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여학 또렷하게 구분대는 시절-이성을 접할 수 있는 곳은 교회뿐.
“예전에 저하고 범준하고 둘이 덕수궁에 왔었는데요. 그때가 마침 영화 촬영 중이었나 봐요. 여러 사람이 많이 몰려서 장사진을 이루었죠. '기쁜 우리 젊은 날?' 아니야 '우리 기쁜 젊은 날?' 암튼 배창호 감독하고 배우 안성기가 눈에 들어왔어요.”
“어머. 저도 그 영화 봤는데 기억이 나요. 황신혜가 나중에 죽잖아요. 무척 슬퍼서 저는 그때 무척 울었던 것이 생각이 나요. 친구랑 같이 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아, 그래요. 저도 봤어요. 무척 슬픈 영화라는 생각은 했지만 울지는 않았는데. 알고 보니까 덕수궁에서 촬영한 장면이 제일 마지막 장면이었더군요. 황신혜가 아이를 남겨 두고 죽었을 때 안성기가 그 아이를 데리고 벤치에 앉아서 삶은 달걀을 까 주는 장면이더라고요. 애드리브라고 그러죠. 별 대사 없이 그냥 달걀은 이렇게 먹는 거야. 어쩌고 저쩌고.”
경화는 내가 하는 이야기에 무척 빠져 있었다. 입을 가리고 소리 내서 웃거나 손뼉 치며 좋아했다. 말하는 것도 어제보다는 훨씬 인간미가 넘쳤다. 그것이 훨씬 좋았다.
“그래서요? 그래서, 그다음에는요?”
“배창호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하자 모두 수고했다. 박수를 보내더군요. 저는 영화 촬영하는 것을 가까이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라 같이 박수를 보내며 좋아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범준이 그림 그리려고 가져갔던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당당하게 안성기하고 배창호 감독한테 가서 사인을 받아오는 거예요. 그것도 두 장씩, 넉 장을. 하하…, 스케치북을 들이밀자 크기에 맞게 크게 사인을 두 장씩 해주더군요. 범준이 그런 극성에는 탄성을 지를 정도였습니다. 여자 팬들이 많이 몰려서 도저히 헤집고 들어갈 수가 없을 거 같았는데, 여자들이 어우, 어우…, 소리를 지르는데도 막무가내였어요.”
경화는 내가 유쾌하게 말하는 것을 계속 봐주면서 같이 따라서 즐거워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덕수궁을 나와 K 문고로 향하는 시청 앞에 강렬한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오 년 전. 아니 범준이랑 같이 왔을 때는 육 년 전이었다. 그때 햇빛과 별달라진 바가 없었건만. 경화와 같이 있는 순간에는 적적해하지는 말아야지. 그런데도 힘들었다. 그가 내 곁에 없는데 그리워한다는 자체가 가슴 억누르는 답답함임을 그녀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때 시절에 특히 k 문고를 들어가는 입구 쪽의 지하통로 -그는 내게 자신만이 알고 있는 세계를 알려 주는 양, 무척 들떠 있었고 나는 그 안에 예속되는 것이 절대적 기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서서히 느끼고 있었다! 그가 그리웠다. 이제는 만날 수도 연락도 할 수가 없다. 그도 나와 한국을 그리워하는 때가 있을까.
내가 k 문고에서는 주로 베스트셀러를 모아놓은 문학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으면 경화는 전문 서적 판매대에 있다가 곁에 왔다. 거기서도 카뮈의 이방인을 찾아서 읽었는데 뫼르소가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이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헝가리에서 일어난 사건을 담은 신문쪼가리를 읽는 대목이었다.
“카뮈를 무척 좋아하는가 보군요. 도서관에서 만났을 때도 그 책을 읽고 있었던 거 같았는데.”
“예. 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까 새롭군요.”
“어머. 그래요? 언중 씨는 독서광이신가 보군요.”
“그렇지는 않아요. 왜 영화도 가끔 보고 나서 나중에 한 번 더 보고 싶은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거 하고 비슷해요.”
“아…, 그래요.”
경화는 두 손을 모았다. 동작은 이야기를 정말 잘 들어주고 있다, 부각하는 것 같았다.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중간에 K 문고를 나와 종각을 지나고 종로 3가를 거쳐 피카디리극장이나 단성사에 이르렀을 때도 줄곧 난 억지로 좋은 표정을 보여 주고 있었다. 너무나 힘들었는데도 계속 반대의 모습을 보여 주려 애썼다. 인생은 반대편에 서서 다른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 주려고 사는 날들의 연속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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