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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처음 순간들
처음, 지하철을 타다.
by
하하연
Oct 14. 2024
중학교 입학 후, 아이의 첫 소풍이었다. 코로나 세대였기에 학교의 외부활동을 풍성하게 하지 못했다. 소풍의 장소는
서울랜드.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학교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가는 게 아니야?
우리 때도 그랬나?
학교의 방침에 놀랐다. 버스는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타 왔지만 지하철은 처음이었다. 역세권에 살지 않아서 대부분 자가를 이용한다거나 광역버스, 동네버스를 타고 다녔다.
"엄마, 지하철은 어떻게
타는 거야?"
지하철 타는 법을 말로 설명하게 될 줄이야.
"일단 들어가서 교통카드를 찍어.
지하철은 보통 2가지로 나뉘어. 개찰구에서 방향이 나눠지거나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서 양쪽으로 나눠지거든.
제일 중요한 건, 내가 탈 방향을 제대로 알고 타는 거야.
반대로 타면 목적지에서 점점 멀어지거든. 헷갈리는 건 종점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네가 내릴 방향의 종점을 알아두는 게 중요해.
"
나는 열심히 설명했지만
아이는 무슨 말인지 갸우뚱했다.
ㅡ
지하철 노선도를 펼쳤다.
"인덕원 역에서 대공원을 가려면
오이도행이 아닌, 당고개행을 타야 해.
카드 찍고 들어가면 표지판에 네가 가려는 대공원역으로
쓰여있지
않고 종점으로 표시되어 있거든. 그걸 잘 보고
가야 해."
"무슨 말이야?
"대공원역이 안 쓰여 있다고?
"
"지하철 타는 곳으로 가면 써 있는데
위에는
안 쓰여있어."
말로는 설명이 어려워 아이와 내가 헤매고 있는데, 옆에서 "남편이 린이 너 시험 문제
잘 찍어?"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잘 찍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
"
"그래? 그럼 50퍼센트로 맞아. 만약 탔는데 거꾸로 간다. 그럼 반대로 가서 타면
돼."
이렇게 우리는 만나지 못하는 대화를 마쳤다. 다음날 7시 30분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처럼 아이는 소풍을 갔다. 반 친구 4명과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탔단다.
아이들끼리 잘 간 건지 걱정되어 문자를 했더니 잘 도착했단다. 노는 일에 집중하도록 그대로 두었다. 집으로 돌아
오
면 물어봐야지.라고 생각했다.
" 지하철 잘 탔어
?
"
"응.
쏘
이지. 던대."
"그래? 직접 해보면
바
로 알지. 말보단 경험이야."
"애들도 타는 법 몰라서 내가 리드했어.
"
"잘했네. 이젠 어디든 갈 수 있겠네.
"
고럼.
근데 올 때, 버스 타려고 인덕원역 앞에 보니까 과일이 엄청 싸더라. 샤인머스캣이 4개에 만원이야.
"
"그래? 우리 동네는 비싼데 거긴 싸네. 사
지
그랬어?"
"사고 싶었는데 집에 있는 귤 다 먹어야 해서 참았어. 대신 친구들 좀 사라고 했더니, 두 명이나 샀어."
소풍후기가 엉뚱하게 끝이 났다.
14살 처음, 아이는 혼자 지하철을 탔다.
처음 하는 일들이 하나씩 많아지는 나이.
세상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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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연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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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한정판 말을 담은 <아이의 말 선물> <#낫워킹맘(공저)>을 썼습니다.사람들과 주고받은 말은 산문으로 담고, 풍경이 건넨 말은 동시로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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