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축제 여행 World Festival #45
진주남강유등축제의 시작은 임진왜란 진주대첩에서 시작된다
1592년 10월 진주를 쳐들어 온 2만 왜구에 맞서 3,800명의 김시민 장군의 수성군은 6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버렸다. 이 과정에서 김시민 장군의 수성군은 진주성 외곽의 지원군에게 보내는 군사신호로 풍등을 띄우고 칠흑 같은 어둠을 틈타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저지하기 위해서 강에 등을 띄우는 군사전술신호로 유등을 활용했다. 그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1593년 6월 결국 진주성은 10만명에 이르는 왜군에 의해 결국 함락되고 말았다.
이 때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논개가 진주촉석루에서 벌어진 연회에서 왜구의 장수를 안고 의암바위로 투신한 ‘계사순의(癸巳殉義)’한 사건이 벌어진 때이다. 이 진주성 전쟁으로 인해 7만명의 병사와 민간이 희생당했고 이들의 순국을 기리기 위해 남강에 유등을 띄워 보냈다.이렇게 만들어진 남강 유등띄우기는 1949년 부터 개최되었던 개천예술제의 특별행사로 운영되다가 2000년 10월 ‘진주남강국제등축제’란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나, 2002년 지금의 ‘진주남강유등축제’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축제 첫날밤 ‘초혼점등식’을 시작으로 30여개 이상의 축제 다양한 행사가 시작되는데
이중 남강에 띄우는 ‘대형 수상등’을 중심으로 ‘한국의 풍속등’, ‘진주성 전투 재현등’, 진주의 근현대사를 담은 ‘100년의 추억등’ 전시 등 크고 작은 다양한 등이 진주성과 진주강을 배경으로
아름다움 유등이 설치된다. 또한 축제에 참여한 관람객들은 약 20cm 크기의 작은 소망등을 직접 띄울 수 있는 행사에 참여 할 수 있는데, 이에 사용되는 등에 개수가 3만개에 이른다
2000년에 첫발을 내딛은 진주남강유등축제는 그 짧은 역사에 비하여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는데
2002년 문화관광부 특성화사업 선정을 시작으로
2003년 문화관광부 문화관광축제 예비축제 선정
2004년 문화관광부 문화관광축제 육성축제 선정
2005년 문화관광부 문화관광축제 우수축제 선정
2006년~2010년 문화관광부 문화관광축제 최우수축제
대한민국 축제 최고의 영예인 2011년~2013년 문화관광부 지정 대한민국 명예대표축제로 선정되었다.
그러던 2015년 축제의 유료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시민의 공공재로 여기던 축제가 경제적, 상업적 측면에 치우쳤다는 지적과, 축제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미룰 수 없는 선택이란 공감의견이 부딪히면서
한때 축제판의 큰 설왕설래를 야기하기도 했다. 그 후 유료화 3년이 지난 2018년 결국 축제의 무료화로 정책을 선회하였고 2019년 까지 축제가 개최하다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취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