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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Sep 21. 2022

수상한 동시

동시 수집

< 풍경을 재는 자 >



덜컹덜컹

기차가

출발합니다


1

2

3

4



5

6

7

8

9호


칸칸이

눈금이 되어


칭그르르

칭그르르

철도 위를 달리며


풍경의 길이를 잽니다.





직접 찍은 사진들


< 활짝 >


주먹만 내다가

보자기도 내는

도라지꽃






직접 찍은 거리의 사진들

 



<꽃들의 옷>




지난 계절에 입던

초록 코트 벗으니


빨강 원피스가

촤르르르


보라 스커트가

휘리릭


노랑 블라우스가

샤랄랄라


화사한 옷들이

가득한 길가는


어느새

봄 백화점이 되었어요.










<우수 건설새>


사람들이 지은

백화점이 우르르 무너졌대요


우리가 지은 집은

비, 바람에도 끄떡없어요


왜냐고요?


우리는 썩은 나무에는

둥지를 틀지 않는

우수건설새(사)거든요.



-


<바다 저금통(해)>



하늘은

날마다

날마다


바다에

노오란 동전

하나씩


저금을 해요





<제30회 인천시민문예대전 수상 동시들>





<두통 (머리가 살아있다)>




과자를 먹을 때

입은 오물오물 움직이니까


졸릴 때

눈꺼풀은 스르르 내려오니까


너희들은

살아있는 줄 알겠는데


머리는?

머리는?

조용한 머리는?


쾅! 광! 쾅! 쾅!


안에서 두드리는 거 보니

너도 살아있었구나


쿵! 쿵! 쿵! 쿵!


아이고 머리야

알았어, 알겠으니 좀 살살해 줄래?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여성 백일장 수상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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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동시들은

수상한 동시이기도 하고

수상한 동시이기도 하다.


상을 받은 동시이면서

보통과는 달리 이상하여 의심스러운 동시이다.




동시는 쓴다는 건 보통의 현상을 이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꽃을 보며 가위바위보를 생각하고,

새 집을 보며, 건설사를 떠올리고

바다의 해를 보며 동전을 생각한다.


통념과 멀어질수록 환상적인 동시가 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야기가 된다.


머릿속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망상도 동시에서는 유쾌한 발상이고,

딱딱한 기차를 부드러운 줄자로 이야기해도 용인된다. 


동시를 쓰는 일은 마치 나만의 언어를 갖는 일.

글의 정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그 언어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다.


여기 저기 나의 언어를 기다리는 것들이 있다. 마음을 마주치면 그때서야 새 언어가 생겨난다.


눈 마주치면 살아나서 의미가 되는 것들.

그 사랑스러움에 반해

오늘도 세상 속 구석을 들여다보며 언어를 빚는다.


수상한 동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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