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너무 좋아 이렇게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재결합은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정리 할 수 있는 시간의 확보를 위해서였다
내가 그토록 괴로웠던 것의 실체는 뭐였을까
오랜 기간 속아온 것에 대한 배신감이었을까?
그래도 나는 사랑한다. 고 믿었던 착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준비되지 않은 이별에 대한 방어 기제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철저히 후자였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열렬했다고 느꼈던 사랑의 감정은
실은 그 사랑을 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자아도취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랑의 실체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믿음이 무너진 모래성 같은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마지막 의리인지 책임감인지 모를 마음으로
그의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열심히 수정해주고
결국 그가 최종 합격을 한 뒤에
우리는 헤어졌다
재결합 8개월만의 진짜 이별이었다
나는 그를 돕는 거처럼 위선을 보이면서도
철저하게 헤어짐을 당하기 위해 그를 괴롭혔다
다른 이성을 만나러 모임에도 나가고
단체로 여행도 다녀오고
남자친구 없는 척했다는 것도 서슴치 않고 그에게 전했다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는 미움, 분노, 복수심 같은
나와 상대를 갉아먹는 감정들만이 남게 된다
그래서 사실은 빠르게 관계의 끝을 내야 서로 덜 다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떻게든 그를 붙잡고 다치게 하고 싶었다
내가 무너지고 아팠던 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되돌려주고 싶었던 거 같다
그 과정은 나름의 성공으로 끝났다
헤어짐을 당하던 날, 그의 흐느끼던 뒷모습을 보고
나는 눈으로 울었지만 입으로는 웃었다
그리고 아주 놀랍도록 빠르게 회복했다
결국 나는 6년을 정리할 이별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아주 따뜻한 봄날 긴 연애를 마치고 나니
내 나이가 28살이었다
지금 보면 엄청 어린 나이인데
부모님은.. 아니, 엄마만 초초초 긴급 모드 발동이었다
어찌나 선을 많이 가지고 오시는지
이제야 갓 긴 연애를 끝내고 숨 좀 돌리겠다는데
이 나이에 헤어져서 결혼은 서른 넘기게 생겼다고 야단 법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거 같다
이제 고작 십수년이 지났을 뿐인데
결혼에 대한 가치관 역시 아주 크게 달라져버렸다
아무튼 엄마의 등쌀에 못이겨
딱 한번 선을 보러 나간적이있다
그쪽은 미국 유학 중 잠시 귀국해서 휴대폰이 없다고 해서
회사 근처 서점 앞에서 시간 맞춰 보기로 약속을 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봄날이었는데
서점 앞에 3명의 남자가 서있었고
한명은 키도 훤칠.. 나쁘지 않아 합격,
다른 한명은 그냥 평범, 음. 그래 뭐..
마지막 한명은 헐..
키가 너무너무 작고 아빠 옷 걸쳐 입고 나온 추남 중의 추남이었다
셋 중 누구일줄 몰라서 +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주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니
(이럴때만 발동하는 나의 촉...!!!)
합격남은 일찌감치 사라지고 보통남도 일행을 만났다
아... 이런..선이란 원래 이런 것인가
어쩌지.. 엄마 얼굴도 아른 거리고..
근데 내 마음의 소리는
저이와 밥을 먹느니 평생 혼자 사는게 나아- 였다
마음의 소리를 따라 나는 집에 와버렸다
엄마한테 등짝을 수십대 맞고 갖은 욕을 배부르게 먹으면서도
나는 엄마에게 당당히 항의했다
엄마는 사진도 미리 안받고 모했냐, 엄마가 그 얼굴을 봤어야 한다
이 외모 지상주의..
그래도 남녀간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게 또 외모아닌가
절대적으로 예쁘거나 잘생기진 않아도
내 짝이 되려면 내 눈에는 예쁘거나 멋진 구석이 있어야 할 게 아니냐고!
엄마는 그 이후로도 자꾸 선을 가져오셨고
(게 중에 지금 유명한 아나운서도 하나 있다)
나는 첫 선이 준 트라우마로 어떻게든 선을 피하기 위해
자체 연애 수급이 시급해졌다
누군가 50명정도 만나면 1명 정도는 괜찮다고 하다길래
딱 100명을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엑셀을 켜서 이름부터 직업, 나이, 목소리, 성격을 구분한 평가서도 만들었다
(100명 중에 추리기 위한 나름의 빅플랜이었다..)
그리고 주변에 소개팅을 해달라며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다행히 소개팅은 바로 들어왔는데
동기 오빠가 무려 5명을 한번에 들이밀며 누구를 만나보겠냐고 물었다
나는 자그마치 100명이 목표였으니, 당연히 다 만나겠다고 했다
하지만 2번째 만났던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되면서
나의 100명 프로젝트는 3명으로 끝이 났다
(글을 쓰면서도 아쉬운 이 마음)
새로운 남자친구와의 연애도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쪽이 아니라 내쪽으로 기울어진 연애였다
나는 아주 오랜 기간 누군가를 더 사랑하던 연애를 했기에
더 사랑받는 연애에 낯설면서도 그렇게나 좋을 수가 없었다
아 사랑 받는 연애는 이런 거구나 싶게 행복감으로 둥둥 떠다니면서도
한켠으로는 일방적으로 주는 상대의 마음을 알기에 항상 고마웠다
그리고 내가 고맙다고 하면 상대는 그걸 더 고마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관계든
한쪽으로 기운 관계는 건강하지 못하다
건강하지 못한 관계는 오래 지속하기도 어려운 법이다
관계는 늘 적당한 균형추가 필요하다
한없이 받는 연애에 익숙해지고
한계절이 지나 우리는 자연스럽게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다
양가로부터 환영받고 축복받는 결혼이었다
결혼 과정에서 남들이 겪는다는 다툼이나 신경전 하나 없이
우리는 아주 순탄하게
물 흐르듯이 결혼을 했다
결혼이 대부분 그렇다고는 하던데
인생의 꽤나 큰 결정을 큰 고민이나 판단없이
너무 쉬이 진행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선택에 대한 결과도 오롯이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는 것인데.
근데 또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서
내 선택이 크게 바뀌거나 달라졌을까 싶기도 하다
보통 결혼을 결정하는 시기는 인생 경험이 많지 않은 시기기에
옳은 판단을 내리기에도 경험과 지혜가 부족한 시기 아니겠는가
그저 내가 선택했으면 그걸 올바른 선택으로 만들어가는 것.
내 선택에 최선을 다해 책임 지는 것.
그것이 어른이자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해야 하는 모든 것일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