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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비 글라스 Jul 01. 2020

한여름 밤의 층간 소음

일상 속 감상

여름이 오자 열대야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졌다. 예전에는 여름이 좋았을 때가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수박, 참외 등 여름과일이 맛있었고, 여름에 해변이나 산에 놀러 가는 일이 많아서 재미있었던 기억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여름이 시작되자 몸이 축 늘어지고, 모든 것에 의욕을 상실한 듯이 계속 졸리고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다 밤마다 더워서 온실에 있는 듯이 몸이 뜨거워서 찜찜한 기분으로 잠들기가 힘이 들어졌다. 그러다가 이상한 꿈을 꾸다가 진땀이 난 채로 눈을 뜨곤 했다.      


며칠 전이었다. 밤 12시 반 즈음, 방에서 잠을 자기 위해 누웠다. 위층에서 헬기가 가동되는 듯한 기계음이 계속 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인지 추측할 수 없을 듯한 소리였다. 계속 듣다 보면 오토바이 시동을 거는 소리가 연속으로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 여름이니 선풍기를 틀었나 싶기도 했다. 나는 소음이 금방 사라질 줄 알고 기다려봤지만 결국 아침 7시가 넘어서까지도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예전에 자취할 때 층간소음으로 힘들었던 일들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좋게 해결하려고 노력해도 개선되지 못해서 이사를 가고 말았던 적이 있었다. 갑자기 그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불안해졌다. 이웃들끼리 서로 감정이 상하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며칠이 반복되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피로가 쌓이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아파트 경비아저씨께 말씀을 드려서 윗집 이웃이 새벽에 자는 시간만이라도 기계를 틀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기로 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아저씨가 위층에 전달을 잘해주셨는지 다음날부터 며칠 동안은 새벽에 그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어서 안심하고 잘 수 있었다. 그러다가 주말이 되자 밤 12시 반부터 또다시 알 수 없는 기계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휴…….”

한숨이 저절로 쉬어졌다. 한두 시간 안에 그칠 것이라고 나 자신을 안심시키며 자려고 누웠다.  하지만 아침 8시까지도 여전히 기계음은 멈추지 않았고, 나는 자는 둥 마는 둥 해서 눈이 퀭해지고 말았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틀 연속 겪고 나니 이렇게 반복이 되면 제대로 숙면하지 못하고 만성피로가 될 것 같았다.      

다음날 밤 12시 반이 되자 또 그 소리가 시작되었다. 새벽 1시까지 참다가 안 되겠다 싶어 경비실에 찾아갔다. 아저씨가 윗집에 말씀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도 소리가 여전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 경비실에 갔다.

아저씨는

“아까 인터폰으로 얘기했더니 그쪽에서 오히려 화를 내면서 문도 안 열어줘서 살펴보지도 못했어요. 내가 억지로 들어갈 수도 없어서 말만 하고 왔지.”

“그래요? 그럼 어떡하지…….”

“거, 기다려보세요. 같이 가봅시다. 그럼.”

하시며 위층에 인터폰을 연결해 같이 올라간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경비아저씨께 죄송한 마음으로 최대한 빨리 처리할 생각으로 급한 마음에 아저씨와 함께 종종걸음을 걸어갔다. 그때 나는 경비실에서 그 일이 끝날 줄 알았고, 그 집에 갈 줄은 예상을 못했었다. 한창 잠을 자려다가 밖에 나간 것이라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어서 더욱 민망해 맨발의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띵…동….”

초인종이 울리고 문이 열렸다. 윗집 아주머니가 부스스한 표정으로 나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윗집은 우리가 올라간다는 인터폰을 받고 갑자기 불을 껐는지 좀 전까지 내가 창밖에서 올려다봤을 때 켜져 있던 그 집의 불이 올라가 보니 컴컴하게 꺼져있었다. 그리고 선풍기도 껐는지 갑자기 소리도 멈춰져 있었다. 새벽시간이라 조명이 어두웠고, 내방 위치와 같은 방은 불이 컴컴하게 꺼진 채로 문이 열려있었다.  

“그 방에 고3 애가 12시 반에 들어와서 이제 자려고 누워있어요. 소리 나는 게 있는지 들어보세요.”

“네? 아까 12시 반부터 그 소리가 나기 시작했어요.”

나는 소음 시간과 방주인이 들어온 시간이 일치한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불 꺼진 방 앞에 서있던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방에서 불까지 꺼놓고 고3 수험생이 자고 있다고 말하니 그 방에 들어가는 것은 실례 같아서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거실에서 들어보니 별소리 없이 조용한 듯했다. 내가 쭈뼛거리자 나와 함께 거실에 있던 아주머니가 방에 있는 딸에게

“기계소리 날 게 없는데……. 얘, 기계 튼 적 있어?”

하고 물었다.

“아니……. 나 지금 자고 있어. 틀긴 뭘 틀어. 아까는 선풍기만 틀었다고.”

