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작가의 SF작품, <천 개의 파랑>
안락사당할 위기에 처한 경주마 ‘투데이’, 하반신이 부서진 채로 폐기를 앞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는 소녀 ‘은혜’, 아득한 미래 앞에서 방황하는 ‘연재’, 동반자를 잃고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끝없는 애도를 반복하는 ‘보경’, 『천 개의 파랑』은 이렇듯 상처 입고 약한 이들의 서사를,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따뜻한 파랑波浪처럼 아우른다
- 네이버 천 개의 파랑 책 소개란 中
작은 물결과 큰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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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콜리를 시작하여 투데이 은혜 연재 보경. 많은 이들이 나오고 많은 이들의 속 이야기가 조금씩 나온다. 한 사람의 화자가 아닌 여러 사람 모두가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다. 털어놓는 데에는 보통 사람과 사람이 아닌 사람과 기계, 사람과 동물 간에서 나온다. 오히려 사람 간에는 소통이 잦지 않으며 숨기는 것이 더 많은 쪽에 속한다.
책 소개란에 이들의 상처 입은 서사를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따뜻한 '파랑'처럼 아우른다고 한다. 잔잔한 물결이 마음을 울려 틈을 만들고 큰 물결이 마음을 울려 위로한다. 그들은 서로를 그렇게 위로하며 살 수 있게 됐다.
인간의 실수로 잘못된 칩이 인식되어 생각할 줄 아는 휴머노이드가 된 콜리가 처음, 자신의 친구 투데이를 위해 낙마를 하고 그다음도 투데이를 위해 낙마하며 반파에서 살아나 완전히 파괴가되었다. 놀라운 점은 콜리가 본인의 단점, 그러니까 연재가 콜리를 고칠 때의 스스로와 타협하며 기수에 어울리는 육체가 아닌 그저 움직이는 육체로만 만들어 줬다는 것.
콜리는 알았음에도 고삐를 놓았다. 그 희생은 투데이 뿐만 아닌 다른 말들의 처우를 개선해 줬지만 나는 생각한다.
이 소설에선 말인 투데이의 시점은 나와있지 않아 있다 그저 신나게 뛰는 말, 그러다 파트너를 잃었다가 빨리 달릴 것을 종용당해 무릎 연골이 다 닳아버린 안타까운 말. 그리고 가장 느리게 트랙을 걸은 말이라는 것.
투데이는 말이다. 말이 똑똑한 종이라고는 하나 휴머노이드와 인간을 구분할 수 있을까? 특히나 그 중에서도 특별한 휴머노이드인 콜리는 투데이를 진심으로 아꼈다. 반파된 몸으로 삐걱거리는 몸으로 투데이의 소식을 듣자마자 어떻게 할지 궁리하고 '행복'이라는 답을 도출해 낼 정도로 그를 아낀다. 과연 파트너가 두 번이나 반 파당한 투데이의 마음은 어땠을지 가끔 생각한다. 소중한 이를 잃었다는 마음일까 아니면 망가졌다는 마음일까. 말은 구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화자로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종종 나는 투데이가 궁금하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초원에서 콜리의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싶다.
내가 내용 중에 가장 슬펐던 건 보영의 삶이었다. 잘나가는 배우가 될 수 있었지만 화재사고 덕에 피부가 망가져 버렸고, 어찌보면 그 덕에 자신을 구해준 소방관을 만나 결혼을 했으나 불길에 소방관을 잃고. 소아마비인 첫째 딸 은혜와 능력이 있지만 지원해 줄 사정이 없는 둘째 딸 연재를 데리고 있는 '엄마' 소방관의 사망보험금으로 소아마비인 첫째딸의 다리를 치료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그녀 뿐만이 아닌 딸들을 데리고 먹고 살아야했기에 식당을 차렸다. 기계적으로 일을 했다고 했다. 아침일찍 일어나 시작하고 저녁늦게 새벽이 다 되어서야 들어오는 삶을 반복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우였던 본인을 애들에게도 숨겼다. 로봇을 쓰면 조금 힘이 덜 들 수 있지만 로봇에 대한 미묘한 거리감덕에 그녀는 혼자서, 그리고 주말만 도와주시는 아주머니와 함께 일을 했다.
