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밤마다 깨어 있던 나를 위로하며

- 작은 변화가 하루의 결을 다시 데워가는 시간 -

by 하율


"작은 변화가 내면의 리듬을 살리고

그 리듬은 하루의 결을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따뜻한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다."



모두가 잠든 시각에 홀로 깨어 있는 순간이

한동안 나에게 불편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고요한 새벽은

세상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던

내 마음이 쉬어 가던 작은 방이었다.


낮 동안 한편에 밀려 있었던 마음들이

밤의 어둠이 내려앉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자 내 안에서 올라오는 속삭임이 한층 선명해졌다.
적막함이란 외로움의 공간이 아니라,
제대로 다루지 못한 마음 조각들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은밀한 쉼터였다.



어느 새벽,

그 정적은 내게 묻고 있는 듯했다.


“지금 너는 어떤 마음으로 있니.”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깊숙이 숨어 있던 내면의 그림자
빛을 향해 아주 아주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안으로 흔들리던 밤이 여러 번 지나고 나자,
아무에게도 드러나지 않는

깊숙한 자리에서 미세한 떨림이 조금씩 일어났다.


크게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한동안 굳어 있던 불안이 잠시 멈추는 틈이 생기고,
그 자리를 통해 새로운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창가에 앉아 흐릿한 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호흡은 자연스럽게 고르게 이어지고,
마음은 따뜻한 손바닥에 살며시 기대는 듯 잔잔히 가라앉았다.


예전이라면 다급하게 불을 켜거나

휴대폰을 손에 쥐곤 했지만,
어느 밤에는 도망치듯 외면하지 않고
눈앞에 펼쳐진 고요 자체를 바라볼 여유가

내 안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이 소박한 용기 하나가
내면 깊은 곳에서 난로처럼 은근한 온도를 만들어 냈다.
어둠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간이 된 것이다.


거창한 전환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순간들은 회복이 스스로 싹을 틔우는 듯한 미묘한 신호였다.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작은 신호가 오래도록 나를 지탱해 준 씨앗이었다.



어느 아침,

아이가 식탁 위에 두고 간 빵 조각을 치우다가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따스한 기운 하나가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순간이었지만,

문득 이런 말을 속으로 흘리듯 자연스럽게 중얼거렸다.
“오늘은 마음이 조금 가볍네.”


설거지를 하며 창문으로 들어오던 햇살

멍하니 바라보던 날,,
장 보러 나가는 길,

햇살 위에 몸을 쭉 뻗고 늘어져 있던 고양이,

버스 안에서 창에 비친 내 표정이

어제보다 조금 더 편안해 보였던 저녁…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장면들이
묘하게 마음속에 머물더니
침묵한 채 하루의 결을 천천히 덥혀 주는

미지근한 물처럼 스며들었다.


이 미세한 순간들이 차곡히 쌓이자
딱딱하게 굳어 있던 마음의 층 사이로
따뜻한 숨이 드나드는 작은 통로가 생겼다.


삶의 무게를 바꾸는 힘은

언제나 큰 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은근히 스며드는 일상의 장면들,

그 조용한 따뜻함의 연속이

나를 다른 쪽으로 이끌고 있었다.



밤의 무게가 옅어지자,
낮에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조금씩 달라졌다.

아이가 학교 이야기를 꺼낼 때
예전의 나는 긴장부터 앞세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를 끝까지 듣게 되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갑자기 강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내면의 흐름이 나에게 어울리는 리듬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출렁이는 느낌이 들 때면

조용히 이렇게 말해 보았다.


“지금 내 안에서 잔잔한 물결이 일고 있구나.”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의 조임이 한층 풀리고
하루의 생활 속도를 바꾸어 놓았다.


시간을 억지로 끌어당기려 하던 에너지를 천천히 놓아버리자

하루가 내 호흡에 맞추어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오래 잊고 있던 지냈던 나만의 고유한 박자
다시 귀에 들려오는 듯했다.

세상에 맞추기 위해 숨죽였던 시간들 너머로

내 삶의 본래 템포가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밤,

방 안의 큰 불은 켜지 않았다.


대신 책상 위 스탠드 하나만 살며시 켰다.


따뜻한 빛이 동그랗게 떨어진 자리에서
나는 오랜만에 메모지를 조용히 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일을 천천히 시작했다.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언어들을 조용히 옮겨 적는 일.


글씨는 삐뚤고 문장은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쓰고 있다는 행위만으로도
흩어진 내 마음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을까.”
“나는 어떤 순간 앞에서 가장 작아졌을까.”
“지금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일까.”


종이 위에 남겨진 이 질문들은
나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쌓였던 속마음들이
글자에 기대어 흘러나오는 통로를 찾은 것처럼 보였다.


그 밤의 선택 하나가
내 안에 오래 꺼져 있던 난로에 다시 불씨를 옮겨 놓았다.

잊고 지냈던 따뜻함이 조용히 되살아났다.


“고요 속에서 켜진 작은 빛이
내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5장.스텐드.800.1200.png 고요 속에서 켜진 한 줄기 빛이 마음을 다시 깨운다. 사진-스탠드의 부드러운 빛과 정리된 책상





사람들은 회복을 이야기할 때
큰 결단이나 눈에 보이는 변화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온 힘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움직임들의 합이었다.


뒤척이던 밤,
“그래, 지금 이 정도면 충분히 잘 버티고 있어.” 하고
자신을 인정해 준 한 문장,


어둠 속으로 스며들던 잔잔한 안정감,
불편한 마음을 애써 밀어내지 않고

단 한 번이라도 더 바라보려 했던 조용한 작은 용기…


이 작은 조각들이 하나둘 쌓이자

어느 날 문득,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훨씬 따뜻하고 한층 유연하다.”


겉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 안을 이루는 결은 점점 조용히 온화한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 온기를 오래 지키기 위해
나는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약속을 적어 두었다.


• 밤이 찾아와도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 내려놓기

• 불편한 감정은 판단하지 말고 흘려보내기

• 상처가 되는 말은 마음속에 품지 않기

• 몸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에 귀 기울이기

• 매일 내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 갖기


이 약속들은 나를 조이는 규칙이 아니라,
삶을 다정하게 떠받쳐 주는 받침목이 되었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온화해지자
집 안의 공기까지도 눈에 띄게 따스해지는 것만 같았다.



“깨어 있는 시간도 쉼의 한 조각이다.
이 순간은 마음이 나를 달래기 위해

조용히 열어 둔 창문이다.”


무서웠던 것은 어둠 자체가 아니라,
내 안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림
오랫동안 듣지 않으려 했던 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 속삭임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내 삶은 다시 부드럽게 데워졌다.


새로운 나를 살아가게 한 힘은
엄청난 결심이나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루 동안 쌓여 온 아주 작은 움직임들

그 움직임들이 만들어 낸 따뜻한 온기였다.


오늘 밤도 그 미세한 변화들은
여전히 나를 데우고 있다.
그리고 내일의 나를 조금 더 유연하고,

조금 더 부드럽고 다정한 사람으로 이끌어 주고 있다.




오늘의 명상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빛난다.




《감정도 잠이 필요하다》 5장. 밤마다 깨어 있던 나를 위로하며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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