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자왕 Oct 11. 2017

이해하려고 하면 안되는 것들

어떤 회사를 다닐 때의 일이다.

대표이사를 거쳐서 C레벨을 거쳐서 본부장을 거쳐서 팀장을 거쳐서 나의 사수를 거쳐서 나에게 내려오는 업무지시사항은 산토끼가 호랑이가 되어 있는 것 마냥 왜곡과 와전이 가득한 내용이었다. 한 회사의 대표라는 사람이 정말 이런 일을 시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상황들 투성이.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을 때 회사의 대표이사와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생겼었고,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며 내가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허심탄회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옳은 대답은 아니었지만 솔직한 대답이었고, 내가 그 상황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충분한 대답이었다.


아직 어리고 어리숙하던 시절에는 모든 상황들을 이해하려는 습성이 있었다. 이해되지 않은 일은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고 합리적이지 않은 일은 왜 해야하는지 그 일로 얻으려는게 뭔지 적어도 내가 그 일을 함으로서 회사가 손해를 보는 상황은 아닌지 정도는 확인을 해야 업무에 착수할 수가 있었다.


어린 연차 답지 않게 큰 그림을 본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이런 성향때문에 이유 없이 외우는 과목 공부는 잘 못했다. 회사에서는 나름 긍정적인 성향이었으나 삶을 되돌아 보면 시야가 매우 좁았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의 사람들을 10가지 정도의 카테고리로 나눠보자면, 나는 2~3개의 카테고리의 사람들하고만 어울릴 수 있었고 그 외에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많은 불편함을 느꼈다. 회사 사람들이 보면 의외라고 할 수도 있는데 (보살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이해의 폭이 넒으나 그 이해의 폭을 벗어나면 용납하지 않음. 정도로 정의 내릴 수 있겠다.


약 2년 전부터 나의 삶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느님을 잘 몰랐던 나에서 하느님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나로 바뀌었고 삶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내 모든 것을 쏟고 싶은 회사를 만났고, 결혼할 배우자를 만났고,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겪게 되는 한가지 공통적인 상황들이 있었는데, 예전과는 달리 '돌아갈 길'이 없다는 점이었다. 싫으면 그만두면 되지 뭐. 라는 공식이 없어진 회사, 가정, 종교가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취했던 행동패턴은 모든 상황들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것이었다. 회사는 다행히 작은 조직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어찌되었든 일을 하면 할수록 회사는 좋아지는 공식들이 계속 적용되었다. 물론 회사 생활에서 힘든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2년동안 계단식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끔은 내리막길이거나 평지일 때면 '예전에도 이랬는데, 결국 잘 되었어' 라는 경험 덕분에 잘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가정은 상황이 달랐다. 가정에서 나는 팀장도 아니었고 아내라는 역할은 난생 처음인 터라 매번 넘어지면서 배우는 수 밖에 없었다. 끝 없는 '다름'에 부딪치곤 하는데 처음에는 '왜? 도대체 왜?' 라는 의문만 가득하고 대화로 이해해보려 해봤지만 6개월만에 내가 알게된 건 이해하려고 하면 안되는 것들이 있구나. 라는 것이다.


31년만에 모든 상황을 이해해야 움직이는 나에서, 이해되지 않아도 움직일 수 있는 내가 된 것이다.


내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데는 신기한 성공경험이 있었다. 하루는 명절에 크게 싸운 후에 성묘를 가게 된 적이 있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총 3개의 선산을 방문했는데, 당연히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10분 남짓 등산코스를 임산부인 내가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뭐랄까. 약간만 이해가 안되면 이해해보려 하겠는데,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이해의 난이도에 약간 정신을 놓게 되더라. 허허허. 허허허. 허허허. 하면서 선산을 올랐고 내려오면서도 허허허. 거렸다. 


결론은 허허허. 하면서 아 그냥 포기하면 이렇게 편하구나. 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느낀거다. 허허허허허.


'그게 뭐야'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신기한 성공경험(?)이었다. 아직까지 그때 느꼈던 감정보다는 낮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간다. 일찍이 이 것을 알았더라면 조금 인생을 덜 피곤하게 살았을텐데 하는 생각으로 회사에 돌아왔다. 아이의 엄마가 되면 예수님이 된다고 하더라. 처음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줘야하는 존재가 생겨나고, 내가 사랑을 주었지만 1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더라. 


결혼을 하고 늙어가면서, 아이를 키워가면서 이제는 내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더욱 생겨날테고 그때마다 어리고 어리숙했던 습관으로 잘근잘근 이해를 해보려고 하면 결국 나만 힘든 것이다. 허허허. 거리면서 남편에게 투덜거려 보기도 하고, 조카 사진 보면서 솜사탕같은 기분도 느껴보면서 어제 오늘 일은 잊고 희망찬 내일을 그려볼 것을 생각하며, 태교음악을 들어본다.


앞으로 더 많이 생길 성장과 묵상의 기회를 기대하며, 오늘은 충분하니 일단 쉬어야 겠다.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오 복음 6장 34절) 아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