흔히들 말하는 부모의 희생. 그것을 보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닳아가면서 반복했다. 쉼이란 것을 모르고 계속 달려왔다. 늘 달려왔던 삶을 살아왔지만 소방관의 느린 걸음을 답답해 하기도 했지만 어느새 자신이 소방관의 걸음을 그리워하고 본인을 그리워 한다는걸 알아냈을 때 난 너무나 슬퍼졌다. 이별은 슬프다. 특히나 다시 만날 수도 없는 '죽음'은 더더욱 슬프다 그게 참혹한 모습이면 모습일 수록 더더욱 그럴 것이다. 소방관은 피부에 소방복이 다 들러붙어가면서 죽었다. 그것은 세상이 사람에게 보호복을 주는 것 보다 휴머노이드 하나를 더 고용하는게 낫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과였다. 일차원적으로 보면 보영의 증오대상은 로봇이 맞다. '소방관에게 갈 돈을 빼앗을 존재니까' 그러나 좀 더 깊게 생각하자면 그것을 결론지은건 인간이다 어째서 보영은 인간을 미워하지는 못했을까? 그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녀가 인간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막연히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연재와 은혜가 있기에 버텨내고 자신이 달리던 속도에 맞춰 달려가며 일을 했다. 난 아마 이 희생을 보고 나의 엄마가 생각나 조금 더 보영을 안쓰러워 하는 것 일수도 있다. 가족을 위한 희생은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모두가 미안하게 생각한다.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해줄 수 있는 말은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 뿐이다. 그것을 혼자 버텨낸 것 마저 나는 내 가정을 투영하게 된다. 보영이 고쳐지는 투데이와 어색하게 시작한 대화가 보영이 웃기시작하는 대화를 하는 것 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흐른건지 나는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보영은 내가 보기에 확실히 '친구'를 간만에 얻은 사람 같았다. 손뼉을 하나로 치면 소리가 나겠는가 두개로 쳐야 소리가난다. 대화가 그렇다. 그리고 보영은 콜리가 기계이기에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아니니까. 조금 더 깊이, 하지만 인간과 같은 사고를 하는 콜리를 친구로 대한다. 그러면서 그녀의 파랑은 점점 넓어져 결국엔 보영이 아파 쓰러지고 가게를 아이들이 돌보면서 터지지는 않았을까 생각된다. 의지해도 되는 존재가 없다고 생각한 그녀에게는 사실 의지할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을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 만으로 나는 벅차다.
우은혜는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못써 휠체어를 탄다 했었다. 휴머노이드가 발달한 세계인만큼 의족또한 발전된 세계이다. 하지만 필요한 것은 있다 '돈' 이 세계는 너무나 발전한 나머지 안경을 쓰는 사람도 없다고했다. 눈이 안좋으면 기계를 사용하면 된다 라섹이나 라식의 종류겠지만 어릴적부터도 '가능'하다는게 가장 큰 이점이자 단점이었다. 그들의 눈에 휠체어를 탄 은혜는 이질적이고 이상한 존재였다. 왜 기계를 쓰지 않는지 '정상적인'형상이 아닌 앉아있는지 그들은 모를테고 알고싶지도 않을터였다. 그런 은혜가 알게된 친구는 안경을 쓰고 다니는 이로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한다 친구의 이사. 그것도 같은 나라가 아닌 외국으로의 이사. 잘가, 편지할게 인사를 나눴던 둘이었지만 은혜가 알게된 것은 사실 그 친구는 눈을 고치기위해 이사를 간 것이었단 사실이었다. 친구도 '정상적인'사람이 된 것이다. 은혜가 느꼈을 배신감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 패배감은 아니다 속상함도 아니다 아마 분함이 아니었을까? 자신만을 '비정상적인'세상에 두고 아무말 없이 가버린 친구에 대한 분노. 아마 그것이 은혜의 감정은 아니었나 싶다. 다리가 아픈 가족이 있다는 건 그를 지키는 가족이 있다는 소리었다. 어쩔 수 없는 대상이 연재였다. 우은혜, 우연재 둘은 친하지는 않은 자매였지만 늘 같이있었다. 그리고 은혜는 그것이 엄마가 연재에게 은혜를 '부탁'한 것임을 알았다. 주말에 집에 은혜가 있으면 연재가 돌보아야했다 그걸 안 은혜는 주말마다 나가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있는 경마장에가서 말을 보고는 했다. 내가 아는 경마장은 넓고, 넓고 넓었다. 아주 어릴 때 갔던 것이라 그 곳이 배팅을 하는 경마장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족들이 많았고 볼에 페이스페이팅을 해주는 알바생도 있었으며 풍선도 있었고 비눗방울도 때때로 날아다녔다. 테마파크와도 같은 곳 이었다. 만약 은혜가 나랑 같은 곳을 봤다면 과연 무슨 심정이었을까? 아마 같은 곳이 아닌 불법이나 그저 배팅만하는 경마장일 가능성이 크지만 생각하게 된다. 만약 그런곳을 휠체어를 타고 가로질러가는 은혜의 심정은 어떠할까. 마장까지 가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생각에 은혜는 다른 것을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말, 예를들어 '투데이'를 보러 갔을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자신의 말을 들어줄 수 있고 애정을 내어줄 수도 있는 존재가 은혜에게는 유일한 안식처 였을테니까. 그런 은혜에게 투데이와 콜리는 의지있게 나설만큼 흥미롭거나 즐거운 요소였을거라 생각된다.
