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부탁러

시로 쓰는 일기

by 하하연


칼국수 속

입을 꽉 다문 바지락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는 나를 닮았다


손으로 벌려도

굼적 안 하는 조개


남에게

부탁 못하는 나를 닮았다


조개 속

가득 찬 뻘


검은 내 마음을 닮았다



-



누군가에게 부탁을 못하는 내가 싫었다. 백화점에서 산 물건을 환불하러 가는 것도 힘들었고, 영화관에서 의자를 발로 차는 뒷사람에게 그만하라고 말하지 못했다. 불편함을 참았다. 웃으면서 할 말 하기, 가볍게 부탁하기를 잘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초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내겐 없는 능력 같았다.


"하연 씨, 한 달 동안 카페에 글감을 올려 줄 수 있어요?"

"하연 씨, 북토크에 와서 동영상 좀 찍어줄 수 있어요?"


웃으며 부탁하는 지인을 보며, 그 경쾌함에 탄성을 질렀다.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좋은 마음으로 부탁에 응했다. 내가 가지고 싶은 모습이었다. 늘 부러워만 하고, 나는 가지지 못하는 모습. 연습이 필요했다. 어렵지만 꽉 다문 조개의 입을 벌리듯 하나씩, 하나씩 의식적으로 연습했다.


연습 1)

한 매거진에서 글을 청탁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수락을 하고 글을 써서 보냈는데, 원고료는 얼마인 건지 공지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너무 당연한 질문인데 내겐, 며칠을 고민해야 할 만큼 어려운 말이었다.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보낸 원고는 잘 받으셨나요? 원고료는 얼마가 지급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제야 궁금하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연습 2)

아이의 하교시간, 폴리스활동이 있는 날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지도하는 활동인데, 반 아이들 부모가 돌아가며 맡았다. 하필이면 내가 맡은 날짜에, 듣고 싶은 수업이 있었다. 수업을 듣고 이동하면 시간이 빠듯했지만 폴리스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며칠을 고민해도 수업이 끝난 후, 바로 가는 일정이 체력적으로 버거웠다. 부탁하기를 꺼려하는 성격이 또 발목을 잡았다. 오래 고민을 하다가 폴리스 전날, 혹시나 하고 바꿔주실 분이 있나 하고 글을 올렸다. 반 단톡방은 한동안 고요했다.

'없구나. 내가 너무 급하게 글을 올렸네. 수업 듣고 바로 와야지 뭐.'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분이

"저 바꿔줄 수 있어요."라는 답을 올렸다.

'되는구나.' 너무 감사했다. 글을 올려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연습 3)

자주 가는 책방에서 천으로 된 북커버를 팔았다. 가을을 맞이하는 브라운톤의 북커버였다. 계속 사고 싶었던 아이템이어서 반가웠는데, 컬러가 경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머뭇거렸다. 옆의 펜 홀더의 핑크체크 원단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북커버, 이 핑크체크로 제작 가능한지 알아봐 주실 수 있나요?"

입에서 나온 말은 명쾌했지만, 그 말을 내뱉기까지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냥 있는 거 살까?'

'핑크로 만들어 달라고 하는 건 책방지기님한테 너무 번거로운 거 아니야?'

'그분이 그 원단이 없을 수도 있잖아.' 등등


부탁이 어려운 사람은 몸속에 수많은 방지턱이 들어있다. 전이었으면 이런 생각 끝에 눈 앞에 있는 브라운체크 북커버를 샀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의식적으로 부탁하는 연습을 하려고 노력하기에 용기 내어 물어보았다.


"한 번 알아볼게요."

얼마 뒤,

"만들 수 있대요"라는 연락을 받았다.


또 '되는구나.'

라는 경험값 하나가 획득되었다. 시도할수록 표현하고 부탁하면 가능한 일들이 많구나를 알게 되었다. 전에는 부탁하지 않아서 안된 것들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부탁해서 안 되는 일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끙끙 앓아 마음이 시커멓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부탁을 할 때에는 마음의 부대낌이 있다. 프로부탁러처럼, 부탁할 때 경쾌한 마음이 자동으로 탑재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도 연습을 통해 초보부탁러는 된 것 같다.


부탁

그까짓 거.


앞으로 더 노력하고 싶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존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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