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13. 2011~2012년(30~31세)

by 나를찾는나

결혼을 한 뒤 당장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양가와 분리된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다는 그 자체에는 큰 의미가 있지만

당장 삶의 형태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았다

여전히 나는 아직 철이 없는 30대였다


되려 연애와 결혼준비를 하면서 커진 씀씀이 때문에

아주 잠깐이었지만 소비하는 삶을 경험한 유일한 시기가

그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둘이 벌어 둘만 쓰면 되는 삶

물론 대출의 압박으로 절대적으로 넉넉치는 않았어도

각자 벌어 각자만 부양하면 되는 삶은

비교적 여유로운 삶이었다

(이래서 요새 아이를 안낳는 게 트렌드인거 같다

똑똑한 젊은 사람들...)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한껏 누리며 소비가 주는 짧지만 새로운 즐거움을

나는 그 시절 충분히 누렸던 거 같다




한 6개월 정도 그런 삶을 누리고 나서

둘의 통장을 합치려던 즈음에 남편의 카드 빚이

수천만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기보다는 통장을 달라는 내 요구에

남편의 고백을 들었다고 하는 게 맞겠지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제 손으로 돈을 벌어본게

서른이 넘어서 처음인 사람이었다

경제관념은 나도 없었지만 풍족히 자라지 않은 나보다

훨씬 더 없는 사람이었고

1년 반동안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카드빚을 끌어다 쓰며

수천만원의 빚이 생겨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는 게 결혼이라지만

정말이지 나와 다른 이 사람의 경제 관념에 크게 한방 먹은 느낌이었다


연애할때 내가 갔던 럭셔리한 식당, 비싼 선물, 해외 여행지는

카드빚 위에 얹어진 쾌락이었다는 사실에 두번째 강펀치를 먹었다

엄마는 니 돈으로 니가 즐겼다고 생각하라며 위로아닌 위로를 해주셨다


카드빚 사건을 의도치않게 시어머니께 전달하고 들었던 이야기가 3번째 펀치였는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학생 시절에도 대출을 쓰고 군대에 갔던 것을

부모님이 나중에 아시고 상환하셨던 적이 있었더랬단다

그래서 재정 관리를 내가 해야한다는 말씀을 처음부터 하셨던거구나 이해도 갔다

마지막 A/S를 해주시겠다며 채무의 절반 정도는 본인이 갚아주시겠단다

뭐, 어찌되었든 이미 이리 되었으니 해결을 하고 앞으로 잘 해나가자 싶었다







통장 합치기를 하고 나니

어느정도 현실이 보였다

우리는 월급쟁이 초년차로 버는 돈은 적은데

적지 않은 대출을 안고 시작했고

금리가 4~5% 하던 시기라 이자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자라고 성장해온 환경 인식 + 그의 큰 아킬레스 건을 확인하며

나는 정신을 차리고 절약하는 삶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했다

한번 소비가 늘고 나서 줄이기는 정말 쉽지가 않았다

소비가 주는 도파민도 2년 정도 만끽해보았기에

놓기가 너무도 아쉬웠다

그래도 그래야만 하는 Must 상황이었고

3번의 강펀치를 맞았기에 나는 나름 수월하게(?) 이전의 삶의 패턴을 찾았다


사용 가능한 용돈 액수를 확 줄였다

초기에 큰 잘못을 해서 시작했기에 그도 군말없이

적은 용돈에 동의를 했다 (되려 이건 잘 된 포인트네)

대신 본인이 야근해서 받는 수당은 부족한 용돈에 보태 쓰라고

나름 선심도 썼다 (이건 나중에 후회하는 뽀인트가 되기도 ㅋ)






재정적인 문제도 어느정도 정리를 하고

양가 방문 빈도로 크고 작은 트러블도 겪고

집안을 뭉탱이로 굴러다니는 먼지를 보고 묵인하며

신혼의 삶을 나름 재미나게 즐기고

1년 즈음이 지나서 나는 모범생 답게

아이를 갖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인생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삶에는 그 시절에 깨야하는, 넘어야하는 과제들이 주어지는거 같다

그런데 모두가 같은 과제를 부여받는 느낌이고

같은 과제를 모두가 비슷한 모양으로 수행해야한다는 압박도 받기에

모두가 비슷한 그 소위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 것이 그 평범한 삶인거 같다


모두에게 요구되는 과제를 같아서는 안되며

꼭 그 시기에 수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삶에는 정답이 없기에 다양한 삶의 형태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걸 나는 이제서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거 같다





아무튼 그때는 숙제 수행하기 처럼

다음 스텝은 아이갖기라고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신혼을 1년 정도 즐겼으니

아이를 낳아야지~의 느낌?

그리고 아주 감사하게도 혹은 우연하게도

결심하고나서 바로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임신 기간은 초반 작은 입덧 외에는

아주 순조로웠다

나도 아이도 내내 건강했고

마지막 달까지 회사에 잘 다녔다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무척 감사하다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지금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은 더 잘 알기에,

내가 살아왔던 건강한, 큰 일 없는 일상들이

그리고 지금의 평안한 일상들이 참으로, 너무나도 감사하다


그 전까지는 아이가 열달동안 뱃속에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사실은 임신 사실을 알고 8개월 뒤 출산이니

실제로 배속에 품고 있는 기간은 대략 9개월 정도이지 싶다

9개월을 무사히 품은 아이를 건강하게 출산했다






남자의 인생은 살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여자의 인생은 출산 전과 후로 극명하게 바뀐다

내 인생이 딱 그랬다


그전까지는 대부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면

어느정도 내 의지대로 끌고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다른 생명체를 보살피는 일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내 맘대로 되는 게 거의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 육아였다

(느낌이 그랬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된 후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을 많이 배웠다

이타적인 마음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에 대한 관심

인생사가 원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정상이라는 것

그 전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고 여겼던 건

실은 누군가의 도움과 보이지 않는 희생, 헌신같은 게 있었을 꺼라는 것


나는 엄마가 되고 어른이 되었다

비단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가 부모를 키운다

그래서 아이와 부모는 같이 성장하고, 그러면서 한 가정도 어엿하게 자라나가는 거였다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들도 나는 충분히 존중한다

그런 삶의 다양성도 우리 사회는 특히 더 필요하다

그게 아이이던, 동반자이던 우리는 결국 사람과 부딪끼면서

성장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지만

결국 그 사람을 통해 내가 성장하겠구나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결혼과 출산은 그런 의미에서

나를 키워준 의미있는 사건임에는 틀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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