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했던 이유

시로 쓰는 일기

by 하하연

< 욕구 만두 >


김치만두

고기만두


콩떡

팥떡


안에 있는 재료에 따라

정체가 달라지지


억울했던 감정 속에는

소통하고 싶었던 욕구가


자랑스러웠던 이유는

기분을 스스로 조절해서

평온했기 때문이었어


감정이란 만두피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나 들여다봐


그 안에 미처 몰랐던

마음의 재료가 들어있어







아이가 어릴 때, 그림책을 함께 읽었다. 그 시절, 그림책을 날마다 읽은 이유는 말을 배우는 아이의 어휘를 늘려주기 위해서였고, 아이의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목적은 온통 아이를 위함이었다. 하루의 끝, 피곤해 지쳐 있어도 그림책 읽기는 꼭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내 생에 그토록 오랜 시간, 꾸준히 한 일은 처음이었다. 엄마라는 자리가 만든 정성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그림책을 한 바구니 빌리고, 서점에 가서 훑어보며 구매하고, 그림책구독서비스를 이용하면서 한 시기를 보냈다. 5년 동안 함께 읽은 그림책은 아이의 뿌리가 되었을까?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믿고 싶다. 엄마인 내게 그런 바람과 기대가 있었기에 그림책을 즐기기보다는 의무와 책임감으로 읽었다. 그 사실을 안 건 최근의 일이었다.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서 책보다는 핸드폰을 더 자주 들여다보았다. 서점에 함께 가서도 책보다는 문구만 보았다. 그러던 중 바다숲책방에서 하는 그림책 수업을 알게 되었다.



'맞아. 나도 그림책 좋아했었지.'

아이가 아닌 나를 위한 그림책 읽기는 새로웠다. 내가 고르고, 내가 읽어주지 않아도 되었고, 피곤한 상태로 해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골라온 책들을 표지부터, 내지까지 한 장면씩 마음으로 훑으니 주인공이 다 나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림책을 통해, 두려움, 질투, 환희, 설렘 등 다양한 감정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림책을 읽기 전 하나의 활동을 했다. 한 주에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이 가져온 감정카드에서 각자의 감정을 몇 장씩 골랐다. 모인 사람들 모두 다른 감정카드를 골랐다.


서운함, 쓸쓸함, 괴로운, 행복한, 부러운, 자랑스러운 등등...


어떤 일로 인해 그런 감정들이 생겼는지 이야기했다.

" 임신 호르몬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요즘 너무 혼란스러워요."

"아들 둘이 중3, 고2인데 그동안 애정표현이 부족한 것 같아 안아주려고 노력하고, 말도 자주 거는데, 아이들이 반응도 없고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지 않아 쓸쓸했어요."

"집에 시부모님이 오셨는데, 아이에게 사랑을 듬북 주셔서 그 장면을 보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 어떤 말로 상처가 되었고, 그 말로 인해 오해가 생겨 억울했어요."

" 영어 면접이 있었는데, 준비하는 내내 괴로웠어요."


모두의 삶 속에서 스쳐 사라진 감정 말고, 시간이 지나도 남겨진 감정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선생님은 욕구카드를 책상 위에 펼쳤다.


" 우리의 기분 속에는 욕구가 들어있어요.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숨은 욕구를 찾아볼까요?"

우리는 곰곰이 생각했다.

" 영어 면접이 괴로웠던 건, 자신감이 부족해서였어요."

"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억울했던 건, 소통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되서였어요."

" 다 큰 아이들의 반응에 쓸쓸했던 건, 사랑받고 싶어서였어요."


감정 속에 들어있는 욕구들을 이야기하고 보니, 내가 왜 그런 감정이 든 건지 보이지 않던 것이 또렷해졌다. 진짜 마음이 이것이었구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치는 감정을 외면하며 산다. 어떤 감정들이 내게 쌓여가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최근에는 감정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감정이야말로 나를 알 수 있는 핫한 프로그램이 라고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감정은 내가 왜 좋았는지, 불편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감정 속에 욕구가 들어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감정은 만두피. 진짜 맛을 내는 재료는 속에 있었다. '인간의 욕구가 채워지면 긍정의 기분이 들고, 욕구가 결핍되면 부정의 감정을 느끼는구나.' 이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큰 배움이었다.

이제야 내 감정의 출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욕구를 알면 기분도 조절할 수 있겠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어떤 감정이 들 때면 그 안의 욕구를 들여다보자. 진짜감정은 그 안에 있다. 그 연습이 되면 삶에서 나를 힘들에 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르게 나와 평온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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