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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곤 Sep 12. 2022

모의고사 7등급 8명의 수학 수업

가장 무용하면서 가장 유용한

  누군가 나에게 공부 비결에 대해 묻는다면 이렇게 말한다. "가장 무용한 것이 때론 가장 유용했다"라고. 대학 입시, 핸드폰과 전자사전이 없어 종이사전을 옆에다가 두고 공부를 했다. 뚫어지게 「부분 적분」과 「치환 적분」이라는 단어를 보고 있자니 '검은 것은 글씨, 흰 것은 종이' 그 이상의 감동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옆에 있는 영한사전을 폈다. 「부분 적분」 【Integral of part】, 「치환 적분」 【Integral of substitution】 이처럼 단어에 담긴 여러 뜻을 알고 나면 왠지 모르게 공부가 잘된 나였다. 입시가 준 선물은 수학 공식이나 과학적 지식 등의 휘발성 지식이 아니다. 단지 '조그마한 것들을 관찰하는 자세' 이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다.


 평균 내신 6~7등급. 잠이 많은 아이, 소극적인 아이, 공부가 처음인 아이들 반의 수학 선생님을 맡은 적이 있다. 그들의 수학 성적 또한 천차만별이라 어디서부터 시작하여야 할지 막막할 노릇이었다. 너무 막막한지라 나도 막막하게 나가기로 했다. 당장의 성적 향상에는 필요 없는 그렇지만 모르면 일정 점수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가장 유용하면서 무용한 수업을 하기로. 그렇게 첫 수업을 시작했다.


 '문제'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심상이 있는가? 오지선다? 서술형/주관식? 나에게 '문제'란 굳건히 닫힌 철문이다. 고민하고 사색하여야 할.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 철문을 고민하고 사색하여야 할 대상이 아닌 온몸으로 굳건히 밀고 나아가야 할 무언가로 생각한다.


문제는 철문이다


"자 여기 앞에 보이는 문이 문제라고 생각해봐. 문이 문제라면 문제를 푼다는 건 이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일 거야. 그렇지?"


"우리에게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고 숙련된 일이니 쉬워 보이겠지만, 이제 우리는 이 '문이라 불리는 것'을 낯설게 볼 거야. 마치 처음 보는 양."


 "전국에 있는 많은 고등학생, 심지어 어른들도 때로는 '문이라 불리는 놈'을 단지 온몸으로 밀고 나가야 할 존재로 생각하기 일쑤야. 이렇게 온몸으로 힘껏 부딪힌다면 뭐 부서지기는 하겠지. 내 몸이 부서지든 이 문이 부서지든 둘 중 하나일 테니깐."


 "대신에 우리는 이 '문이라 불리는 놈'을 마주할 때면 한 발자국 떨어져서 고민하고 사색해야 해. 어떻게 하냐고? 일단은 찬찬히 읽어야 하는 거지 '문은 직사각형이며... 엄청 크다, 이것은 무엇이지? 튀어나온 무언가가 있네, 이것은 어떤 용도일까?' 이 과정이 독해이며 관찰이야."


 "그다음으로 '문이라는 놈'이 어떤 요소로 구성되었는지 꼼꼼하게 읽었다면 주어진 요소들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겠지? 단, 이때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돼. 과정 중 실패가 동반됨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니깐. 여러 가지를 만져보고 조작해보며 실패도 하고 털고 일어나 또 넘어지고. 아마 그러한 과정을 충분히 겪었을 때쯤 자연스레 손잡이의 용도를 알게 되며, 손잡이를 내리며 문을 당기면 문이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우리는 앞으로 수학 문제를 마주할 때 그냥 몸으로 밀고 나가려고 하면 안 돼. 무턱대고 연필부터 가져다 데 지 말라는 말이야. 대신 한 발자국 떨어져 문제를 꼼꼼히 읽고 어떤 요소들이 있는지 확인하며, 이것들을 이용한 추론이 문제를 푸는 온전한 과정인 것이야."


 문제를 푼다는 것은 독해, 관찰, 추론의 과정이다. 이 명제는 가장 무용하면서 유용하다.


 그렇게 수학 수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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