우연재, 이 세계관에서는 흔히 말하는 천재로 나온다 내가 보기엔 가난한 토니 스타크가 아닌가 싶다. 재료를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기회를 잡아(지수의 반협박이지만) 단가를 적절히 낮춰 보정한 재료를 지수에게 부탁하여 얻어내 콜리의 반파된 전신을 고쳐냈다. 비록 조금 소리가 나고 삐걱거리지만 학교를 그만둔 연재가 하기엔 무리인 일을 해낸다. 이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는게 가장 아쉬운 점이지만 더 안타까운 점은 그녀가 소아마비가 있는 언니를 둔 둘째라는 점이다. 콜리를 처음 데리고 왔을 때 연재는 알바를 하고 번 80만원을 그대로 주고 데려왔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막지못한 이유는 연재가 지금까지 모든걸 포기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은혜는 보영에게도 마사의 사람에게도 '연재는 한 번도 바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 애가 처음으로 바란것이 바로 콜리였다. 그래서 받아들여졌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는 삶 이것은 보영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주말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은혜의 밥을 챙긴다거나 혹은 잘 지내는지 지켜봐야했고 가난했기 때문에 바라는 것을 얻지못해 포기하고 포기하다보니 이미 연재의 무언가는 닳아 없어진 것일 수도 있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것 치고 연재는 콜리를 다룰 때 굉장히 즐거웠다. 콜리가 그것을 증명한다 기분좋게 뛰는 심장과 얼굴근육에서 콜리는 그녀가 즐거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출해낸다. 연재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혹시 연재는 누군가를 살려내는데에 충족감을 얻어내는건 아닐까 싶다. 지수와의 합작(개발대회)에서 조금 더 개량된 휠체어를 개발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휠체어'로 수상을받아 5년간 연구끝에 은혜에게 주어진다. 은혜가 바라는건 다리가 아니었다 이 비정상적인 세상에서 '비정상적인'취급을 받는 자신이 휠체어를 타고 어디든지 갈 수 있기를 원했다. 연재는 은혜에게 그 꿈을 선물했다. 연재와 은혜. 내용이 더 나오지는 않았지만 연재는 은혜의 생각 이상보다 은혜를 잘 알고 바라는 것 또한 알았을지도 모른다. 이건 선천적인 유대감일까 그저 '감'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에서 가장 주로 화자가 되는 인물은 콜리이다. 일명 브로콜리. 연재가 별 생각없이 그 날 나온 반찬이름으로 지었다는 것 같은데 보면서 브로콜리보단 보더콜리가 더 멋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다. 콜리의 삶은 짧고 기계적이며 인간적이기도하다. 이 소설에서 가장 '행복'을 찾던 이는 콜리였지만 작은 사각상자에서 쭈그려앉아 삶을 보내며 말을 탈 때만 꺼내어지고 간혹 명령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이행하는 행동들을 보면 기계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콜리는 반파된 몸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이 모습은 마치 방에 갇혀있던 어린아이가 밖으로나와 하늘을 보며 하는 행동과도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천 개의 단어를 알고 세상에 나온 콜리는 마치 아이같은 호기심을 가진 휴머노이드이다. 천 개의 단어. 과연 그것이 많은 것 일까? 말을 표현하기엔 한 없이 적고 작고 한계가 있다. 그러나 콜리는 계속해서 말하고 표현한다. 그리고 최고의 단어조차 말했다 '행복' 콜리는 투데이가 행복한 때를 아주 잘 알고있었고 투데이를 다시 살리는 방법은 그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로봇이 도출해낸 방법이 과연 정말로 정답이었을지는 모른다. 