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화음과 같아서 그런 게 아닐까
오케스트라 연주곡을 좋아한다. 목관 악기, 금관 악기, 타악기, 현악기가 한데 모여 연주하는 웅장한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2000년대엔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반주로 넣은 가요가 유행했었다. SKY <영원>, 정형돈 정재형 <순정마초> 등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 편의 오페라를 보는 듯한 웅장한 반주에 '내 마음이 동요되는지'가 좋아하는 곡을 고르는 기준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Rock' 음악에 잠시 빠졌는데, EVE <아가페>, TRAX <Scorpio> 등 다양한 악기들의 사운드가 가득 찬 곡들이 대부분이다. 음악 장르는 다르지만, 좋아하는 곡을 고르는 취향은 확실했다.
20대부터는 대중음악에서 잠깐 일탈해 클래식에 심취했다. 스물두 살 1월. 처음 '빈소년합창단' 공연을 보러 갔었고, 매년 1월은 합창단 공연으로 시작했다. '브루크너',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네 개의 팀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었는데, 매년 공연은 나에게 다르게 다가왔다. 취업 준비로 힘들었던 20대 후반, 1층 첫 줄에서 홀로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지금껏 '천상의 목소리'로 유명한 아이들의 순수하고 고운 음색을 느끼는 것이 공연에 가는 목적이었기에 맨 뒷자리에 앉아서 손톱만큼 보이는 아이들의 얼굴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은 음악보다도 실감 나는 아이들의 표정이 들리고 자연스러움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입모양을 보면 어떤 아이가 고음을 내는지 알 수 있었고, 반주가 흘러나올 때엔 아이들의 비장한 표정도 보았다. 어떤 아이는 머리를 긁적거렸고 가끔은 기침소리도 들렸으며, 안경을 쓰윽-올리다가 지겨움에 몸을 비틀기도 했다. 고독한 나만의 싸움을 하는 시기여서 그런지, 그 엉성함에서 느껴지는 응원이 참 따뜻했다. 이리저리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자연스러웠고 각자의 몫을 해내고 있었다. '아-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들은 각자의 역할을 하며 조화롭구나.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취업 준비는 꽤 힘들었고 100곳이 넘는 곳에 원서를 접수하고 면접을 봤다. 내가 필요한 곳이 없다고 좌절하며 밤새 운 적도 많았다. 신기하게도 버틸 수 있는 적당하게 힘든 시간 후 직장을 구했고, 여전히 매년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한 해를 돌아보고 만족스러웠던 순간과 아쉬웠던 순간을 되돌아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그 순간이 바로 매년 1월 공연을 보는 날이다. 취향이 확실한 내가 오케스트라 연주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삶이 화음과 같아서 그런 게 아닐까. 서로 주고받으며 조화롭게 한 곡을 멋지게 해낸다. 순간순간 아쉬움이 남지만 365일이 조화롭게 어울리고 여러 해가 모여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