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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Jan 30. 2023

망한 케이크는 어떻게 살릴까?

살다 보면 예기치 않게 크고 작은 실수를 하게 된다. 특히 이름 실수는 자주 있는 일이다. 학창 시절 학원에서 이름을 잘못 부른 날도 많았고, 문집에는 엉뚱한 이름이 실려 속상한 날도 있었다.       

김미희작가님의 북콘서트가 있어 방문한 날이었다. 행사 내내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작가님의 동시가 동요로 만들어져 그 노래를 부르는 아이도 있었고, 책 만드는 에피소드를 출판사 편집자로부터 들을 수도 있었고, 아내를 위해 시를 쓴 85세 할아버지와 그 부인도 함께 시를 낭독했다.



박예분 작가님은 민영에게 책을 선물했다. 천안 아산역으로 마중 나와 자신을 도서관으로 데려다 주어 고맙다고 했다. <줄탁이>책 앞에는 예쁜 손 편지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옥의 티는 이름이었다. 이민영인데, 김민영으로 이름이 잘못 쓰여 있었다. 그날 본 사이였기도 했고, 북콘서트 현장에 김민영도 있었기에 헷갈린 모양이었다.      


민영은 고민하다가 이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작가님에게 가 말했다. 그러자 너무 미안하다며, 다시 수정해 주겠다며 책을 가져갔다. 잠시 뒤 책을 돌려주었다. 책을 펼치자 잘 못써진 글자가 있던 자리에 멋진 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었다. 풍성한 꽃다발 같기도 했다. 오타가 있었다는 게 상상되지 않은 정도로 감쪽같았다.      




‘작가님 그림도 이렇게 잘 그리다니...’     

오타 덕분에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던 그림실력도 알게 되었다. 두 분 모두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되는 순간이었다.      


실수가 실수로 끝나지 않고, 뜻밖의 예술을 탄생시켰다.

실수의 뒷면이었다.     







 

그날, 예기치 않게 또 다른 실수 하나가 더 있었다.

작가님의 책 출간을 축하하는 의미로 동화 쓰기 회원들이 케이크를 준비했다.



<실컷 오늘을 살 거야>라는 시집 안의 단어 중 ‘싱싱한 출간’을 적어 주문한 케이크였다.

그런데 케이크 위에 ‘심심한 출간’이 새겨져 있었다.     


싱싱한 출간과

심심한 출간     



두 단어는 만나면 안 되는 단어였다. 오늘 같이 기쁜 날, 심심한이라니?

망한 케이크를 어떻게 살릴까?

고민했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글이 써져 있는 초콜릿 픽을 뒤집어 놓기로 했다. 아쉬운 결정이었지만, 시간이 촉박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행사가 막바지에 이를 때쯤 문제의 케이크가 등장했다. 두 눈을 의심했다.

'심심한'이 '싱싱한'으로 바뀌어 있었다. '심심'의 받침을 동그란 초코볼로 콕 심어 '싱싱'으로 바꾼 것이다. 초코의 크기가 딱 맞아떨어지고, 동그란 모양이 입체감을 더해 돋보였다.



누구의 기지였을까?     






시적인 풍경이었다.     

동화를 쓰는 사람들의 상상력이었다.




삶에서 뜻하지 않은 실수들이 예고 없이 등장한다. 그럴 때면 당혹스러워 뇌가 얼고, 생각이 멈춘다. 실수의 순간에서, 우리는 포기하거나, 다른 대안을 생각한다. 케이크 위 글자처럼 포기하다가도 되살릴 수도 있다.      



실수였던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찾고 대안을 찾는 사람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틀린 글자를 찍찍 긋고 끝이 아니라 나무와 나비를 그릴 생각,

주변에 있던 초콜릿을 활용해 미음을 이응으로 만드는 생각은 모두 정형성에서 벗어난 생각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이었다.      



우연히 만난 두 가지의 일을 통해 실수의 다른 말은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실수는 기회의 아버지정도 되지 않을까?     



실수를 하게 된다면

너무 놀라지 말자.



독창성이 피어나는 출발선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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