애초에 무모한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 무모한 방법을 더 무모한 방법으로 무마시켜 제대로 걷지 못하는 말 투데이를 마사에서 꺼내 경주장으로 올려놨다. 이야기 시작에서 인간의 실수로 인해 기수가아닌 기수 휴머노이드가 된 콜리와 마찬가지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우연한 기적이 기적을 불러와 투데이를 살리고 그 외의 말 또한 살렸다. 콜리는 가장 희생적이며 가장 사랑 '할 수 있는'로봇이었다. 그렇기에 아쉬웠다. 조금 더 세상을 배웠으면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을텐데 콜리는 자신의 미래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로봇이기 때문에.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꼼꼼히 읽는건 재밌는 것이라는 걸 알게됐다. 천 개의 단어, 그리고 파랑(波浪) 이 파랑은 하늘의 파랑일 수도 있고 희망과 기적의 파랑 일 수도 있으며 말 그대로 작거나 큰 물결 일 수 있다.
사람은 감정적인 상처를 받고있었으며 감정이없는 로봇은 물리적인 상처를 입고 쓰러져있었으나 서로의 도움으로 서로의 이야기로써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이 소설은 단순 SF소설로만 보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하는 제가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며 중간 중간 쓴 감상글 입니다.
저와 같은 생각이 들으셨을까요, 혹은 다른 생각이 들으셨을까요? 그 내용을 나누고싶습니다.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간 휴머노이드 그리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조차 사고로 잃어버린 여성. 그리고 그 여성의 두 딸.
둘째는 휴머노이드 일명 '콜리'를 80만원을 주고 사 왔다 다 망가져버린, 다른 용도도 아니고 말을 타는 기수 용도의 로봇이 반파가 되어버렸는데에도 그를 사 온 데에는 하늘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한 콜링이 영향이 크다. 인간과 로봇. 둘의 차이는 감정일 걸이다 그러나 만약 감정을 알게 된 로봇이 있다면 그건 단순한 흉내일까 진심일까
보영은 로봇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어머니로 인해 삶이 불안정해졌고 사고로 인해 꿈을 잃고 로봇에 쏠린 예산 덕에 안전한 장비를 차지 못한 소방관인 남편을 잃었다. 남편의 방호복은 살에 다 달라붙어 떼어낼 수 없었다 그랬다. 로봇은 그녀의 삶의 해였다. 그런 그녀가 로봇을 과연 받아드릴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받았다. 용기의 한 발자국이었다.
늘 포기하고 살아온 둘째 딸이 처음으로 욕심을 낸 것이었기에 그냥 넘어갔다. 어찌 보면 보영의 화는 억울할 만큼이나 잘못된 대상을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로봇을 도입한 건 인간이고 예산을 책정한 건 인간이다 사실 보영의 원망은 인간을 향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째 난 다른 이들보다 보영의 시점에 집중하게 된다 아직까지 그녀의 서사는 길지 않다 그렇지만 힘들게 살아온 그 삶이 무언가 익숙하기도 혹은 내가 상상한 내 미래의 삶의 절망 편이라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 천 개의 파랑 126P까지 읽으며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수의사 복희와 은혜 연재의 친척인 기자. 둘의 공통점은 모두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 아마 둘의 로맨스 혹은 썸씽이 보일 수 있으나 거기까지엔 관심이 없다. 기자는 말한다 말을 만약 밖에 풀어준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미 세상은 동물을 인간이 없으면 안 되도록 만들어놨어요 다시 처음부터 프로그래밍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난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개들이 생각났다 개, 고양이들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예쁜 종끼리 교배당하고 어딘가 유전병이 생긴 채 태어나 인간의 케어를 받고 살아간다
그들이 야생에 나간다면 살 수 있을까? 처음부터 들개로 살아왔다면 모른다 하지만 만약 집에서 키우던 개를 인간이 이기심으로 '잘 살아가야 한다'라며 개를 밖에 풀어준다. 그럼 그 개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다 사냥을 할 줄 모르고 인간을 사랑하던 개는 거리를 떠돌다 인간의 동정으로 밥을 빌어먹거나 사고를 당해죽는다 운이 좋아 구조당할 수는 있지만 그것 또한 인간이다.
