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자. 내가 만약 결혼해 자식을 낳았다면, 내 자식이 나한테 똑같이 저랬을까.
자칭 소설가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픽션으로 재구성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아버지가 뛰어나다. 돈이 안 돼서 그렇지, 차라리 아버지가 작가를 했다면 훨씬 나은 형편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아버지 밑에서 부정하지 않고 제대로 배웠다면 인플루언서 보다, 유튜버 보다 훨씬 훌륭하게 작품을 이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니까 이러고 있다.
아버지는 6.25 참전용사였다. 당시 포대 대대장으로 있었다, 고 들었다. 아버지가 제대할 때 나라에서 주는 연금을 어떻게 했는지, 아직도 지금도 비문에 붙여졌다. 어머니 말로는 일시불로 탔다, 들었다.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어떻게 됐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가족 중에 알고 있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단지 아버지도 그랬지만, 친척들도 그랬고 형들도 그랬고, 나도 그랬고, 항상 그 말을 떠들었다. 일시불로 타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면, 아버지가 평생 나라에서 타 먹을 돈이었다는 것을. 아버지가 오래 살수록 자식들이고 그 외에 관련된 친척들한테도 큰소리 떵떵 치면서 살고 있을 텐데.
아버지가 더 오래 목숨을 연명하고 이어갈수록 어머니의 경상북도 사투리가 절실해진다.
왜 사노? 날 이렇게 괴롭히려면 차라리 끄빠리 뒈져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