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s
가령 매력적인 누군가를 묘사할 때 우리는 태생적 한계에 봉착하곤 만다. 자신들이 그들에게 굴복하게 되는 것은 멋진 몸매나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라 말하며 말이다. 노소를 불문하고 그들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쉴 것이다. 외모가 매력의 전부인 것 마냥, 단 하루만이라도 그와 같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에게 반한 진짜 이유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그의 외모 때문이 아닌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수수께끼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가 가진 두 눈으로 정면만을 본다면, 눈이라는 건 하루에도 수만 번씩도 더 닦아 줘야 하는 불량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의 저 너머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영혼을 볼 수 있는 유일하고 경이로운 창이 되어줄 것이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마법'과 같은 현상은 사실 지극히 평범한 요소들의 적분(積分)이었음과 함께.
찰-칵. 카메라가 사진을 찍듯이 우리의 눈도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다. 상대방으로부터 그가 바라보는 곳까지 당연히 하나의 선이 그려지는데 때로 우리는 그 선을 피할 수 없다. 아니, 피하지 않는다가 더 정확할 까나.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은 사실 내가 자각하기 전부터 있었을지도 모르고, 고개를 돌리던 그 순간 서로가 맞닥뜨린 무엇일 수도 있다.
너와 나 그리고 그 사이, 겉보기에도 그 장소는 전적으로 상호작용이다. 둘 이외의 나머지는 추가 요소일 뿐이다. 여백만이 가득한 공간, 나는 그를 바라보고 반대로 그 역시 나를 바라본다. 더도 덜도 말고 갑작스러운 대면, 마주친 눈빛. 서로 교차되면서 겹치는 곧은 시선. 이 가시적인 가느다란 선에는 불확실성, 교환, 회피하는 시선을 포괄하는 복잡한 망 전체가 내포되어 있다. 이 시선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바로 가벼움과 무거움의 혼합이다. 그것도 그냥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단일체를 이루면서 말이다. 언제든지 고개만 살짝 비틀면 끊어져버릴, 가볍고 연약하면서도 단단한, 지속적인 시선들 속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멈춘 붓은 시선에 매달려 있고, 반대로 시선은 멈춘 동작에 달려 있다. 거대한 캔버스를 앞에다 두고 대칭으로 배치돼 열정적으로 서로를 그리는 화가들처럼. 서로는 서로의 시선에 의해 받아들여지지만 한편으론 이미지로써 축출되고 되는 중이다. 화가는 자신이 재현되는 그림을 볼 수 없듯이 그 너머의 누군가 또한 재현당하는 제 자신을 보지 못한다. 도통 뒷면만 보이고 있는 캔버스의 표면에는 같은 그림이 그려지기도 하며 또 서로 반대의 그림이 그려지기도 한다. 때로는 오래전부터 오래도록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서로에게 등만 보이고 있는 이 캔버스는 두 관계가 끈질기게 발견되지도, 확정되지도 못하게 막는다. 거대한 틈으로부터 시작한 은밀한 회피의 시선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카오스(chaos)를 만든다, 이것이 바로 시선의 매력이다.
동상이몽 일지 동병상련 일지는 들춰내 봐야 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화폭의 뒤편에 그려진다. 그것을 찾기 위해선 등만을 보이는 화폭에 벌떡 일어서 다가가 찢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