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by JH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그냥’

하고 대답했다가


‘음.... 익숙한 주변이 비가 오는 날에는 묘하게 낯설게 느껴져 난 그게 좋아’하고 다시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듣던 상대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는 사람은 비 오는 날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더라고 말하며

주변 사람 중에서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난 친구가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지만 걸어서 30분만 떨어진 거리도 까마득하게 느껴져서 불안해하던 시절

버스 타고 1시간 이상 걸리는 동네에서 전학 온 친구가 있었다


나와는 다른 반이었던 친구가 교실 문을 열고


"오늘 나랑 같이 놀러 갈 사람!!"하고


우렁차게 말하길래

그 친구와는 대화를 해본 적도 없고 낯가림도 심했는데 무슨 용기였는지 친구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쭈뼛 쭈뼛 ....


".... 나 갈 수 있는데"

그렇게 전학 왔다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와 버스 타고 30분 이상 걸리는 동네로

놀러 갔다 온 이후로 내가 살던 동네를 벗어나 여기저기 놀러 다녔다.


하루는 버스 타고 가는 길에 한번

분식집 들러서 떡볶이 하나 사 먹을 수 있는 돈 몇 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탈 수 있는 버스비를 가지고 버스를 탔다.


몇 개의 정류장을 거쳐 버스에서 내렸고

분식집에 들러서 떡볶이를 사 먹고 나오는데 친구가 남은 돈으로 새콤달콤을 사 먹자고 했다.

이제 남은 건 돌아가는 길에 탈 수 있는 버스비 밖에 남지 않아 망설이고 있자


"가까워서 걸으면 금방 도착해"

확신에 찬 친구의 말과

내심 새콤달콤이 먹고 싶었던 마음에 버스를 타지 않고 새콤달콤을 사먹었다

하나, 둘씩 까먹던 새콤달콤을 다 먹었는데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있고 '버스 탈껄...' 후회하며 한참을 걸어 집에 도착했던 기억이 났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이 비 오는 날을 좋아하게 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왜 이 친구와의 기억이 떠올랐까

다시 한번 친구와의 기억을 떠올렸다.


"놀러 가자"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버스 타고 더 먼 거리로 놀러 간 날 물웅덩이에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황급히 주웠지만 전원이 들어오지 않아 속상한데 하늘에서 한 방울씩 내리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고

우산이 없어 퍼붓는 비를 쫄딱 맞고

고장 난 핸드폰을 들고 버스 타고 가는 길 점점 어두워지는 창문 밖 풍경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밖이 엄청 까맣네.. 엄마랑 통화를 못 했는데 혼나면 어쩌지

여기는 어딜까.. 언제쯤 도착할까?


점점 어두워지는 창문 밖 풍경과

점점 두려워지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앉아 있는데


"나는 여기서 내려, 너는 세 정거장 더 가서 내리면 돼"라고 말하며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리던 버스가 멈추고

버스에서 내리는 친구를 보며 두려움이 커진 나는 황급히 일어나 친구를 따라 내렸다.


"왜 내렸는데?"


친구의 물음을 들음과 동시에 어둠과 두려움에 빠져 보이지 않던 주변이 보였는데

익숙한 우리 동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무서워서’라고 사실대로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더 깜깜해진 거리를 친구와 함께 걷다가

가는 길이 달라 친구와 헤어지고 났더니

잊고 있던 감정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엄청 늦은 것 같은데 엄마한테 많이 혼나겠지..'

혼나는 게 두려웠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눈앞에 보이는 공중전화로 들어가 전화번호를 눌렀다


‘많이 화났을 거야’

불안해하며 기다리는 동안 신호음이 멈추고

전화기 너머로 걱정 가득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두려움이 안도감으로 바뀌었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또 다른 친구가 생각났다


같은 반이었지만 그다지 친하지 않은 친구가 놀이공원에 같이 갈 사람을 찾았을 때

탈 수 있는 놀이 기구는 회전목마밖에 없었지만 ‘나!!’라고 대답했다.


원래 가기로 했던 한 명이 가지 못하게 돼서 대신 가게 된 날

롤러코스터를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는데 그런 내 모습이 뭐가 웃겼던 건지

나를 보면서 까르르 웃는 친구를 보고 긴장감이 풀렸고

눈을 꼭 감고 소리를 지르며 놀이 기구를 탔던 날을 시작으로 친구와 가까워졌다.


가까워진 우리는 학교 마치고 매일 같이 놀았는데

하루는 비바람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태풍이 오던 중이었나?

태풍이 왔었나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엄청나게 퍼붓는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어져서

우산을 접고 퍼붓는 비바람을 뚫고 집으로 가는 동안 까르르까르르 멈추지 않고 웃으면서 갔던 기억이 있다.


쓰다 보니깐

이 친구와의 기억은 비 오는 날의 기억이 아니라 태풍 오던 날의 기억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그날의 기억까지 다 꺼냈더니 이런 의문이 든다.


나는 지금도 비 오는 날을 좋아할까?

좋아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의 촉촉하게 내리는 비가 지금도 내리고 있기 때문일까

그때의 추억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까


들었던 생각을 끄적여 보면


지금도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그때의 추억이 촉촉이 비가 오는 날 생각나기 때문이다


덧붙여 말하면

특별히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한다기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좋다


그저 그런,

늘 똑같아 보이는 하루를 보내며


때로는 무료함에

가끔은 울적함에 빠질 때가 많지만


나에게 주어진


그저 그런 하루를

그저 그렇게 보내다가


문득 둘러본 주변이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우중 충충하면 우중 충충한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화창하게 맑으면 맑은 대로


나에게 주어진


그 순간이,

그 하루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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