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감상
어제는 일요일이었다. 인터넷으로 영상예배를 드렸는데 목사님의 설교말씀 주제는 ‘공감’이었다. 공감(empathy)의 어원은 그리스어 'empatheia'에서 유래되었는데 어원의 의미는 '외부에서 감정 속으로 파고들어 가다' 혹은 '타인의 감정, 열정, 고통과 함께 한다'는 뜻이다. 최근 나는 공감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더 주의 깊게 듣게 되었다. 그러다 목사님의 말씀에서 예화가 나왔는데 나의 생활 속에서 종종 겪는 일 같았다.
한 아주머니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요즘 허리가 뻐근하고 아프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다음 날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아내는 병원에 갈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남편은 ‘그럼 운동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운동이나 해.’하며 핀잔을 주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왜 허리가 아프다고 말한 걸까. 그저 오늘 하루 집안 일로 고생 많았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을 수도 있다. 수고했다는 말이 어려운 것은 아닌데 우리는 예화 속 남편처럼 아내의 지친 마음을 함께하는 대신 해결책을 제시해주게 된다.
예화를 듣다 보니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온몸이 뻐근하다며 ‘요즘 근육 운동을 못해서 아프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럼 헬스장에 가세요.’하며 방안을 제시했다. 아버지는 헬스장에 매번 가는 것이 귀찮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그럼 티브이나 인터넷에서 홈 트레이닝 근육운동 동작을 틀어서 따라 해 보세요.’라며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아버지는 ‘동영상에 홈 트레이닝만 보고 따라 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어. 헬스장에 있는 기계로 해야 근육운동이 되지.’하고 말했다. 나는 ‘그럼 집에 있는 근육운동 기구들을 활용해보세요.’ 하면서 기구를 갖다 주었다. 기구를 본 아버지는 ‘아니 그건 너무 뻑뻑하고 힘들어서 못해.’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제시할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고 나는 그만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으면 저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란 거예요.’하는 말과 함께 우리의 대화가 종료되고 말았다. 갑자기 그 일이 떠오르니 부끄러워졌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냥 내가 하소연을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를 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런 생각이 났을 때 바로 사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아버지에게 그날 공감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했다.
목사님은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훈련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모임이나 사교 활동을 많이 하다 보면 사람들을 공감하는 능력이 커진다고 한다. 나의 경우 일단은 내 주변에 있는 가족, 친구들에게부터 그들이 내게 하는 말속에서 ‘진짜 마음’을 읽어내어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노력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