려되고, 기대처럼 다정하게 신경 써주지 않을까 봐 상처 받기 싫어서 그만두기도 한다. 뭐든 같이 공유하는 사람이어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텐데,  혼자 지내는 사람이라 어떤 관계든 본격적으로 각 잡고 이야기를 전해야 온전히 지금 내 상태가 이해될 것만 같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다들 그러려나.



그리고 전반적으로 줄어 불안한 수입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조직 밖 노동자로 지내며 더 잘 버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평균 수익을 생각해보면 직장을 다닐 때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그에 따라 한 달에 쓸 생활비도 절반은 줄였다. 월세를 내는 환경이 아니고 무언가 사는 걸로 만족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가능했지만, 낮은 수준으로 예측할 수 없는 수익은 내가 결정하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당장 카페에 나가서 일을 해볼까 해도 그게 아깝다. 새로운 목표로 내 몸과 친해지는 걸 결심하고는 요가원을 등록하고 싶었지만, 매달 빠져나갈 비용을 생각하니 선뜻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웬만하면 돈이 덜 나가는 쪽으로 선택하려고 하니 욕구가 이리저리, 조금씩 눌리는 기분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번 달도 다음 달도 무사히 넘길 수 있는 환경이지만, 그렇다고 만족스럽게 저축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기분 좋게 누리고 사는 것도 아니다. 필수적이고 필요한 것만을 취하며 원하는 일 말고는 다른 건 은근히 뭉개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이 길이, 이 환경이, 이 속도가 괜찮아서 바꾸고 싶지는 않은데 찰랑거리며 조금씩 올라오고 있는 감정은 바꿔보고 싶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눈을 떠 3시간 지나도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명상 앱을 틀었다. 내가 선택한 건 '무기력할 때 마음 보기'. 음성으로 들려오는 가이드를 따라 감정을 읽고, 몸을 바라봤다.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텅 비워진 감각을 느꼈다. 고스란히 그 감각을 따라가다가 "괜찮아"라는 말을 들었다.


실망해도 괜찮아. 낙담해도 괜찮아. 외로움도 괜찮아.


그렇지. 그래도 괜찮은 것인데 우울, 불안, 공허함,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싫다고 빨리 벗어나려고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일어날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괜찮다"는 어쩜 마법 같은 말이 아닌가.


그래서 이곳에도 적어본다. 갑자기, 불현듯, 불쑥 외로워도 괜찮다고. 비워진 건 비워진 대로 두어도 된다고 그러다 보면 언제 공허했나 싶게 된다는 걸 기억하려고 한다.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이 다 괜찮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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