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잘 있었니?
올해 2학년이 된 둘째는 나무 뒤에 숨기 바빴다.
그렇지 않아도 분주한 학교 가는 길
아이에게 지각은 저 세상 말이었다.
학교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400미터
남은 시간은 1분.
아이 등 뒤에 묻은 나무흙을 털어내는 손에
힘이 더 실리는 듯 했다.
아이는 놀랐을 것이다.
집에 돌아온 나는 마음을 가다듬기로 했다.
몸을 반쯤 침대에 걸쳤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한 걸음 더.
지금 내가 꿈꿀 수 있는 게 뭐지?
눈을 감고 생각이란 걸 해봤다.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일까.
지난해 가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보고
한참을 생각했지만
여전히 답을 못찾았다.
그래서 바꾼 질문은
내가 가장 돌아가고 싶은 때는 언제냐는 것이다.
이 물음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스물세살의 겨울, 뉴욕의 한 가운데를 떠올리고 있었다.
휴학을 하고 6개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떠난
내 생애 첫 해외여행.
간밤의 폭설로 뉴욕 한 가운데에는 어린 아이 키만한 눈이 쌓였고
거리에는 스키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난 저렴한 가격에 득템한 마크 제이콥스의 노란 장화를 신었다.
스키어들과 난 햇살에 반짝이는 눈만큼이나 밝은 표정이었다.
노란장화를 신고 어딜 향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장화를 신고 쭉 뻗어있는 거리를 걷는 나는
취준생에 부자도 아니었지만
차가운 공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크게 웃진 않았지만 불행하지도 않았다.
때때로 심장을 어딘가에 내줬나 싶을 정도로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의 내가
나는 가장 보고 싶은 것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가능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아침 일찍 비니를 하나 쓰고 출근 인파 속에 밀려들어가
크림 치즈가 넘치게 들어있는 베이글과 아메리카노를 들고
서점 앞에서 먹는 일이
이십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큰 선물이 될 줄이야.
졸업학기를 앞두고 휴학을 한 나는
그 추운 겨울 무엇을 꿈꾸고 있었을까.
정해진 것 하나 없는 그 때
가도가도 끝 없는 불투명 터널을 걷고 있던 나는
적어도 행복했다.
사진이 담겨 있는 외장하드를 잃어버려
여권에 찍힌 입국 도장 하나에 압축된 스물셋의 겨울은
수십 번의 봄을 지났지만
그 때 거기 그대로이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30일간의 여행.
그 때의 날 도와줬던 거리의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거리의 나무들도 가로수의 손글씨 포스터도
뉴욕대 주변을 걸었던 학생들도
말하지 않아도 충만했던 거리의 공기들도 안부가 궁금하다.
그 때의 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마흔이 됐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은 생애주기지만
스물 셋의 나에겐 먼 미래의 사람이겠지.
정신 없이 앞만 보며 살다가
이직하고 이직하고 또 이직하다가
결혼을 하고선 나 없이 살다가
나를 잊기도 하다가
이제 걸음마를 뗀 느낌이다.
왠만하면 엎어지지 않지만
엎어지는 게 두려워 뛰는 걸 두려워하지는 않는 나이.
다치면 연고 바르고 밴드 붙이면 되는 걸 아니까.
잊고 살았다.
잊어야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는 그 때의 기억들에
한 번쯤 안부를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똑똑. 잘 있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