천 개의 파랑 159P까지 읽으며
콜리의 풀 네임은 '브로콜리'이다 그저 반찬으로 브로콜리가 나왔고 한국 이름보다 멋있어서 지어진 이름. 연재는 휴머노이드 회사의 높은 사람을 아버지로 두고 있는 지수 덕에 콜리의 다리를 고쳤고 콜리는 2층과 1층을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보영과도 대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슬그머니 낀 가족이 된 것이다. 투데이, 콜리가 기수 로봇으로 활동하던 시절 함께했던 명마다. 콜리가 온몸으로 '기쁨''즐거움'이 뭔지 알게 해준 그 말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연골이 닳아 마사에서 나갈 위기에 처했고
콜리는 그 누구보다 투데이를 고쳐주고 싶어 했고 자신이 방법을 안다고 했다. '다시 행복하게 만들어주면 돼요.' 투데이의 행복은 힘차게 달려나가는 것이었으나 경마장의 사람들은 더 빨리, 조금 더 빨리, 채찍을 써서라도 빨리 가는 걸 원했고 결국 투데이는 인간 덕에 쓰러졌으며 콜리 또한 투데이를 지키려다 스스로 낙마해서 반파가 됐었다. '행복' 우리는 모두 행복을 바란다. 이 소설에서 이때까지 행복에 대해 말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로봇은 있다.
행복이란 가깝고도 멀다고 우리는 말한다. 소소하게 좀 있다 먹을 내 저녁밥이 내 행복일 수도 있고 지금 하고 있는 SNS가 내 행복일 수도 있다. 혹시 당신들은 입으로 '행복하다'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는가? 나는 의식해서 몇 번 말해본 적이 있다. 조금, 더, 행복해졌다. 그 후에는 조금 더 대담해졌다. 사랑한다는 말을 사용하고 행복하다는 말을 쓰고 더 나아가서는 그다음엔 '너무' '많이'와 같은 말까지 붙여 사용했다. 다를 게 없다고 느껴진다면 착각이다. 많은 것이 달라진다.
천 개의 파랑 234P까지 읽으며
콜리의 시간은 멈췄다 로봇이지만 로봇이 아니었던 따뜻한 로봇은 산산이 부서져나갔다. 로봇은 결국 한 생명을, 이어서 여러 생명을 살리고 부서져갔다. 세상을 처음 마주쳤을 때 알고 있던 천 개의 단어 그것보다 더 커다랗고 무거운 사람들의 인생 그리고 마지막을 수놓은 파랗고 눈부신 하늘 콜리의 한생이었다.
천 개의 파랑 358P까지 읽으며
천 개의 파랑은 SF소설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로봇을 만들고
인간의 이기심이 로봇을 부수고
인간의 동정심이 로봇을 살리고
살아남은 로봇이 인간을 위로하고
살아남은 로봇이 동물을 위로한다
인간과 로봇, 둘의 차이를 생각하게도되고 감정이란 것에 대하여 고민하게된다 콜리는 감정을 배우고 다른 이의 행복에 반응해 본인도 행복함을 느낀다 와중에 로봇답게 파란감정은 차단시켜버린다. 인간인 연재 보영 은혜는 모녀사이지만 서로 감정을 주고받지도 사정을 주고받지도 않았다 그런 인간들이 서로를 위로할 계기를 만든건 콜리였다.
천 개의 파랑을 갓 다 읽은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