딸은 선풍기 빼고는 틀은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아주머니가

“저희도 위층에서 소음이 들려서 경비실에 말씀드린 적 있는데 막상 가보면 윗집이 원인이 아니더라고요. 저희도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자기들은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답답했지만 그 방에 들어가지 못하니 그 말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동안 내가 그 소음을 들었을 때 진동소리가 마치 덜덜거리는 오래된 벽걸이 선풍기가 회전하는 소리가 아닐까 속으로 추측했었다. 그래서 그 대화를 들은 나는

“제가 볼 때 선풍기 소리 아닐까 했었거든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선풍기 소리가 아래층에 들리면 이 아파트가 이상한 거 아니에요?”

하며 선풍기가 원인일 수는 없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상황을 파악해보니 소음이 발생한 시간도 방주인이 선풍기를 튼 시간과 일치하고, 나도 전부터 선풍기 소리로 추측했었고, 그 방주인도 선풍기밖에 튼 적이 없다고 대답하는 것을 종합해보면 답은 나왔다.

     

나는 속으로 선풍기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원인이라도 밝혀진 것에 조금은 안도를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동안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면서 속으로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 정체를 알게 된 것 자체로 만족하기로 했다.      


일단 누가 문제를 일으켰느냐를 떠나서 새벽시간에 불미스럽게 위층에 찾아가게 된 것이 결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집에 들어설 때부터 우리 집과는 다른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3대가 다 같이 한 공간에 사는 대가족인 데다, 몇십 년 정도 쓰고 있는 중일 것 같아 보이는 낡은 가구들이 내 눈에 들어왔기에 비록 그 방주인이라는 그 고3 학생을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거실에서 그녀의 목소리만 들었지만 요즘 같이 더운 여름에 덜덜거리는 오래된 선풍기로 겨우 땀을 식힐 고3 수험생의 모습이 눈에 그려져서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다.


고3이면 입시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을 때인데 지금 여름이라 덥기도 하고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을 때인 것을 나도 겪어서 알고 있기에 괜히 그녀가 안쓰러워졌다. 또 아주머니의 삶의 고단함에 지친 듯한 표정이나 목이 늘어난 무채색의 티셔츠 차림 등으로 보았을 때 상당히 검소한 가족인 것 같았다. 내 눈에 그녀는 그저 선량한 이웃의 소박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냥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선풍기는 절대 아닐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내게 말하는 그녀에게 동의의 뜻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 집에서 나오면서 나는 새벽에 좋지 않은 일로 마주하게 된 것이 어색하고 민망해서 아주머니께

“어쨌든 좋은 일도 아니고 층간소음 문제로 제가 늦은 시간에 여기까지 오게 돼서 죄송합니다.”

라고 했고 아주머니는 아니라며 민망해했다.      

경비아저씨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거 봐요. 착각한 거겠지. 나는 그럼 갑니다!”

하며 나를 보는 표정이 불만과 불신을 나타내는 듯했다.

“아까 그 선풍기가 원인인 것 같아요……. 아무튼 저 때문에 괜히……. 죄송합니다.”

나는 경비실 휴게시간이 있는지 몰랐었지만 이 일로 괜히 아저씨께 민폐를 끼친 것 같아서 사과를 드렸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그 소음이 안 들렸다. 아무래도 위층에 우리가 다녀갔으니 그 날은 문제의 그 낡은 선풍기를 더 이상 틀지 않았던 것 같았다. 다음날 밤 12시 반이 되자 또 위층의 선풍기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귀에 귀마개를 꼈다. 물론 그것을 껴도 들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서 예상할 수 있음에 내 마음을 달래 보았다. 어차피 위층 사람들은 새로 선풍기를 사지 않을 것 같았기에 그냥 참으면서 지내보기로 했다. 내 방의 침대 옆 벽면을 치면

“텅!”

하는 공간이 비어있는 얇은 나무 합판이 울리는 소리가 난다. 아마도 그래서 위층의 오래된 벽걸이 선풍기의 덜덜거리는 진동소리가 벽을 타고 내방까지 내려온 것이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원인을 알았고, 그들이 새 선풍기로 바꾸지 않는 한 그것이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은 그들을 만나지 않고, 혼자서 해결할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귀마개를 끼거나 거실에 나가서 자거나 아니면 그냥 최대한 소음을 인식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보거나…….      


이 고통을 알고 있던 부모님은 나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고 공감해주시면서

“그래도 위층 사람들이 선풍기 때문인지 잘 모르는 것 같으니 더 이상은 그분들한테 말하지 말고 우리가 알아서 해결해보자. 잠을 못 자서 어쩌니……. 힘내!”

했다. 그러다가 엄마는

“그럼 우리가 선풍기를 새로 사서 그 집에 선물로 줄까?”

하기에 나는

“그러다가 괜히 불쾌해하시면 어떡해요.”

하고 걱정했다.      


층간소음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파트 같이 여러 층이 있는 구조에서는 어느 정도 이웃들의 소리를 참는다는 생각을 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공사를 할 때 비용이 더 들더라도 조금만 더 견고하게 지으면 고통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풍기 소리로 이렇게 매일 밤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번 일로 나도 잠을 못 자서 괴로웠고,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애쓰신 경비아저씨도 피해를 봤고, 위층 주민들은 또 무슨 죄인가. 여름날 더워서 선풍기를 튼 것밖에는 없지 않은가…….      

 

나는 오늘도 층간소음을 듣고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하나님, 윗집의 형편이 좋아져서 새 선풍기를 사든 아니면 에어컨을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발…….”

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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